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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토피와 성장

치료를 받던 분이 "아이가 두피염이 있고 이마에 여드름이 있다"고 하셔서 데려와보시라고 했다. 아이를 진찰해보니 두피염보다 아토피가 심각하고 스테로이드 연고를 꽤 오래 사용한 상태. 아토피에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면 '끝없는 싸움'이 되기 때문에 바로 중단시키고 리바운드가 올 거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로부터 3일째 아이의 눈이 충혈되고 목에 뭐가 걸린 듯한 이물감이 있다고 했을 때 지금은 그것이 스테로이드 리바운드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문득 체질감별이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가능성을 배제하려고 의심이 되었던 목양체질에 맞는 침을 시술하고 경과를 지켜보았다. 다음날 상태가 양호하여 목양체질약을 함께 투여해보았더니 왼쪽 팔의 피부염이 확대되었다. 모친에 따르면 주말에 훈제오리를 먹었는데 양파 후추 울금 등의 향신료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만일 목양체질이 맞다면 육식과 열성향신료가 특별히 증상을 악화시킬 까닭도 없기 때문에 목양체질이 아닐 것이라는 심증이 들었지만 확실히 해두고 싶어서 다시 목양체질의 궤양에 사용하는 침처방을 시술해보았다. 그러자 아이는 뚜렷한 부작용을 호소하였다. 새벽 4시까지 잠이 안왔고 가슴에 열감이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즉시 목양체질 침과 약을 중단하고 다시 제일 처음 시술했던 토양체질의 침과 약을 시험 삼아 하루만 사용해보았다. 그러자 다음날 아이는 새벽 1시부터 7시까지 숙면을 취했고 가슴의 열감도 완전히 해소되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시간이 더 걸려도 좋으니 정확한 체질감별을 원한다'고 하였다. 필자의 임상적 직관은 이 아이가 토양체질이라고 이미 말하고 있었지만 아이 어머니의 요청도 있고 좀 더 확실히 파악하기 위해서 의심이 되었던 토음체질침과 금양체질침까지 연달아 시술해보았다. 토음체질침은 초반에는 상태가 양호하였으나 시술횟수를 거듭할수록 불면과 피부 가려움이 더했고, 금양체질침은 오한이 동반되고 가려운 면적이 넓어졌다. 그리고 다시 토양체질의 침과 약을 사용하자 1시반부터 8시까지 깊은 수면을 취했고, 오한도 사라지고, 가려움도 절반으로 확 줄어버렸다. 한 번 더 토양체질침을 시술하여봐도 수면상태는 12시에서 7시50분까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고 아이는 숙면을 취하였다. 토양체질임을 확진하고 1달 정도 치료하니 스테로이드 리바운드는 그 사이에 종료되고, 등은 다 나았으나 어깨에 가려움이 남았고, 종아리는 딱지가 진 흔적이 남았다. 스테로이드 리바운드가 종료된 다음부터는 치료하면서 돼지고기 섭취량을 늘렸고 피부는 점점 더 호전되어갔다. 4개월 더 치료하는 중에 급하게 식사를 한 다음 설사를 하거나 한랭두드러기가 있었던 적도 있었으나 빨리 사라졌다. 그리고 종아리 부위의 아토피 흔적도 더욱 매끈해졌다. 


이 아이는 아토피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키가 10센티미터 가까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작년 가을에 150이었는데 1년새 160으로 훌쩍 커버렸다. 그 전 해 성장한 정도와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 이 아이의 성장이 그동안 억제된 것은 스테로이드가 부신 기능을 억제하였기 때문이다. 부신은 본래 성장호르몬을 생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인공적으로 합성된 스테로이드를 쓰면서 부신의 자발적인 기능이 무력화되었던 것이다. 스테로이드는 부신이 분비하는 호르몬을 모방한 것이지만 그 기능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사용할 때 뇌는 실제 호르몬이 분비된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진짜 부신피질호르몬은 더욱 분비되지 못한다. 따라서 성장이 억제되는 것이다. 실제로 천식이나 아토피를 앓는 어린이들 가운데 스테로이드에 의존하는 아이들은 또래보다 키가 작은 경우가 많다. 이 아이는 스테로이드를 끊고 부신을 강화시킴으로써 아토피의 치유 뿐 아니라 억제되었던 성장도 다시 시작된 것이다.


이제 이 아이의 피부는 거의 완치에 가깝게 치유되었고 단지 종아리의 희미한 흔적만 남았다. 이 흔적조차도 성장하면서 점점 흐려지고 있어서 조만간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이 아이가 스테로이드에 계속 의존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근본치료는 인생을 바꾼다. 이 아이의 몸은 갚아야 할 빚을 모두 갚았다. 자기 체질에 해로운 것을 먹었을 때 마땅히 나와야 하는 피부염과 그 치유과정이 스테로이드로 교란되어 만성 아토피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체질에 유익한 것을 섭취하고 해로운 것을 피함으로써 그 전까지 수행되어야 했던 면역반응의 짐을 크게 덜게 되었고, 부신 또한 강화되어서 남아있던 면역과정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마무리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아이에게 침을 놓을 때, 침을 두려워하면서도 꾹 참고 맞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침이 왜 두렵지 않겠는가? 하지만 견디는 것이고 그래서 나은 것이다. 먹고 싶은 것 참아가면서 체질에 맞는 것 위주로 섭취하는 것은 또 쉬운가? 하지만 병이 나을 것을 생각하면서 식탐을 경계하고 조심해서 나은 것이다. 아이의 어머니는 이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마도 끝없이 아이의 마음을 격려했을 것이다. '넌 이겨낼 수 있어. 이 고비를 넘기면 건강해질 거야. 힘들지만 약물에 기대지 말고 참아보자. 체질이 정확하게 파악될 때까지 기다려보자' 아이들의 치료에서는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아이의 체질식을 준비하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체질식을 중요시하고 챙겨먹여야만 아이가 치료될 수 있다. 둘째, 어머니가 신뢰해야 아이도 신뢰한다. 어머니가 지나치게 조급하고 불안한 타입이면 치료는 힘들어진다. 수년의 걸친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아토피가 왔음에도 며칠만에 완치되기를 바란다거나 스테로이드 중단시 찾아오는 리바운드를 악화되는 것으로 오해하고 의사를 닥달할 경우 아이의 치료는 그야말로 요원할 일이 될 것이다. 아이는 어머니의 마음에 동조된다. 어머니가 흔들리면 아이도 흔들리고 어머니가 불신하면 아이도 불신한다. 그래서 아이를 치료하려면 어머니부터 치료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이 아이가 필자에게 보여준 신뢰는 그 모친이 필자에게 보여준 신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아이의 체질감별이 완전히 되지 않아 침몸살을 겪을 때도 변함없이 필자를 믿어주셨고 오히려 '시간이 더 걸려도 좋으니 정확하게 체질을 감별해달라'고 요청해주신 어머니가 이 아이를 낫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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