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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치아 교정장치

퇴근 무렵 아내한테 문자가 왔다. "춥고, 열나고, 속도 안 좋아서 토할 것 같다"는 것. 집에 가보니 아파서 일어나질 못한다. 이마는 열이 펄펄 끓는다. 추운 날이었다. 한의원에도 감기 걸린 환자들이 왔었다.

체질침으로 감기처방을 시술했다. 그런데 왼쪽을 시술할 때는 증세가 감쪽같이 사라지다가 반대쪽을 시술하자 증세가 돌아왔다. '체한 것 같다'고 하길래 소화불량 침을 다시 시술했지만 몇 번 토하고 잠을 설쳤다. 다음날 아내는 컨디션이 나아졌고 요양차 친정에 다녀왔다. 회복되었지만 뭔가 깔끔하지 않았다.

세 달 후 재발했다. 오한, 발열, 구역 그리고 또다시 고개를 바로 쳐들지 못한다. 지난번처럼 감기침을 시술했는데 마찬가지로 한쪽을 시술할 때는 증세가 감쪽같이 사라지다가 반대쪽을 시술하자 증세가 돌아온다. 아내를 관찰하다가 뭔가 패턴이 보였다. 고개를 들면 무릎을 오무린다. 조명을 켜니까 매우 괴로워한다. 계속 하품을 하는데 잠은 자지 못한다. 뭐라고 말은 하는데 조리가 없다. 나중에는 손 감각이 없어져서 아내는 패닉상태가 되었다. 아이처럼 엉엉 울었고 필자의 부축을 받아서 겨우 화장실로 갈 수 있었다. 모든 증세가 '열이 뇌를 치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본래 8체질의학에서 뇌수막염에 바이러스방을 시술하는데 그 전에 시술한 감기침처방에 바이러스방이 결합되어 있다. 그래서 뇌수막염이라면 그것으로 이미 나았어야 하는데 낫지 않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바이러스방 대신 신경계 질환에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척추관절방을 시술했다.  아내는 곧바로 손의 감각이 돌아왔고 편안해하면서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아침 "다 나은 것 같다"고 하길래 "그 증세가 뇌수막염이었을 수 있고, 둘째 아이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대변 닦아줄 때 위생장갑을 끼거나 손을 씻고, 음식을 남겼다가 다시 먹지 말고 바로 버리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두 달 후 재발하였다. 이번에도 오한, 발열, 구역, 제대로 서 있지 못한다. 당시 진료중이라 계속 옆에서 돌보기 어려워서 침치료 후 바로 응급실로 보냈다. 퇴근해서 응급실로 가보니 담당의 분이 '검사상 아무 균도 나오지 않았고 원인불명'이라고 알려줬다. 아내가 '타이레놀 복용 후 열은 내렸으나 두통이 남아있다'고 하자 응급실에서 그라트릴과 데노간을 수액제로 더해주었는데 갑자기 더 아프다고 한다. 그 약을 빼달라고 하자 잠시 후 안정을 되찾았다. 다만 두통이 계속 남아서 바로 집으로 데려왔다. 다음날 아침도 오른쪽 편두통이 5분 간격으로 계속되었다. 우병좌치右病左治 원칙에 따라 왼쪽에 체질침을 두 번 시술했다. 아내에게 쉬라고 하고 아이와 물놀이를 하러 나갔는데, 점심쯤 아내가 나와서 도시락과 주먹밥을 건네주었다. 웃으며 "이제 괜찮아요. 두통 사라졌어요"라고 한다.

'원인이 뭘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아내는 체질식을 잘하고 있다. 지난번 재발 이후로 기저귀 갈 때도 주의했다. 식사할 때도 같은 체질인 아이와 침이 섞이지 않도록 조심했다. 문득 아내가 입 벌리고 자는 게 떠올랐다. 물어보니 결혼 전에 치아교정 받고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지난번 증세가 교정 후에 생겼는지?"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교정 후부터 일 년에 한두 번씩 그랬다는 것이다.

전체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치아교정 후 잘 때 입을 벌리게 되었고, 이것은 상기도 감염 확률을 높였을 것이다. 응급실에서는 균이 아무것도 안나왔다고 하니 바이러스 감염일 것이다. 발병할 때마다 아내는 육아로 지쳐 있었다. 둘째가 밤에 우유 달라고 보챘는데 아내는 밤중수유 끊을 생각으로 아이를 달래면서 며칠 못잤다. 그렇게 피로가 쌓일 때마다 그것이 트리거가 되어 발병하였다. 아내한테 "잘 때 입에 종이테이프를 붙여보고 밤에 둘째가 우유 달라고 보채면 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얘기해주었다. 아내는 그렇게 하고는 수개월간 재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증세가 치아교정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교정장치를 제거했다. 그리고 '훨씬 입이 편해졌다'고 했다. 가끔 '이가 약해서 나이 들면 임플란트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염려했는데 교정장치를 빼고 나서 '이제 그럴 필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동안은 교정장치가 계속 압력을 가했을 테니 과민하게 느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교정장치를 뺀 다음 더이상 먼젓번의 증세가 재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돌이켜보건대 그 증세는 치아 교정장치가 치아와 턱관절에 압력을 줘서 벌어진 일이었다. 교정장치가 만들어내는 부자연스러운 교정 압력은 치아나 턱관절 뿐 아니라 몸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가 좀 삐뚤빼뚤해도 그 모습은 몸이 체질에 안맞는 생활습관 속에서 어렵사리 균형을 잡고 있는 것인데  외력外力으로 교정하다보면 그 균형이 깨져서 병을 더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교정장치를 사용하기 전에 자기 체질을 알고 그에 맞게 음식을 섭취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구강 점막과 치아에 이롭고, 교합이 스스로 바르게 되고, 나아가 편안한 저작 작용이 턱관절과 척추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얼굴 윤곽이 바뀌고, 자세가 좋아지고, 피부도 고아진다.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전신성형이다.  

몸에서 생기는 불편함은 크게 질병과 증후군으로 나눠볼 수 있다. 질병은 증세가 일어난 원인과 치료법이 잘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모든 증세가 지금까지 연구한 질병의 틀에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다. 병원에 가봐도 원인불명인 것이 많다. 그것을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여러 증세가 서로 연관성을 가지면서 되풀이해서 나타난다. 하지만 기존 관점으로는 원인을 알 수 없고 치료가 안된다. 그런 게 증후군이다. 필자의 아내가 호소한 증세 역시 증후군이다. 8체질의학은 바로 이 증후군을 치료한다. 환자가 호소하는 증세 중 질병의 관점으로 해명될 수 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며 훨씬 더 광대한 영역을 차지하는 것이 증후군이다. 그것을 치료하려면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환자의 몸과 마음에 가해지고 있는 모든 외력外力, 자연스러운 질서를 왜곡하는 모든 인위적인 압력을 제거해야 한다. 동시에 환자의 체질에 맞는 생활습관을 만들어줘야 한다. 몸이 체질에 안맞는 환경에 적응한 것이 지금의 병든 모습이다. 생활습관을 바꾸면, 병을 만들었던 본래의 그 힘이 이번에는 치유를, 건강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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