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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염증은 아니죠?

환자분들이 가끔 하는 질문 가운데 "이건 염증은 아니죠?"가 있다. 이 질문의 속뜻을 풀어보면 "이거 심한 건 아니죠?. 치료하면 빨리 좋아질 수 있죠?"가 된다. 그런데 이 질문은 이런 속뜻과는 별개로 환자분들이 자주 접하는 개념상의 혼동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어떤 증세든지, 그 증세의 경중을 막론하고 그것들은 모두 본질적으로 염증이기 때문이다. 단지 염증의 위치, 정도, 양상이 다를 뿐이다. 

폐렴은 폐에 생긴 염증, 간염은 간에 생긴 염증, 위염은 위에 생긴 염증이다. 위치는 다르지만 염증이라는 데는 차이가 없다. 앨러지성 두드러기와 화상을 입은 피부는 염증의 정도는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염증이다. 콧물을 줄줄 흘리는 수양성 비염과 건조한 사막을 연상케 하는 아토피성 피부염은 양상이 다르지만 결국 같은 염증인 것이다.

이처럼 모든 병증의 본질은 염증이다. 이 염증으로 생기는 통증을 멈추려고 소염진통제가 개발되었고, 소염제는 크게 스테로이드와 엔세이드(Non-steroidal anti-inflammatory drugs, NSAIDs/NAIDs)로 나뉜다. 스테로이드는 부신피질호르몬의 항염증작용을 써먹기 위해 그것을 모방한 약물이고, 엔세이드는 스테로이드가 아닌 소염진통제다. 소염진통제는 크게 스테로이드와 스테로이드가 아닌 게 있는 셈이다. 이런 약물은 효과가 빠르지만 그 이면에는 거대한 부작용의 함정도 존재한다.

스테로이드는 익히 알려진 리바운드가 있다.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면 염증이 감쪽같이 사라져 다 나은 듯한 착각을 주지만 그 약을 중단하면 그 전에 눌러놓은 염증이 다시 더 심하게 튀어나오는 부작용이다. 덫에 걸린 짐승이 몸무림을 칠수록 올무가 더욱 죄어오는 것처럼 스테로이드를 쓰는 환자들이 재발하는 염증에 놀라서 다시 스테로이드를 사용할 수록 리바운드는 더욱 더 격렬해져서 혈압을 올리고, 불면을 초래하며, 피부염을 악화시키고, 궤양을 유발하고, 관절을 변형시키고, 혈당이 떨어지지 않게 방해하기도 한다. 현대에 만연한 자가면역질환 상당수가 스테로이드와 연관이 있다.

엔세이드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부작용이 존재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프로스타글랜딘의 생성을 억제하여 혈류의 정상적인 순환을 방해한다는 것. 엔세이드를 쓰면 통증이 멎는데 그 진통효과는 이처럼 혈류의 순환을 방해하여 얻는 부산물이므로 일시적이다. 사실 그 통증은 혈류의 순환을 가속시켜서 치유하려는 압력으로 나오는데 엔세이드로 순환을 저해당하면서 치유는 무한정 지연된다. 엔세이드를 쓰면 초기에는 별 것 아닌 통증도 슬슬 고질이 되어 버려 점점 약의 강도를 높여도 나중에는 듣지 않으며, 염증의 반복을 견디는 과정에서 세포조직이 비대해지고, 지방이 쌓이고, 석회화가 되는 등 그 사람의 몸을 질적으로 변화시킨다. 이런 변화는 다시 그 몸을 유지하는데 더 많은 불리함을 주기 때문에 염증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또한 혈류가 억제당하면 다시 그것을 보상해야 하기 때문에 몸은 혈압을 올리게 된다. 평소보다 혈압이 높아져야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이런 이유로 진통제를 오래 사용하면 고혈압도 따라오게 된다.  

엔세이드가 가진 또 하나의 중대한 문제는 혈액 성분을 파괴한다는 것. 즉, 적혈구·백혈구·혈소판·호중구 등을 파괴하여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암세포가 발아할 수 있는 환경을 서서히 빚어간다. 

물론 염증을 해소하는 방법이 모두 이런 부작용을 낳는 것은 아니다. 땜질식 치료인 대증요법을 쓰지 않고 염증의 근본 원인을 살펴 치료하면 위와 같은 부작용에 시달리지 않고 효과적으로 치유가 가능하다. 

그러면 염증이 생기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우리가 '염증'이라고 말할 때 우리의 시선은 인체의 국소적인 지점으로 쏠린다. 어느 한 곳의 염증을 가리키게 되는데, 그 때 우리는 몸에서 일어나는 전체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림에 있는 작은 붓터치 하나에 정신이 팔린다. 하지만 그 붓터치 하나만 봐서는 전혀 그 염증이 오는 전체 맥락을 이해할 수 없으며, 만일 그 붓터치 하나가 맘에 안든다고 하여 그것을 지워버리면(국소의 염증만 억제하거나, 효소의 작용 하나를 억제하거나, 유전자 하나를 잘라내는 것에 그친다면), 좀 더 멀리서 그 그림을 바라보았을 때 조물주라는 화가가 표현하려는 원래의 그것과는 매우 중대한 괴리나 위화감이 생겨버릴 수도 있다. 8체질의학에 따르면 몸 어느 곳의 염증은 '내부장기들 사이의 부조화 상태'라는 큰 그림의 일부이며, 그 부조화는 환자 본인의 체질과 맞지 않는 생활습관에서 비롯하므로 생활습관을 체질에 맞게 조정하여 내부장기의 조화를 도모하여야만 염증이 근본적으로 해소된다. 다만 환자의 체질에 따라서 내부장기의 부조화 관계가 달라지기 때문에 섭생의 구체적인 섭생지침도 달라져야 한다. 섭생은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며 실제로 우리가 먹고 마시고 하는 것들, 우리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바로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인 것들이다. 

기존 의학은 국소의 증세를 다룰 때 그것을 빚어낸 환자의 생활습관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활습관이 몸 안에 빚어내는 생화학적 변화에만 초점을 맞추어 그런 생화학적 과정의 한 단락을 약물로 차단하여 문제를 풀려고 한다. 이러면 선행하는 근본원인이 되는 생활습관은 그대로 남아서 그런 생화학적 변화를 초래하는 압력을 계속 가하는 한편, 대증약물은 그런 흐름의 일단락을 차단하여 그 사이에는 해소되지 않는 병리적인 압력이 점증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당장은 염증이 억제되니 아무 문제 없는 듯 보이나 결국 그 압력이 폭발하여 약물이 누르는 힘을 꺾어버리거나(약물의 내성이 생기는 경우) 그 흐름에 인접해 있는 다른 느슨한 경로로 역류하거나(병리의 왜곡, 우회로의 발견) 약물 중단시 이전에 눌러놓은 압력이 터져나와서(리바운드) 이전보다 더 심한 증세로 돌아온다.

스테로이드를 사용할 경우 국소의 염증은 바로 해소되지만 부신 기능이 저하되어 그 후 더 크고 광범위한 염증의 쓰나미가 뒤따르거나, 엔세이드를 사용할 때 국소의 통증은 진정되었으나 혈구가 파괴되고 혈액순환이 저하되어 빈혈이나 냉증에 시달리거나, 혈압을 낮추려고 사용한 약물이 심혈관계나 신장을 망가뜨리거나, PPI로 위산분비를 억제하다가 위암이 되는 등, 하나의 고통을 지우는 과정에서 더 큰 문제들이 더해져 나중에는 그것이 정말 환자를 위한 치료인지 아니면 치료 자체를 위한 치료인지 모르게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필자는 위와 같은 요법들의 의미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응급상황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된다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기존 의료체계에서 과연 그 요법들이 그렇게 제한적으로 조심스럽게 사용되고 있는가, 또는 그렇게 사용될 수 있는가 생각해본다면 회의적이다.) 

따라서 근본치료를 위해서는 전체 그림을 바라봐야 한다. 모든 증세가 체질적인 불균형이라는 큰 그림에서 나왔음을 알고 그 불균형 자체를 바로잡는 방향으로 모든 요법을 집중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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