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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구토와 어지럼증

60대 남성이 부인과 함께 진료실로 들어왔다. 배우자의 소개로 오셨는데 어지럼증, 구토와 함께 머리 속에 안개가 낀 듯 맑지 않다는 것. "트럭을 운전하는데 운전석에서 내려올 때 심하게 어지럽고, 무엇을 계산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들면 어지럽다. 명절 전에도 그랬다"며 걱정스런 표정이다. 이 분은 술담배를 많이 한다. 청력이 좋지 않아 양쪽 귀에 보청기를 끼었다. 어릴 때 귀에 고름이 차는 병을 앓은 적도 있다. 5~6년 전부터 겨울에 손이 차서 이불에 넣어도 따뜻해지지 않는다. 혈압강하제를 10년 전부터 복용중, 최근에는 혈액순환제와 진통제도 복용하고 있다.

체질감별 결과 목양체질이었다. 목양체질은 본태성 고혈압으로 건강할 때도 혈압이 일반 평균보다 높다. 이 혈압을 억지로 낮추어 뇌나 귀로 가는 혈액 순환이 방해를 받으면 어지러울 수 있고 손으로 피가 잘 돌지 못하면 차가워지기도 한다. 그러면 여기에 혈액순환제를 더하는데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다. 혈압강하제가 혈압을 낮추어 몸 여기저기에서 필요한 만큼 충분한 혈액공급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혈압강하제와 혈액순환제를 같이 쓰는 것은 한 쪽 발로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다른 발로는 엑셀레이터를 밟는 것처럼 모순이다. 한 가지 요법의 효과를 다른 요법이 지워버리는데 낫겠는가?

체질침을 시술하고 담음痰飮*을 풀어주는 처방을 드렸는데 다음에 오셔서 "구토는 멈추었는데 어지럼증은 비슷하다"고 한다. 혈압강하제 복용을 중지하고 매일 육식을 할 것을 권했다. 그 다음날 오셨는데 "어지럼증이 30%는 줄어든 것 같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 다음날 다시 "원래대로 어지럽다"고 하여 혈압강하제를 확실히 중단하였는지 물어보니 어지럼증이 좋아지는 듯 하여 다시 복용하였다는 것. 약물 디톡스가 안되면 효과가 나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재발한다. 약물이 증세의 원인이라면 그럴 수 밖에 없다. 환자분께 '당신이 목양체질이고, 목양체질은 일반평균보다 혈압이 높은 게 정상인데 그 혈압을 낮추면 문제가 생긴다는 점, 지금 증세가 그렇게 생긴 문제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재차 강조하였다. 그리고 담음을 풀어주는 다른 약을 며칠분 드리고 경과를 지켜봤다.

그로부터 1주 후에 오셨는데 어지럼증도 개선되었을 뿐 아니라 귀가 더 잘 들린다고 하였다. 혈압강하제는 끊었으나 육식은 많이 못하고 있다고 해서 다시금 육식을 권고하였다. 필자는 이 분의 청력이 개선된 것이 필자가 준 처방의 효과도 있지만 약물 디톡스도 주효했다고 본다. 약물의 폐해가 클수록 그 약물을 디톡스할 때의 효과도 커진다.

목양체질이 혈압을 억지로 낮출 때 어지럼을 느끼는 것은 흔하게 관찰된다. 한 번은 요통을 치료하러 오는 50대 초반 목양체질 남성이 "요새 어지럽고 장이 불편할 때가 늘었다"고 토로하였다. 심할 때는 실신할 것 같다는 것. "요즘 드시는 약이 없냐?"고 물어보니 전립선이 안좋아서 독사존을 복용하기 시작하였다는 것. 독사존은 교감신경을 차단하는 약이다. 교감신경이 흥분되면 심장 박동을 늘리거나 혈관을 긴장시켜 혈압을 올린다. 이런 조절은 신경 끝 부분에서 신경전달물질을 수용체에 받아들이면서 이루어지는데 그 수용체가 알파와 베타 두 가지가 있다. 독사존은 이 중 알파 수용체를 차단해서 교감신경의 흥분을 억제하는데 이 과정에서 전립선 평활근이 이완되어 그 부위의 통증을 줄여준다. 문제는 이 때 환자가 처한 상태와 맞지 않는 혈관확장 때문에 어지럼증이 자주 나타난다는 것. 혈관이 수축하거나 확장하는 것은 모두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변화에 몸이 응답한 것으로 수축이 필요할 때 확장된다면 문제가 된다. 혈관이 필요 이상으로 확장되고 심장박동조차 느려진다면 당연히 혈압은 떨어지며 이 때문에 뇌로 충분한 혈액을 공급해주지 못하여 어지럽거나 심하면 기절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상수도 관이 갑자기 10배로 커졌는데 오히려 수압을 낯춰버리면 물이 졸졸졸 약하게 흐르게 되어 각 세대는 물을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 비슷한 일이 몸 안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필자는 그 약을 한 번 중단해보시라고 했고 그렇게 하자 곧바로 어지럼증은 사라졌다.

이처럼 목양체질의 본태성 고혈압은 혈압을 억지로 내리면 다양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주의하여야 한다. 목양체질은 특별한 증상이 없다면 수축기 혈압이 160이 나와도 안전한 범위에 속한다. 단 목양체질이라도 180 이상 올라가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담음(痰飮): 몸의 진액이 어떤 원인으로 걸쭉해지거나 묽어져서 정체되어 있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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