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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스테로이드 리바운드의 끝

아토피 환자가 스테로이드를 중단할 때 나오는 리바운드 현상은 다양하다. 그리고 이 리바운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치료의 성패가 갈린다. 필자의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리바운드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통통하고 귀여운 30대 후반 여성이 아토피 치료 때문에 온 적이 있다. 토양체질인데 온몸의 피부가 전부 헐어있고, 가렵고, 따갑다 못해 아플 정도다. 젖먹이 때부터 그랬는데 지금까지 스테로이드에 의존하였고, 한 달 전부터는 근본치료를 위해서 사용을 중지하였다. 즉 이 환자분이 필자한테 왔을 때는 이미 극심한 리바운드 상태였다. 피부는 너무 건조하여 물기 하나 없는 사막을 연상케 했다. 또 잠을 깊이 못자고, 잘 때 땀을 흘리는데 바지가 다 젖을 정도라는 것.[각주:1] 또 이 분은 손발이 매우 차서 손을 대면 서늘함이 느껴졌다.


환자는 오한과 발열을 함께 느꼈는데 이것은 스테로이드를 오래 사용한 탓에 부신이 약해져서 감염의 위험이 증가한 상태였다. 여기서 스테로이드를 다시 쓰는 것은 잠깐 숨은 돌릴 수 있겠으나 길게 보면 자멸의 길이요, 토양체질에게 항생제를 투여하면 신장에 대한 독성으로 인해 체력만 소진되니 오직 부신을 강화하고 촉진하는 것이 치료의 정도正道가 된다. 한의학에서는 열상熱狀을 여러 가지로 분류하고 그에 따라 사용하는 처방이 달라진다. 무조건 열 자체를 식히려고 하는 게 아니라 어느 장기가 약해져서 열이 발생하는 경우 그 장기를 강화해주면 그 열은 저절로 가라앉는다. 즉 열이 발생하는 원인에 따라서 비슷한 증상이라도 처방이 달라지는 것. 감염을 막기 위해서 바로 치료제를 지어서 복용시키고 체질침과 체질식을 병행했다.


2주 정도 지나자 잘 때 깨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더니, 결국 숙면을 취하게 되었다. 처음에 느꼈던 오한이나 발열도 사라졌다.


피부의 변화는 드라마틱했다. 스테로이드 리바운드가 진행되면서 다리의 피부는 코끼리 다리처럼 팽팽하게 부풀어올랐다. 부피가 커져서 육중한 것이 마치 다리에 자루를 매달아둔 것 같았다. 그동안 몸에 쌓인 스테로이드가 산화콜레스테롤로 변하고 이것이 염증을 매개하면서 나타난 증상이었다. 이 증상을 보면 다리에 사용한 스테로이드의 양이 제일 많았던 것 같다. 치료를 계속 진행하면서 팽팽하게 부풀어오르는 기세가 점점 약해지더니 모두 빠져나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 환자분의 몸무게는 무려 13킬로그램이 줄어 정상 체중을 회복했다. 스테로이드를 쓰면 식욕이 항진되고 체중이 늘어난다.[각주:2] 스테로이드를 중단하고 체질치료를 하면 리바운드 과정에서 몸무게가 원상복귀된다.  


팔은 증상이 비교적 가벼웠던지 먼저 회복되었다. 다리는 아토피가 극도로 심했는데, 앞부분이 먼저 촉촉해지면서 윤기를 회복하고, 그 다음 옆면이 회복되었다. 그리고 뒷면이 아직 완전히 회복 안되었을 때 이 분이 이사를 가는 바람에 치료를 끝맺지 못했다. 필자와 함께 일하는 분이 궁금하여 2달 후 연락해봤는데 '그동안 다 나았다'는 답변을 얻어 안심하였다.


이 분을 치료할 때 흥미로운 점은 치료 중 생리가 멈추었다가 거의 치료가 다 되어갈 무렵 다시 나왔다는 것이다. 몸의 치유에너지가 병소에 집중되어 일시적으로 생리가 멈추었던 것으로 보인다. 폐경기를 지나지 않은 여성들의 경우 생리를 몸이 어느 정도 치유됐는지 확인하는 기준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토피 치료는 크게 두 가지 단계로 나뉜다.

1. 스테로이드 리바운드를 안전하게 통과하는 단계

2. 리바운드로 폐허가 된 몸을 복구하는 단계


필자는 스테로이드 리바운드를 태풍에 비유한다. 태풍이 와서 도시를 파괴한다. 지붕도 날아가고, 가로수도 쓰러지고, 유리창도 부서진다. 한바탕 난리가 난 다음 태풍이 그친다. 그러면 사람들이 하나 둘 기어나와서 망가진 도시를 복구한다. 아토피 치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불기 시작한 태풍을 막을 수 없듯이 리바운드도 막을 수 없다. 물론 스테로이드를 다시 사용하면 멈추겠지만 그건 치료가 아니라 나중에 더 큰 면역태풍을 불러오는 악수惡手가 된다. 그래서 아토피를 근본치료하려면 반드시 리바운드를 통과해야 하는데, 사용한 스테로이드가 많을수록 불어오게 될 리바운드 태풍은 커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태풍의 크기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다른 면역반응이 더해져서는 안된다. 환자가 체질에 맞는 음식을 섭취하고 체질적 불균형을 상쇄하는 약과 침으로 치료받으면 이 면역반응은 더 작아진다. 그러면 환자가 리바운드를 무사히 견뎌내고 몸이 극도로 황폐해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리바운드로 온몸이 헐고 진물도 나오고 갈라지겠지만 그것은 악화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러한 상태였던 것이며, 단지 그 때까지 사용한 스테로이드가 잠시 그 병의 본 얼굴을 가려서 여태껏 보지 못했던 것 뿐이다. 만일 이러한 리바운드를 악화로 오해한다면 이 환자는 평생 스테로이드로 인한 합병증을 달고 살아야 할 것이다. 이 분이 젖먹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사용한 스테로이드의 양은 얼마일까? 그 양은 이 분이 스스로 감당하지 못했던 면역반응의 크기에 비례한다. 그리고 그 면역반응은 그녀가 자기 체질에 해로운 것을 섭취한 것에서 비롯한다. 그러므로 어릴 적부터 체질을 알고 그에 맞게 섭취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좋은 습관을 만들면 평생 엄청난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


몸이 수십년 동안 쌓인 스테로이드를 전부 토해내는 동안 환자는 시련을 겪어야 한다. 필자의 역할은 그 시련을 안전하게 겪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스테로이드를 중단하고 체질치료를 들어가면 짧게는 2주, 길게는 한두 달 정도 후에 리바운드는 끝난다. 환자가 체질식을 잘하면 피부염은 더 악화되지 않고 어느 선에서 멈춘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복구가 시작된다. 체질식은 새로운 피부의 재료를 공급한다. 체질침과 체질약은 약해진 부신의 기능을 복구한다. 이렇게 하면 가려움도 줄어들고, 잠도 깊이 오고, 건조한 피부가 촉촉해진다. 치료 후 몇 개월이 지나면 피부세포들은 모두 새 것으로 교체된다. 그래서 이런 치유과정은 스스로를 새롭게 창조하는 작업이다. 日新又日新, 낡은 습관에서 벗어나 하루 하루 새로워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치유다.

  1. 도한盜汗: 도둑이 훔쳐가는 것처럼 밤에 잘 때 새어나오는 땀을 말한다. 전통 한의학에서는 腎陰虛의 징후이고, 8체질의학의 관점에서는 토양체질의 비뇨생식기계통이 허약해질 때 나오는 땀이다. [본문으로]
  2. 이런 효과 때문에 과거 보디빌딩 선수들 중에 스테로이드에 탐닉하다가 몸이 망가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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