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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황혼의 이혼

까맣게 그을린 피부의 60대 후반 남성이 진료실로 들어왔다. 한 달 전부터 머리가 아프고, 잠이 안오고, 몸에 열감을 느끼고 불두덩 주변으로 식은땀이 나고 발기부전까지 왔다는 것. 서너달 전에 부부싸움을 하고 이혼 도장을 찍은 다음부터 그런다는 것이다. "어쩌다 이혼까지 하게 되셨냐?"고 물어보니 '내가 바람을 피웠다고 아내가 의심을 한다'는 것이다. 본인은 바람 핀 게 아니고 돈을 빌려준 것 뿐인데 오해하고 있다는 것, 즉 의부증이라는 것이다. "정말 의부증이면 아내분도 함께 치료받아야 한다"고 하니 나중에 아내분이 따로 찾아오셨다. 알고 보니 이혼 도장은 찍었는데 두 분이 여전히 함께 살고 계셨다. 아내분께 "남편분은 바람 핀 게 아니고 돈 빌려준 것이라고 하시던데 오해하신 건 아닌지?" 물어보니 극구 부정하셨다. 본인 생각에는 남편이 바람 핀 게 분명하다는 것. 아내분을 문진해보니 본인은 폐렴을 앓은 적이 있고 2~3년 전 기침에 피가 섞여나온 적이 있다. 콩팥도 안좋다고 한다. 양쪽 무릎도 모두 인공관절을 한 상태다. 당뇨로 진단 받은 적이 있고 거품뇨가 나온다. 체질을 감별해보니 토양체질. 우선 담이 결린다고 하여 치료해드리고 매운 음식을 가리시라고 했다. 토양체질은 매운 음식을 즐기는 것 만으로도 우울증, 관절통이 오고 건강을 잃게 된다.   
남편분은 목양체질. 고혈압약과 고지혈증약을 복용중이었는데 모두 중단시키고 치료 내내 세 끼 모두 육식을 권장했다. 치료 5회차부터 잠이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그 다음부터는 숙면을 취하게 되었다. 치료 중간에 잠시 무리하고 감기가 와서  기침 가래가 있고 기침을 할 때마다 옆구리가 당긴다고 하여 소양병少陽病 패턴의 감기로 보고 시호柴胡가 주원료인 감기약을 처방했는데 금새 호전되었다. 여름철 살구와 참외를 먹고 잠시 두통이 재발했지만 며칠 치료하니 금세 잦아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내분의 의부증으로 괴롭다'고 하시길래 그것이 바로 병의 원인이라고 했다.
치료중 혈압도 정상이 되었다. 필자는 고혈압 환자를 치료할 때 침치료 전 매번 혈압을 체크해서 환자분에게 보여준다. 정상 혈압 범위에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분은 기쁜 마음에 자기 혈압이 정상이 되었다고 아내분에게 알려주었는데 아내는 그것을 믿지 못하더라고 했다. 아내분이 철학관에 가서 점을 봤는데 그곳에서 고혈압은 치료 못하는 병이라고 단정지어 말했다는 것이다. 본인은 혈압이 정상이 되어가는 과정을 직접 체험하고 눈으로 확인까지 했는데 아내가 미신에 빠져서 실제로 확인한 사실조차 안 믿어주니 그것 때문에 다시 다투었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전해듣고 '부부 사이에 믿음이 완전히 깨진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확인한 사실조차 믿지 못한다면 남편 말은 아무것도 믿지 못한다는 것이 된다. 필자는 이 분이 실제로 바람을 피웠는지는 알 수 없다. '바람을 피지 않았다'는 남편말이 옳을 수도 있고 '바람을 피웠다'는 아내 말이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둘 중 누가 옳은지는 여기서 중요한 문제 아니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부부 사이의 믿음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믿지 못하는데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남편분이 몇 달 후 다시 오셨는데 두통과 불면증이 재발했다.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니 아내분과 별거하게 되었다고 알려주셨다. '함께 살 때는 체질식을 잘했는데 별거 후에는 체질식은 고사하고 도무지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하셨다. 끼니를 거르니 어지럼증도 생겼다. 수축기 혈압도 200이 넘어갔다. 그것을 1주간 치료해서 다시 140대로 돌려놓았다. (60세 이상은 150/90 밑이면 정상으로 간주한다) 체질식을 독려하면서 경과를 지켜볼 예정이다.

치료기간 내내 혈압이 거의 150/90 밑을 유지했다. 후반기로 갈수록 체질식이 흔들리면서 정상범위를 약간 벗어난 적이 두 번 있다. 치료를 쉴 때 아내분과 별거하면서 수축기 혈압이 216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치료하여 140대로 돌아왔다.

좋은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게 있다. 남편과 아내 모두 체질에 맞게 섭생하는 것이다. 체질에 해로운 음식을 먹으면 건강을 잃고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망상이나 의심이 시작된다. 남편과 아내 중 한 사람은 체질에 맞게 먹어도 다른 사람은 체질에 해로운 것을 탐닉하면 결국 해로운 것을 먹은 사람이 건강을 잃고 배우자에 대한 의심이 생겨서 관계가 틀어질 수 있다. 그래서 부부관계는 한 사람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둘 다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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