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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안면마비

50대 신사분이 진료실로 들어왔다. 이 분은 목양체질인데 예전에 위선종 절제 후 어느 임상시험약물을 복용했다가 뒷골이 아프고 입술 떨림이 와서 치료해드린 적이 있다. "이번에는 어디가 불편하시냐?"고 물어보니 3일 전 안면마비가 왔다는 것. 왼쪽 눈이 완전히 안 감기고 '아'음과 '오'음을 소리낼 때 좌우균형이 안 맞는다. 안면마비를 한방에서는 '구안와사'라고 한다. 글자 그대로 '입과 눈이 비뚤어지는 병'이라는 뜻이다. 

안면마비가 오면 유양돌기(귀 뒷쪽에 있는 두개골의 뼈가 튀어나온 부분)의 통증을 느끼게 되는데 이 분은 그 통증이 없어 "혹시 드신 약이 있냐?"고 물어보니 팜비어정과 소론도정 복용중. 팜비어는 항바이러스제이고 소론도는 스테로이드다. 보통 양방 신경과에서 안면마비 환자가 오면 이렇게 1주 정도 약을 준다. 그러면 유양돌기 통증은 사라지고 얼굴이 더 비뚤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약물은 비뚤어진 얼굴을 원래대로 돌아오게 해주진 않는다. 신경과에서도 이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보통 스테로이드 처방 후에 한방 치료를 권유할 때가 많다. 바이러스가 활동하는 근본원인은 바이러스가 증식하기 쉬운 환경이 몸에 형성되었기 때문이고, 그런 환경은 그 사람의 타고난 내부장기들 사이의 불균형이 체질에 맞지 않는 섭생으로 심화되었기 때문에 빚어진다. 따라서 그런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오며, 그런 환경의 부산물인 바이러스만 억누른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바이러스가 원인이라면 항바이러스제를 사용하여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와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에 바이러스는 제1원인에서 파생한 부산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증세를 빚어낸 몸의 에너지는 체질치료를 하면 치유력으로 전환된다. (몸의 에너지가 어떤 조건에서는 병력病力이 되고 어떤 조건에서는 치유력이 되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여기에 근본치유의 원리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환경·생활습관·치료법이 그 사람 체질에 맞는지 안맞는지에 따라서 그것이 결정된다) 하지만 대증요법으로 몸의 활력이 억제되면(항바이러스제는 바이러스 활동만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백혈구 기능을 억제하고, 스테로이드는 항염증 작용이 있으나 부신기능을 떨어뜨린다) 이러한 전환이 불가능해져서 결과적으로 치유력이 발휘되는데 제동이 걸린다. 그래서 체질치료를 받을 때는 대증약물을 중단해야 한다. 약물 디톡스가 필요한 것이다. 

이 환자분은 스테로이드를 1주만 처방받은 상태였고, 이 정도는 목양체질한테 큰 부작용을 만들어내지 않아서 그대로 복용하면서 경과를 관찰해보기로 하였다. 예상대로 1주가 지나도 차도가 없어서 '지금부터는 스테로이드와 항바이러스제를 중단하고 치료해보자'고 했다. 환자는 동의했고 결국 그 다음날부터 침 효과가 나오기 시작하여 15일만에 완치되었다. 간혹 약물 디톡스에 불안함을 느끼는 환자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체질약을 쓰면 된다. 체질약은 체질에 완전히 맞는 약재로만 구성되어 부작용이나 리바운드가 없고 대증약물처럼 의존증이 생기지 않는다.    

널리 알려진 방법대로, 얼굴의 경혈에 침을 시술하는 아시혈 요법도 효과는 있지만 이것은 인체의 표층에만 영향을 주어 체질침에 비하면 치료 기간이 길다. 8체질의학의 체질침은 팔다리에 분포한 오수혈을 통하여 안면마비의 근본원인이 되는 내부장기들의 강약배열을 조율한다. 그래서 체질만 정확히 파악하면 얼굴의 경혈을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안면마비 치료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발병한 다음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 시간이 늦어질수록 완치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어떤 분은 얼굴이 비뚤어진 채로 수십년이 지난 후에 찾아와서 치료해달라고도 하는 일도 있지만 그런 상태는 치료가 쉽지 않다. 마비가 온 다음 바로 와야 원래대로 돌아올 확률이 높다. 발병한 다음 적어도 3개월 안에는 체질침 시술이 들어가는 편이 좋다. 또한 안면마비가 뇌병변의 후유증으로 생겼다면 겉으로 보이는 증세는 비슷해보이더라도 훨씬 중한 병으로 치료가 쉽게 되지 않는다.

환자는 체질 식이요법을 잘 실천하는 것 말고도 밤낮이 바뀐 생활이라든지 과로를 피해야 하며, 흡연과 음주도 삼가야 한다.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올 때까지는 스스로 전심전력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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