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

예방

是故聖人不治己病,治未病不治己亂、治未亂,此之謂也。夫病已成而後藥之,亂己成而後治之,譬猶渴而穿井,鬥而鑄錐,不亦晚乎?


이러한 까닭으로 훌륭한 사람은 병이 난 다음에 치료하지 않고 병이 나기 전에 치료한다. ‘난이 일어난 다음에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난이 일어나기 전에 다스린다’는 것은 이것을 말한다. 병이 난 다음 약을 쓰고 난이 일어난 다음 다스리려고 한다면 목이 마른 다음에 우물을 파고 싸울 때에 임박해서 무기를 만드는 것이니 어찌 늦지 않겠는가?

-<黃帝內經素問> 四氣調神大論篇


베체트씨병을 치료해드린 적이 있는 환자분이 최근 운동을 하다가 요통이 생겼다. 체질침으로 몇 번 치료하자 통증은 가라앉았는데 ‘치료중 대상포진 백신을 맞아도 되는지’ 물어보셨다. “체질섭생만 해도 예방이 된다. 백신 때문에 새로운 증세가 생기면 치료기간이 길어질 수 있는데 괜찮으시냐?”고 되물었다. 이 분은 '괜찮다'고 하시며 돌아가셨다. 며칠 후 다시 오셨는데 ‘백신 접종 후에 피부에 발진이 생겼다’고 하시면서 배와 팔과 다리를 보여주신다. 벌건 발진이 점점 퍼지고 가려워서 잠을 편히 못 주무신다는 것. 대상포진 백신을 맞고 포진에 걸린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접종을 받지 않았을 텐데' 하며 후회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예방에 대하여 많은 분들이 혼동하는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적어 본다.



1. 예방접종의 ‘예방’과 체질섭생의 ‘예방’은 같은 '예방'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뜻하는 바는 완전히 달라 주의가 요구된다. 예방접종의 ‘예방’은 항원항체 반응이다. 항원을 인공적으로 집어넣어서 항체를 만든 다음 같은 항원에 대응하자는 것. 반면 8체질의학의 ‘예방’은 체질에 유익한 것을 취하고 해로운 것을 피하는 것이다. 둘의 차이는 병의 원인을 다르게 보는 것에서 비롯한다. 예방접종은 병의 원인을 항원으로 보고, 8체질의학은 병의 원인을 체질에 맞지 않는 섭생으로 본 것. 어느 것이 옳을까? 항원이 있어도 발병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므로 항원을 병의 원인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예를 들어, 간에 바이러스가 있어도 간염 증세가 없는 건강한 보균자(healthy carrier)의 상태가 있다. 바이러스가 있다고 무조건 발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발병에는 바이러스보다 숙주의 상태가 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보면 바이러스가 존재하는데도 건강한 이유가 쉽게 해석된다. 환경위생학의 창시자 막스 폰 페텐코프는 콜레라균 배양액을 마시고 콜레라가 발병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반면 본인 체질에 맞지 않는 생활습관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반드시 질병이나 증세를 유도하므로 이것을 병의 원인으로 보는 것이 맞다. 



2. 기존 의학은 ‘몸 밖에서 병의 원인이 되는 해로운 이물異物이 침입하였고 몸은 그것과 맞서 싸우는 군대를 만들어냈다’는 식으로 면역을 그려낸다. 그런데 이것은 실제 현상을 지나치게 단순하고 적대적으로 도식화하여 진실을 왜곡한 측면이 있다. 의학은 순수한 과학이 아니다. 의학은 실제 현상에 대한 해석이 덧붙여지는데, 이 해석은 그 시대에 유행하는 사상과 철학, 정치적인 사조, 세계관을 반영한다. 즉 특정한 프레임으로 불편한 증세 배후에 있는 맥락을 읽어내므로 완전히 객관적인 것이 아니다. 기존 의학은 ‘외부로부터의 공격과 그에 대한 방어’라는 프레임으로 면역반응을 바라본다. 하지만 이 프레임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실제 현상과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즉 문제시되는 그 미생물이 있어도 발병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그것을 제거한다고 반드시 호전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헬리코박터균을 제거한 다음에도 위암이나 식도암에 걸리는 환자가 있다. 병인으로 간주한 것과 그것으로 초래되어야할 결과라는 아귀가 잘 맞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


실제 현상과 더 잘 맞아떨어지는 프레임이 있다. 

‘체질에 안맞는 환경[각주:1]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몸의 내부조건이 변하여 염증이 생기고, 그에 따라 몸 안에 서식하는 미생물도 병적인 형태로 변한다.[각주:2] 환자가 체질에 맞는 환경으로 갈아탈 경우 염증도 사라지고 변형된 미생물도 빨리 청소되지만 체질에 안맞는 환경에 남아있을 때는 염증과 미생물의 변형이 되풀이되어 갖가지 증세를 낳는다. 이에 대하여 지금껏 겉으로 드러난 증세만 억제하는 대증요법이 발달하여 기존 의학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으나, 그러한 의학은 필연적으로 몸의 자연스러운 방어 메커니즘을 방해·교란하여 난치병을 양산하였다. 진정한 치유는 자기 체질에 맞는 환경으로 갈아탈 때 시작되며, 그것은 몸이 외부세계와 조화를 이루는데 아무 고통도 수반되지 않는 상태다’


이 프레임은 문제를 만든다고 봤던 그 미생물이 몸 밖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몸 안에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환자가 체질에 맞는 환경으로 갈아탈 때 염증은 사라지고 병적인 형태로 변한 미생물도 대부분 사라지지만 그 일부는 환경변화로 활동이 정지되거나 유익균의 견제를 받아 활동이 저하된 상태로 남아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그 미생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들이 설명된다. 그리고 진짜 병의 원인은 그 미생물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활습관이기 때문에 그 미생물을 제거하더라도 건강을 망치는 경우 역시 충분히 납득이 된다.


이 프레임은 기존 의학처럼 몸과 환경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그리지 않고, 몸이 외부세계와 조화를 이루고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에 초점을 맞춘다. 한 쪽에서는 ‘외부세계와 투쟁하는 몸’을, 다른 쪽에서는 ‘외부세계와 조화를 이루려는 몸’을 이야기한다. 이 둘은 질병을 다르게 본다. 전자는 질병을 해로운 것이 침입한 결과로 보기에 그 해롭다고 여기는 '무엇'을 제거하는 것을 치료라고 믿으며, 후자는 몸이 불리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 따르는 고통이 질병이므로 자기 체질에 맞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치료라고 믿는다. 같은 현상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대응하니 다른 결과를 낳게 된다. 전자의 입장을 고수한 기존 의학은 항생제 내성, 자가면역질환, 암 등의 난치병을 초래했다. 이런 비극적인 결과는 기존 의학이 적대시한 것은 사실상 외부세계가 아니라 내부세계, 즉 사람의 몸 그 자체였다는 것을 시사한다. 기존 의학은 적을 공격한다고 믿었지만 죽어나가는 건 아군이었다는 것. 난치병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은 고통의 끝에서 그 진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미생물을 적으로 보는 관점에 취해있는 어느 의료인들은 산처럼 쌓인 이런 사실들을 보는 대신 미생물 병인론에 근거한 논문을 가리키면서 그것이 자기들의 믿음을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논문들은 기존의 믿음이 옳은지 그른지 살피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 위에서 보고 싶은 답만 보려는 것 아닌가?[각주:3] 그러니 그 논문들을 어떻게 그 믿음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데 쓸 수 있다는 말인가? 만일 그런 믿음이 옳다면 무균실에서 평생 살면 더 장수할 것 아닌가?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미생물과 어우러져 사는 개체가 더 건강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엄격하게 소독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보다 흙을 만지고 노는 아이,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아이가 건강했다. [각주:4] 또한 잦은 세안이 피부를 거칠게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외부의 미생물들이 원인이라면 자주 씻어낼수록 피부가 개선되어야 할 것 아닌가? 우리 몸의 미생물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생체환경이 중요하다는 것. 집단이나 개인의 ‘감염’으로 알려진 것은 그 환경이 무너질 때 오는 것. 예를 들어 화상이나 창상은 세균 감염이 문제가 아니라 '피부'라는 미생물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파괴되거나 오염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세균 감염이 문제라면 소독살균제가 도움이 되겠지만 실제로는 상처 치유를 느리게 하고, 오히려 환부를 물로 씻고 자운고나 하이드로콜로이드를 발라서 미생물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습윤한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빠른 치유를 돕는다는 것이 이미 임상에서 증명되었다. 의료인들 대부분이 치료법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러한 요법 배후에 있는 생각이나 관점의 변화에는 어둡다. 그러나 실제 임상현실은 미생물을 적으로 삼는 과거의 낡은 관점들이 폐기되어야 한다고 요구한다.[각주:5] 


미생물 병인론은 파리를 없애라고 말하지만 파리를 들끓게 하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이 더 사리에 맞을 것 같다. -Bill Nelson


내가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세균이 병든 조직의 원인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서식지로 병든 조직을 찾아다닌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인생을 바치겠다. -Rudolph Virchow

 


3. 백신이 유도하는 항원항체 반응은 면역반응이다. 면역반응은 본래 몸이 불리한 환경에서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에서 비롯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질병’이나 ‘증세'라고 불리는 불편함을 빚어낸다. 그러므로 우리가 면역반응을 바라볼 때 그것을 촉진해야 할 것으로 볼 까닭이 없으며 단지 그 상황에 필요하여 어쩔 수 없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체질에 맞는 섭생으로 자기 몸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준다면 굳이 그런 '질병의 예행연습'을 할 필요가 없다. 질병의 예행연습을 한다고 질병에 걸리지 않는 것도 아니며, 그런 연습으로 면역력이 소모되므로 오히려 더 쉽게 걸리기도 한다.(위의 환자처럼) 즉 항체가 생겨도 발병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그런 점을 되짚어보면, 코흐[각주:6]가 감염병이 재발된 환자 가운데 증세가 가벼운 사람의 몸에서 항체를 발견한 다음에 '항체 때문에 증세가 가벼웠다'고 본 것은 원인과 결과를 착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은 증세가 가벼웠기 때문에 항체가 생긴 것이다. 즉 환자의 건강이 크게 무너진 상태가 아니어서 항체를 만들어낼 만한 여력이 있었고, 그 항체는 (질병을 예방한 것이 아니라) 항원을 청소해주었던 것 뿐이다. 항체가 생겨도 발병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은 ‘항체가 곧 예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병든 개체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그 개체가 불리한 환경[각주:7]에 적응하려고 악전고투하고 있다는 것 뿐이다. 항원은 그 불리한 환경(에 대한 개체의 반응)에서 유래되는 아주 작은 조각에 불과하므로 ‘항체가 생겼다’는 것을 필요한 조치를 모두 취한 것으로 착각한다면,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는 해변의 방갈로에서 냉장고 안으로 숨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항원은 병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며, 항체는 치료제가 아니라 항원 청소부일 뿐이다. 항원보다 중요한 것은 항원을 빚어내는 생활환경이나 생활습관이다. 따라서 불리한 환경(음식, 주거, 활동, 목욕, 인체삽입물 등. 가축의 경우는 사육환경)을 체질에 맞게 바로잡아야만 근본적인 예방 및 치료가 된다. 이러한 바로잡음이 있을 때 치유를 위한 자연스러운 조건을 충족시킨 것이 되며, 이러한 바로잡음 없이 그저 항체만 인공적으로 만들어준다면 해로운 환경은 개체로 하여금 병든 상태로 남아있게 할 것이다. 여기서 항체는 항원을 배제하는 과정에 개입할 뿐, 항원을 빚어내는 생활습관이나 생활환경을 바로잡는 것이 아니므로 그것은 질병을 예방하는 길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이런 작은 개념의 혼동에서부터 의료정책의 거대한 삽질이 초래되는 것을 본다. 전세계 백신 시장 규모가 2016년을 기준으로 할 때 521억 달러(58조 원)였다. 이 돈이 만일 잘못된 이론에 입각하여 헛되이 쓰인 것이라면? 여기에 백신 부작용이 미치는 사회적 손실을 더하고 그 돈으로 할 수 있었던 다른 사업에 대한 기회비용까지 고려한다면? (예를 들어 공기나 바다의 오염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각주:8])



4. 전염병이 줄어든 것은 백신 말고 다른 원인이 존재한다. 전염병의 원인은 발병될 수 있는 환경을 여럿이 공유하는 것인데[각주:9], 이 환경은 매우 광범위하여 미생물 하나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편한대로 생각하는 것일 뿐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전염병 감소와 수명 연장의 배후에는 생활수준의 향상, 상하수도의 정비, 영양의 개선, 위생관념의 보급[각주:10], 전쟁의 감소 등이 자리하기 때문에[각주:11]사회 전체가 진보하여 얻은 열매를 백신 하나의 덕으로 돌리는 것은 침소봉대針小棒大라는 것.[각주:12]


백신의 효과가 논란이 많을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사람들이 평소 실천하는 섭생의 효과를 배제한 상태에서 검증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기에 안 걸린 게 백신 때문인지 평소 몸관리를 잘했기 때문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백신을 안맞아도 독감에 걸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며, 그런 사람은 평소 건강관리(체질에 맞는 섭생)를 잘했다는 것 말고 다른 이유를 찾기 힘들다. 그리고 백신을 맞아도 독감에 걸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 사람은 건강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것 말고 다른 원인을 찾기 어렵다. 그러므로 무엇이 발병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쉽게 추론할 수 있다. 따라서 백신의 효과는 단순하게 통계적인 방법으로 검증될 수 없고(섭생과 사회진보로 얻는 효과가 그 통계적인 결과에 포함되므로 순수하게 백신이 미지는 효과를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예방에 대한 올바른 지식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 올바른 지식에는 동서양이 따로 없다. 한의학의 부정거사扶正祛邪(인체의 정기正氣를 북돋아 병사를 물리친다는 한의학 이론)나 앙투완 베샹의 세포설cellular theory(미생물이 병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숙주가 병든 결과로 병원균이 나타난다는 것)은 일맥상통한다. 둘 다 개체의 섭생이 건강을 결정한다는 얘기다.


백신의 효과는 사람 뿐 아니라 가축의 전염병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구제역은 매년 되풀이되는 실정이고, 가축에게 접종되는 백신이 효과가 없다는 것이 현장 관계자들이 느끼는 고충이다. (2018년 전라남도 구제역 일제접종에서는 당시 54마리의 소가 폐사하고 142마리의 소가 유산을 하기도 했다) 특히 항체생성률이 100%일 때도 효과가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일은 과거에도 흔했지만 묻혔을 것이며, 지금은 인터넷의 발달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항체가 생겨도 발병한다는 사실은 백신이 근거한 의학이론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한다. 항체의 생성과 질병의 예방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었던 연결고리가 허구라는 것이 증명된 것. 이것은 ‘물백신’ 같은 품질 논란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다. 의학이론 자체가 잘못되었다면 그 이론에 따라 아무리 좋은 품질의 약을 만들어낸다고 해도 쓸모없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의학’이라는 꽃이 전문가들의 온실에서 정성껏 가꿔지고 있다고 믿었지만 그 온실은 그저 교리를 묻고 답하는 맹신자들의 전당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백신은 매년 엄청난 국가예산을 갉아먹으면서 도그마에 의해 반복되는 주술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이 백신의 효과에 대하여 의문을 드러낼 때마다 관계자들이 둘러대는 패턴이 존재한다. 백신 탓이 아니라 그 개인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둘러대기는 구제역에서도 되풀이된다. 백신은 문제가 없는데 그 가축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것은 백신이 아니라 그 개체의 체질과 섭생이 발병에 더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사실상 시인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백신 접종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그 사람의 생활습관이나 그 가축의 사육환경을 돌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렇게 의심스러운 효과와는 대조적으로 이미 몸에 해롭다고 결론이 난 수은, 알루미늄, 포르말린, 비소 같은 유해물질, 발암물질이 백신 제조 과정에서 첨가된다. 백신 사고도 매년 되풀이되는 연례행사다. 백신접종자들은 확실하지 않은 이익을 위해서 확실한 손해를 감수하는 셈이다.



5. (백신이라는 인공적인 방법에 의해서 유도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상에서 유도되는 항원항체 반응은 살아있는 몸이 해로운 환경에 처하였을 때 나오는 방어반응이다. 따라서 무엇이 내 몸에 해로운지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음식을 먹고 두드러기가 나타나거나 속이 불편해지면 그 음식이 나한테 맞지 않음을 알고 앞으로는 피할 수 있다. 이런 배움을 유년기부터 시작한다면 청년기에 이르기 전에 자기 몸에 대한 가장 정확한 실전지식을 얻을 것이고, 그 지식을 활용한다면 건강하게 장수를 누릴 것이다. 유년기에 겪은 작은 시행착오들이 거대한 의료적 자산이 되는 것이다.(8체질의학은 이러한 깨우침을 좀 더 쉽고 빠르고 간단하게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 8체질의학은 어느 체질에 무엇이 해로운지 무엇이 이로운지에 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축적해오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지식은 자연스러운 항원항체 반응에서만 추론될 수 있다. 그 지식은 정확히 말하자면 항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음식이나 활동 등 생활습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우리는 항원을 컨트롤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음식을 먹을지 어떤 활동을 할지 컨트롤할 수 있기 때문에 백신처럼 그런 자연스러운 배경정보 없이 미리 계획된 항원을 집어넣어 나오는 반응으로는 실생활에 쓸모있는 어떤 지식도 배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백신은 본질상 탈감작 요법이다. 탈감작은 알러지를 유발하는 해로운 물질을 소량에서 시작해서 점점 양을 늘려서 접촉하게 하거나, 그 해로운 물질을 희석해서 그 성질을 약하게 만들어 접촉하도록 하여, 결국 그 자극에 둔감해져서 알러지가 나오지 않게 유도하는 요법이다.[각주:13] 하지만 탈감작요법이 지향하는 둔감함 이면에는 분주한 면역반응이 존재한다. 이것은 마치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늘 시위와 진압으로 피곤한 상태와 같고, 겉으로는 깨끗해보이지만 계속 쓰레기가 나와서 청소하느라 쉴 틈이 없는 집과 같다. 그래서 이런 방법은 면역력이 크게 무너지지 않는 범위에서만 유효할 수 있고 그 한계를 지나면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위험해진다.[각주:14] 8체질의학은 탈감작요법과는 정확히 반대쪽에 서 있다. 무엇이 해로운지 느끼고 반응하는 기능은 예민할수록 좋고[각주:15] 그것으로 해로운 것을 피하면 더 큰 병을 미리 막을 수 있으니 고마운 기능이다. 백신 같은 탈감작 요법의 유행은 알러지를 극소수에게만 나타나는 현상, 기존의 관점으로는 잘 해석되지 않는 드문 예외로 보는 경향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과 맞지 않다. 알러지는 모두에게 나올 수 있고, 단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며, 그것이 두드러지게 나오지 않는 사람은 자기 체질에 해로운 것의 작용을 상쇄할 수 있는 유익한 것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 함께 취하고 있을 뿐이다. 알러지 뿐 아니라 다른 증세들도 체질에 해로운 것을 취했을 때 나오고, 그것이 해롭다는 것을 알려주는 소중한 신호다. 대증요법은 이 신호를 무시하거나 작동하지 않도록 만들려는 일관된 시도이며, 이것을 증명하는 명백한 사실은 이러한 약물들 이름 앞에 항(anti)이라는 접두사가 붙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에 대항하는가? 무엇이 해로운지 우리에게 알려주고 경계하도록 도와주는 그 신호에 대항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기 집 방범시스템을 스스로 망가뜨리는 것과 같아서 작은 병을 큰 병으로, 쉽게 치료되는 병을 난치병으로 유도한다. 이와 같이 병을 자기 몸에 대하여 배울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느냐, 그저 억눌러서 무시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결과를 얻게 된다.  


6. 체질섭생과 백신은 예방이라는 목표에 대하여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백신은 몸의 감작기능을 부정적으로 보고 그것을 둔화시키는 ‘탈감작’을 목표로 하는 반면, 섭생은 감작 기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해로운 것을 피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서로 다른 목표를 쫓다보니 그 목표를 이루는 시스템도 달라진다. 섭생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요, 인공적으로 항체를 생성하는 것은 국가가 나서야 가능하다. 섭생은 개인의 체질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예방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분산형 네트워크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각자가 섭생을 하되 같은 체질끼리 노하우를 공유하는 식이다. 반면 백신은 모두를 같은 조건으로 전제하기 때문에 중앙집중형 네트워크의 형태를 취한다. 중앙에서 백신을 개발·생산·공급하는 것이다.


Centralised-decentralised-distributed.png


여기서 소개하는 네트워크의 개념은 인터넷의 창시자 팀 버너스리가 처음 이야기한 것이다. 그는 인터넷의 구조로 중앙집중형보다는 분산형이 안전하다고 봤다. 어떤 공격을 받거나 문제가 생길 때 중앙집중형은 전체가 파괴되거나 위험에 빠질 수 있는 반면, 분산형은 그 손실이 네트워크의 일부로 한정되어 네트워크 대부분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분산형 네트워크는 리스크를 분산시킨다. 섭생 중심의 예방시스템은 만일 한 사람이 섭생을 소홀히 하여 건강을 잃는다고 하여도 그 한 사람의 고통으로 그칠 뿐 다른 사람이나 사회 전체의 고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백신 중심의 시스템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백신에 해로운 것이 들어갔다면 그것은 수백만 명, 수천만 명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가축의 경우 더욱 심각한 비극을 맞는다. 발병하면 살처분당하기 때문이다.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려고 수백만 마리의 소가 살처분 당하는데 사람이라면 홀로코스트다. 그 짐승들은 좋은 환경(생태학적으로 안전한 축사와 먹이)에서 기르면 다시 건강해질 수 있는데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죽임 당하는 것. 먹힐 때 먹히더라도 살아있는 동안 건강한 환경에서 살게 하면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 백신만 믿고 해로운 환경에 방치하기 때문에 병도 잘 오고 그래서 항생제나 살충제 같은 약물을 계속 써야 하고 그 약물이 고기를 먹은 사람의 몸에도 쌓여서 사람마저 병드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7. 또 미생물의 레벨에서 몸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밤하늘의 별을 세는 것처럼 거의 무한無限에 가까워서 그것에 대하여 일일히 백신으로 대응한다면 수없이 많은 항원 그리고 그 각각의 항원이 만들어내는 수없이 많은 변이에 대하여 전부 탈감작할 수 있도록 엄청난 수의 백신을 개발해야 하는데,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가능하다고 쳐도 그 천문학적 비용은 전부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 그 비현실성, 비경제성을 고려하면 이런 방법울 바람직한 의료의 방향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반면에 체질에 맞는 섭생을 한다면 숙주의 몸이 건강해지고 따라서 그 안에 서식하는 수많은 미생물들 전부 병리적인 변화를 겪지 않고 온전히 스스로의 건강한 형태를 유지하게 된다.



8. 필자는 세상 모든 것에 탈감작되어 있는 상태를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오직 죽은 것만이 세상 모든 자극에 대하여 아무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백신이 커버하는 탈감작의 범위가 늘어날수록 그것이 낳을 결과는 아마도 '죽음', '노화' 또는 '외부세계와의 단절'과 비슷해질 것이다. 미국에서는 의료계의 공식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MMR백신으로 자폐증이 늘어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그 목소리들은 그 나라의 대통령까지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렸다. 지금의 의료는 어떤 측면에서는 삶과 멀어지고 있으며 오히려 죽음과 가까워지고 있다. 삶은 외부세계에서 오는 다양한 자극을 느끼고 거기서 오는 괴로움이나 편안함을 단서로 스스로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는 자연스러운 여정이다. 하지만 지금의 의료는 삶이 주는 자극을 두려워하여 그것에 둔감해지도록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 무엇이 나에게 이로운지 해로운지 모르는 그 무지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고 그 두려움이 삶을 몰아내고 있는 것. 백신은 그러한 현상의 단편일 뿐이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최선인가? 고통을 줄이려고 그러한 고통을 만들어내는 몸의 기전을 억제하거나 그러한 고통에 무디게 만드는 것보다 나은 길이 있다고 8체질의학은 말한다. 8체질의학이 제시하는 길은 자기의 타고난 체질에 유익한 것을 취하고 해로운 것은 피하는 것이다. 즉, 삶이 주는 다양한 것 가운데 자신에게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을 분별하는 것이다. 그것은 고통의 근원을 직시하고 스스로에 대하여 새롭게 배우는 길이다. 이것을 따르면 죽음으로 가까이 가지 않고도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으며 삶은 선물이요, 축복이 된다.

 

9.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백신을 뒷받침하는 이론과 실천 사이에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괴리가 존재한다. 백신의 효과로 여겼던 것들은 사회 진보나 개인 섭생의 효과이고, 백신을 뒷받침하는 이론은 실제에 부합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백신이 유도하는 면역반응은 탈감작 효과로서 진정한 예방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사실 그 탈감작조차도 불안정하거나 비현실적인 목표다. 바이러스의 다양한 변이를 백신이 커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제접종은 폐지되어야 하며 접종 여부는 개인의 자유에 맡겨야 한다. 그리고 백신을 안맞는다고 ‘집단면역’ 운운하며 누구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예방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건강은 이웃이 백신을 접종하였는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좋은 생활습관을 가졌는지,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자녀한테 백신을 맞추는 부모만큼이나 백신을 맞추지 않는 부모도 자기 아이의 양육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으며, ‘학습된 무지無知’로 인해 아이의 혈액 안에 비소, 알루미늄, 수은, 포르말린, 이종단백질을 집어넣는 행위야말로 아동학대일 수 있다. 그것은 미량이라도 해로울 것이 자명하며, 특히 유해물질을 정맥 안으로 직접 주입 당하는 것은, 어떠한 거름망도 없이 세포와 미생물이 살아가는 내부환경을 즉각적으로 오염시켜 인체에 심대한 충격을 줄 수 있다. 그런 행위를 과연 과학적이라고 볼 수 있는지 사람들은 이제 의심스러워하고 있으나 충분한 해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판단하여 보더라도, 매일 아이 체질에 해로운 음식을 먹이다가 1년에 한 번 백신을 맞추는 것으로 모든 걸 다 하였다고 착각하는 부모보다는 매 끼니를 아이 체질에 맞는 신선식품으로 챙겨주려고 노력하는 부모가 예방이라는 관점에서 훨씬 훌륭하고 지혜롭다고 해야 할 것이다. 1년에 한 번 시행되는 이벤트가 아니라 매일 매일의 성실한 삶이 우리의 건강을 좌우한다는 것은 매우 당연하고 자명하게 들린다. 만일 이런 부모를 비난하고 강제접종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마녀사냥이고 의료 파시즘에 불과할 것이다. 깊이 들여다보면 백신은 과학적이라기 보다는 정치적이다. 프로파간다propaganda를 과학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돌아봐야 할 것이다. 필자는 백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그저 비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예방을 촉진하는 방법에 대한 심도있는 성찰로 이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만일 그 성찰이 충분히 무르익는다면 그 사람이 누구든지 ‘자기 체질에 맞게 먹고 마셔야 한다’는 아주 소박한 진리에 도달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에필로그:

사람들은 탈감작을 왜 예방으로 착각하였을까? 필자는 이것이 우리가 세상을 보는 관점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라고 본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두 가지 서로 다른 의학의 방향은 병의 원인을 다르게 보는 것에서 비롯하고, 이것은 다시 그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연결된다. 파스퇴르가 미생물 병인론을 확립해가고 있을 무렵 유럽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그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과 혐오가 가득하여 외국인들이 자기들의 고통의 근원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한 생각들은 질병을 보는 관점에도 영향을 주어서 외부의 해로운 미생물의 침입이야말로 병을 유발하는 원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결론은 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실험 등의 과정으로 합리화하였겠지만 그 실험의 설계 및 해석조차도 그러한 세계관에서 결코 자유롭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괴로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적’이라고 여기는 것과 늘 맞서 싸우기를 택했다. 그리고 의료에서도 그러한 관점이 득세하게 되었다. 그러나 만일 평화의 시대가 온다면 의학도 달라지지 않을까? 서로 싸우는 시대가 아니라 상생相生의 시대가 온다면 ‘투쟁의 의학’, '갈등의 의학'이 아니라 ‘조화의 의학’이 아름답게 꽃피우리라. 필자는 봄날의 시작에서 이렇게 기대하여 보는 것이다.

  1. 어떤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2. 다형성pleomorphism. 숙주의 상태에 따라 그 안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형태가 바뀌는 것 [본문으로]
  3. 이론에 맞서는 현상이 관찰되면 이론을 현상에 맞추어 수정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잘못된 이론을 고집하고 그것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은 무시하고 있다. 그래서 토머스 쿤은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이 점진적인 과정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도그마를 엎어버리는 혁명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하였다. [본문으로]
  4. 위생가설 역시 그것이 설명하려던 현상을 올바르게 설명하지 못했다. 지나친 소독이나 항생제의 잦은 사용이 위험한 것은 몸이 해로운 미생물에 대한 방어를 학습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행위가 우리 몸에 사는 미생물의 자연스러운 서식환경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위생가설은 관찰된 현상을 잘못된 맥락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반박을 자초했다. 제3세계 사람들이 알러지가 적은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것은 자율신경계에서 교감신경이 흥분된 상태 때문이다. 알러지는 적지만 과립구성 염증은 많은 상태다. 위생가설은 미생물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생체환경과 자율신경계 균형이 무너진 상태를 혼동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본문으로]
  5. 파상풍이 심한 경우 괴사된 조직을 잘라내는 것이 유효한 이유는 손상이 깊고 환부가 오염되어 되돌릴 수 없는 상태일 때 그 곳에서 사는 미생물들이 병리적으로 변형되어 독소를 뿜어대고 그 미생물을 청소하는 과정, 즉 과립구의 작용으로 주변의 정상세포들도 파괴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괴사된 조직을 잘라내는 것이 파괴의 확산을 멈출 수 있기에 유효한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는 항생제도 도움이 될 수 있는데, 그것이 미생물과 과립구의 활동을 억제하여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기 때문이다. 즉 파상풍은 세균이 침입한 것 때문이 아니라 원래 몸안에 살던 미생물의 서식환경이 크게 파괴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실제로 녹슨 금속에 파상풍 균이 서식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때문에 그 균은 밖에서 왔다기보다는 안에서 생긴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기존 의료의 유효한 방법 배후에 있는 진짜 원리는 기존 의료가 믿는 것과 다를 수 있다. [본문으로]
  6. 독일의 세균학자. '코흐의 공리'로 유명하다. [본문으로]
  7. 사람인 경우 체질에 맞지 않는 생활습관 [본문으로]
  8. 공기나 바다의 오염을 얘기할 때 미세먼지나 미세플라스틱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마치 미생물 하나를 병인으로 보는 것과 좀 비슷한 태도인데, 이런 태도는 미세먼지와 미세플라스틱을 만들어내는 근본원인을 직시하도록 돕기보다는 그 결과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또 다른 대증요법을 적용하도록 부추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공강우라든지 플라스틱을 먹는 미생물을 개발하는 등의 발상이 그것이다. 그런 시도는 반드시 더 큰 문제를 낳게 되어 있다. 인공강우가 기후를 교란하지 않을까? 플라스틱을 먹는 미생물은 다른 바다생명체에 해가 없을까? [본문으로]
  9. 감기가 유행하는 것은 바이러스 때문일까? 아니면 환절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풍경인 걸까? [본문으로]
  10. 손씻기 정도를 말하며 살균제 사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전자는 유해한 미생물이 증식할 수 있는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지만 후자는 유익균의 서식환경까지 황폐하게 만드니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 [본문으로]
  11. 기후변화나 환경파괴도 특정한 전염병이 창궐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다 [본문으로]
  12. 어떤 사람은 '결국 이러한 요인들이 해로운 미생물을 감소시켜서 전염병이 줄어든 것 아니냐?'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그런 미생물이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미생물 자체를 공격할 것이 아니라 미생물이 자라나온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만일 그 미생물에 영향을 주려고 하더라도 그것을 직접적으로 죽이는 방법이 아니라 그것이 자라나온 토양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외부의 미생물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미생물에 대하여 우리 몸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병리적 문제의 본질이다. 다시 말해 어떤 미생물은 어느 체질에게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만 다른 체질에서는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경우가 있다. 페텐코퍼의 실험이 의미하는 바가 그것이다. 즉 그 미생물이 내 체질에 유해한 환경으로 작용하는지가 발병의 관건이지 그 미생물 자체가 발병의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본문으로]
  13. 알러지 뿐 아니라 심리적 외상에도 비슷한 요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본문으로]
  14. 필자는 수두파티 같은 행위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해롭게 보고 있다. 백신 같은 인공적인 방법으로든 수두파티 같은 자연적인 방법으로든 탈감작을 유도하려고 하거나 그것을 목표로 해서는 안된다. 탈감작은 진정한 의미의 예방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15. 흔히 어린이들이 면역계가 미성숙하여 질병에 취약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어린이의 몸은 자기 몸에 해로운 것을 감지하는 기능이 어른보다 예민하고 섬세하여 해로운 것을 취하였을 때 증세가 더 뚜렷하게 나오는 것 뿐이다. 체질에 맞는 섭생과 치료를 하면 어린이의 치료기간이 성인보다 짧다. [본문으로]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식으로 마음 다스리기  (0) 2019.04.05
급한 불은 끄고 싶다고요?  (0) 2019.04.05
여성호르몬제로 생긴 당뇨  (0) 2019.03.11
미세먼지  (0) 2019.03.05
비소세포폐암  (0) 2019.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