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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토양체질을 금음체질로 잘못 감별하는 경우

아담한 체구의 젊은 여성 한 분이 치료를 받으러 왔다. 이 분은 다른 한의원에서 금음체질로 감별받았다. 하지만 필자의 진찰로는 토양체질이었다. 금음체질 침을 맞고 싶어하길래 '다른 체질 침을 맞으면 침몸살이나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고 하니 부작용이 염려되었는지 "토양체질 침으로 치료받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 다음 찾아왔을 때는 다시 금음체질 침을 맞아보겠다고 하여 원하는대로 해주었다. 

침이 체질에 안맞으면 한 두 번 정도는 불편함이 없더라도 횟수를 더해갈수록 부작용이 뚜렷하게 나온다. 잠이 안와서 뜬눈으로 밤을 새버리기도 하고, 몸살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부작용이 정확히 나와주는 것이 차라리 치료하는데 편하다. 환자가 잘못된 체질을 고집하면 치료는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분은 본인이 금음체질이라고 확신하여 '냉수욕을 해도 몸이 괜찮냐?'고 물어보니 '냉수욕은 몸에 부담이 되어 전혀 하지 못한다. 여름에도 못한다'고 한다. '그러면 금음체질이 아니다. 금음체질은 냉수욕을 하면 몸이 편해진다. 금음체질은 여름이든 겨울이든 냉수욕이 유익한 체질'이라고 얘기해주었더니 '금음체질 중에도 온수욕이 맞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는 것이다. '어디서 들으셨는지?' 물어보니 어느 한방병원 홈페이지를 알려주었다. 그 홈페이지 칼럼에 '금음체질이라도 온수욕이 맞는 사람이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병원의 주장은 '일본인들 중 금음체질 금양체질이 많은데, 일본에 온천이 발달하지 않았냐? 그러니 온수욕이 금음체질 금양체질한테도 맞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인 중에는 토양체질도 많다. 그 온천문화는 토양체질 때문에 생긴 것이지 금음체질이나 금양체질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일본 전통가옥은 한국처럼 온돌 없이 방 가운데 화로만 놓는다. 온천은 토양체질에게 가혹한 전통가옥의 약점을 보완하는 한 가지 방편이었을 것이다.

사람의 몸은 자율신경계에 의해서 조절된다. 자율신경계는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로 나뉘고, 이 두 줄기가 말의 고삐를 왼쪽으로 당기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당기면 오른쪽으로 가는 것처럼 몸 전체를 콘트롤한다. 부교감신경계가 흥분하면 침이 분비되고 혈관이 확장되고 심박동이 늦어지는 등 몸이 휴식하고 안정되는 경향으로 흘러가고 반대로 교감신경계가 흥분하면 침 분비가 억제되고 혈관이 수축하고 심박동이 빨라지는 등 경계나 긴장 상태가 된다.

그런데 체질에 따라 누구는 교감신경, 또 누구는 부교감신경이 늘 조금이라도 더 흥분되어 있는 차이가 있으며, 금양체질과 금음체질은 이 중 교감신경 우위다. 온수욕은 교감신경을 더 흥분시키기 때문에 자율신경계 균형을 무너뜨려서 금양 금음체질한테는 해롭다. 

치료자가 토양체질을 금양체질이나 금음체질로 잘못 감별해준 다음 그 환자들이 냉수욕을 했을 때 크게 불편함을 느끼고 왜 그런 것인지 물어볼 때 '금양이나 금음도 냉수욕이 해로울 수 있고 온수욕이 더 맞을 수도 있다'고 둘러대는 일이 있다. 체질을 잘못 감별했음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합리화를 해버리는 것이다.

금음체질과 토양체질은 식이요법이 비슷하다. 토양체질 식이요법에서 육식만 빼면 금음체질 식이요법과 비슷해진다. 그러니 토양을 금음으로 잘못 감별해도 처음에는 별로 티가 나지 않는다. 음식법을 실천한다면 몸이 좋아지니 환자는 체질감별이 정확히 됐다고 여기게 된다. 하지만 목욕법을 실천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금음체질이나 금양체질은 냉수욕이 이롭지만, 토양체질은 냉수욕을 하면 컨디션이 무너진다. 그러면 어떤 분은 '금양체질이나 금음체질이라도 냉수욕을 매일 하는 건 무리일거야'라고 지레짐작하며 슬슬 예전 버릇대로 온수욕을 하고 그러면 몸은 원래대로 좋아진다. 이 환자는 목욕법 말고 달라진 부분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자기가 금음체질이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그 사람은 토양체질이며 잘못 감별된 것이다.

본인이 금음체질이라고 믿고 있던 토양체질 환자분 중에는 '금음체질이라도 냉수욕을 매일 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이 많았다. 토양체질의 몸으로는 냉수욕을 매일 한다는 것이 쉽게 납득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분들은 '그 추운 것을 어떻게 겨울에도 하는가?'라고 황당해 한다. 그러나 금음체질이 맞다면 겨울에도 냉수욕을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금음체질은 심지어 감기에 걸린 상태에서도 수영(냉수욕)을 하면 훨씬 빠르게 건강을 회복한다. 찬 물에 들어가 수영을 하는 과정에서 비강과 기관지에 걸린 가래가 빠르게 배출되어 호흡이 편해진다. 그리고 금음체질은 컨디션이 안좋거나 피로해지면 공통적으로 겉피부에 불쾌한 열감을 느끼게 되는데, 냉수욕을 하거나 수영을 하면 이 불쾌한 열감이 말끔하게 가시고 상쾌해지며, 호흡이 깊어지고 숙면을 취하게 되며 심리가 안정된다. 

금음체질은 심지어 수영을 마치고 몸을 씻을 때도 찬물로 마무리를 해야 한다. 마무리를 온수욕으로 하면 수영으로 얻은 효과가 지워져버린다. 금음체질로 잘못 감별받은 토양체질이 수영이 자기 몸에 맞다고 착각하는 경우는 수영 후 마무리를 온수로 하기 때문이다. 수영장 샤워실 온탕에서 몸을 담그고 땀을 쪽 빼다보면 컨디션이 회복되고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그렇게 착각하는 것. 하지만 수영 후 마무리를 냉수로 한다면 분명히 컨디션이 무너지게 된다. 토양체질이 매일 냉수욕을 한다면 몸은 점점 차가워지고, 우울해지고, 허리도 아프고, 몸살이 난다. 감기도 악화된다. 그것은 그 사람이 부교감신경 우위로 태어나는데 냉수욕 역시 부교감신경을 흥분시킴으로써 타고난 불균형을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8체질의학은 이론과 실제가 정교하게 톱니바퀴처럼 맞물린다.

토양체질인데 금음체질이나 금양체질로 잘못 감별된 사람은 또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돼지고기 쇠고기를 섭취할 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육식을 하면 금음체질은 장이 꼬이는 듯한 통증에 시달리게 되고, 금양체질은 아토피성 피부염이 온다. 필자가 만난 환자분 가운데 일본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는 분이 있는데 이 분 역시 다른 한의원에서 금양체질로 진단받았으나 육식에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여 이상하게 여기시길래 체질이 잘못 감별되었을 것으로 보고 온수욕을 매일 해보시라고 권했다. 그렇게 하자 불편함이 없었고 오히려 컨디션이 더 좋아졌다. 이런 경우 체질감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확한 체질 감별에 실패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치료자가 체질감별을 빨리 할수록 능숙해보이고 환자의 믿음을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체질을 정확히 파악하기도 전에 '당신은 이 체질이 맞습니다'를 남발하는 경우. 체질침을 한 번 놓아보지도 않고 맥진만으로 체질을 확진 지어버리기도 한다. 이 경우 가정한 체질이 맞는지에 대한 검증의 단계가 부재하므로 당연히 정확한 체질을 파악하는데 실패할 수 있으며 그러한 실패가 있어도 치료자 스스로 알아차릴 수 없다.

둘째, 치료자가 체질침을 시술할 때 침이 피부를 제대로 뚫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면 침의 효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다른 체질 침을 맞아도 부작용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면 '금음체질침을 맞고 특별한 불편함이 없으니 금음체질이 맞는가보다'하고 치료자도 환자도 착각하게 된다.

첫 단추를 잘못 잠그면 그 다음부터 다 어그러지는 것처럼 체질감별에 실패하면 치료가 되지 않는다. 반면 체질감별만 정확히 되면 난치병이라도 치료의 가능성이 열린다. 따라서 정확한 체질감별은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단계다.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체질감별과 관련하여 드물게는 환자의 주장이 옳을 때도 있다. 치료자는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서라도 환자가 믿는 체질대로 침을 놓아서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했을 때 부작용이 나온다면 환자 역시 본인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체질감별시 치료자와 환자 모두 선입견을 내려놓고 한 발 한 발 나아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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