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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근본치료

가끔 오시는 환자분이 중년여성을 데리고 진찰실로 들어오셨다. 여성분은 마치 기모노를 입은 여성처럼 조심스럽게 걷는다. 소개해주신 분의 말에 따르면 "아토피가 심하다"고 한다. 팔 다리를 보니 극심하게 헐어있다.

 

10년 전에 옻독이 올라서 피부과를 갔는데, 거기서 주는 약을 먹고 좋아지길래 나았나 싶었으나 약을 끊으면 재발을 반복할 뿐 아니라 피부염이 점점 더 심해지더라는 것. 지금은 온몸의 피부가 다 헐고 진물까지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증상이 너무 심해서 체질약과 체질침을 병행하기로 했다. 1달 치료하면서 상체는 다 나았는데 다리가 잘 안낫는다. 다리의 증상을 처음 10이라 할 때 4까지는 떨어졌는데 더이상 진척이 보이지 않는다. 환자분 스스로 고백하기를, 좋아지다 보니 다시 체질식을 신경쓰지 않고 아무거나 먹었다는 것. 아토피의 뿌리가 식습관임을 다시 강조했다.

 

이 환자분의 처음 증상은 단순한 음식 알러지로 추정된다. 체질에 맞지 않는 옻닭을 먹고 피부에 열독이 올라서 두드러기가 생겼다. 본인 체질에 해로운 음식을 조심하였다면 바로 회복되었겠지만 스테로이드로 추정되는 약물을 사용하여 만성화되었다. 스테로이드 리바운드는 비교적 단순한 최초의 증상을 고질로 변형시켜버렸다.

 

하나의 증상을 치료하면서 다른 새로운 증상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병을 변형시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대증요법이라는 것이다. 21세기 의료의 과제는 대증요법에서 벗어나서 근본치료를 모색하는 것이다.

 

우리가 의료현장을 관찰해볼 때, 의학은 실패하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명백한 증거는 의료기관의 숫자가 줄지 않고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현대의료시스템이 성공적이라면 아픈 사람이 줄어들테니 그에 따라 전체 병원의 숫자도 줄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로 진행되어가고 있으니 의료의 실패를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누구는 이런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검진기술의 발달로 예전에 포착하지 못했던 질병들이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건 넌센스다. 그 이야기는 쓰레기를 더 잘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청소가 전보다 안된다고 하는 것과 같다. 왜 병을 발견하는 방향으로는 발전하는 기술이 병을 낫는 방향으로는 발전하지 않는가? 이 명백한 반론을 의학이나 의료는 피할 수가 없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진실은, 우리가 직면한 상태의 전반적인 그림은 검진기술의 발달로 원래 있었으나 알지 못했던 질병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새로운 질병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비교적 단순한 병리를 가진 증상들이 대증요법에 의하여 복잡한 난치병들로 변형되어 가고 있는 것. 초기의 단순한 병리를 가진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가 되지 않고 계속 쌓여가기 때문에 전체 환자수가 증가하는 것이다.

 

모든 진보는 '자기부정'의 특징을 보여준다. 만일 어느 경찰이 자기 업무에서 완전하게 성공하여 범죄율을 0으로 만들어버린다면 그 경찰 자신이 불필요한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어느 정치가가 자기 업무에서 완벽하게 성공하여 아무 정치조직의 도움 없이도 국민들이 스스로를 다스린다면 정치가는 더이상 필요없게 될 것이다. 어느 영리한 상인이 자기 업무에서 완전히 성공하여 유통구조를 효율적으로 혁신한다면 상인 스스로가 필요없게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정말 진보하였는지 여부는 '그 업무를 맡고 있는 당사자가 얼마나 점점 부정되어가고 있는가'로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의학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하고 있다.

 

의학의 퇴보는 일견 화려해 보이는 시스템으로 가려진다. 웅장한 병원홀과 복잡한 기계들, 그리고 거대한 규모로 설계된 중앙집중형의 실험연구 앞에서 환자들은 어떠한 합리적인 문제 제기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주눅이 들어버린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제대로 낫지도 않고 평생 약을 달고 살게 만드는 이 기형적인 의료시스템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면죄부를 받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응급상황에 대처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의학 또는 의료가 인간을 살린 게 아니라 그 반대로 인간이 의료를 살린 것이다.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치면서 말이다. 의료시스템은 비대해졌다. 제약산업은 팽창했다. 그러나 환자는 줄지 않고 급증했다. 의료시스템이 효과적이라면 왜 환자가 늘고 있는가? 왜 의료비는 급증하고 있는가?

 

어느 의사가 정말 자기 일에서 성공한다면 그것은 8체질의학과 비슷한 형태일 것이다. 다시 말해 환자의 체질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내 체질에 해로운 것과 이로운 것을 알면 환자 스스로 건강관리를 할 수 있다. 의학이 이런 방향으로 발전할수록 그 결과 전세계 환자의 수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환자가 스스로 자기 체질을 알아 건강을 도모할 수 있다면 병원에 가는 횟수는 줄어들 것이다. 병이 와도 큰 병보다는 (가벼운 부주의로 생기는) 작은 증상에 그칠 것이므로 큰 병원이 먼저 크게 줄어들고 작은 병원도 지금보다는 줄어들 것이다. 의료산업은 붕괴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크게 한 방 맞고 비틀거릴 것이다.

 

아토피 환자에게 스테로이드를 투여할 때, 그 약물의 작용을 들여다보면 근본치료의 목적에 부합하는 어떤 요소도 발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에 역행함을 알 수 있다. 병의 원인으로 지목되어야할 것은 환자 몸의 개인적인 조건(체질)과 그가 처한 생활환경(음식 주거 목욕 운동 사람관계 직업 등)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체질에 맞지 않는 섭생이 원인이다. 또한 그 잘못된 섭생으로 빚어지는 불균형 상태에서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몸의 반작용(방어작용)이 질병의 본질이다. 하지만 이 모든 사실을 외면하고 스테로이드를 투여하면 근본원인이 되는 잘못된 섭생도 그대로 유지되고 몸의 방어작용을 억제할 뿐이기 때문에 병이 낫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가리워지며, 그 가리워지는 기간을 연장하고자 스테로이드 용량을 늘릴수록 리바운드 역시 그에 비례하여 강렬하게 와서 그 환자의 몸은 파탄이 나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치료는 병의 원인이 되는 잘못된 섭생을 바로잡는 것, 즉 체질에 맞게 먹고 사는 것이다. 라이프스타일이 바뀌어야 한다. 잘못된 섭생으로 빚어진 몸의 불균형을 조율해야 한다.

 

 

 

 

 

몸의 불균형은 여러 레벨과 시점에서 관찰될 수 있는데, 전통한의학에서는 특히 장상론臟象論이라고 하여 장부의 허실虛實, 즉 내부장기의 불균형을 중요시했다. 이러한 인식이 어디까지 나아가냐면, 눈 코 입 귀 피부 등 언뜻 보기에 내부장기와 별 상관없이 보이는 기관의 문제들도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내부장기의 불균형으로 촉발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신과학의 시스템이론system theory과 유사하다) 즉 몸에서 나타나는 모든 증상의 뿌리本를 장부로 본 것이다. 그리고 장부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보이는 증상조차도 사실은 그 뿌리에서 뻗어나온 가지들標이라는 것, 몸의 여러 부분이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는데 그 중 핵심core에 해당하는 장부의 불균형에서 여러 병증이 뻗어나온다는 것이다. 동의수세보원에서는 더 나아가 사람의 상象에 따라 내부장기(장부)의 대소大小가 달라진다고 하였다. 8체질의학도 이러한 인식을 이어받아서 체질體質에 따라 내부장기의 강약배열이 달라진다고 하였다. 즉 체질에 따라 어느 장기는 강하게 타고나고 어떤 장기는 약하게 타고나는데, 그 차이로 만들어지는 선천적인 불균형이 후천적인 섭생을 잘못하여 더 커질 때 건강을 잃게 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이론에 따르면, 단순한 타박상이나 감기로 얻는 불편함조차도 그 실체는 외부충격에 의하여 유도된 내부장기의 불균형이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며, 단지 그 불균형의 정도가 작아서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과의 연관성을 쉽게 유추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이런 관점은 인체의 여러 곳을 잘게 나누고 점점 마이크로하게 분석해들어가기만 하는 서양의학의 관점에서는 이해되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잘게 나누어갈수록 그 구성요소들 각각의 유기적 연관성을 잡아내기는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의학이 분자 단위까지 파고들어갈 때 그것은 이미 길을 잃은 것이다.

 

생명은 단세포생물에서 다세포생물로 진화하였다고 한다. 단세포일 때는 먹이를 흡수하고 대사하고 배설하는 등 전 기능을 세포 하나가 담당하였으나 좀 더 효율적인 분업을 위하여 여러 세포가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게 되었다. 즉 어느 세포는 먹이를 소화하고 어느 세포는 운동만 담당하며 어느 세포는  외부세계를 지각하기만 하는 등의 분업이 이루어지고, 그 분업이 점점 고도로 발달 분화하면서 조직을 이루고, 조직이 모여서 장기를 이루고, 장기가 모여서 사람이라고 하는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만일 그 유기체를 구성하는 세포들끼리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갈등의 관계에 처할 때 그것이 모여 만든 조직의 건강이 위협당할 수 밖에 없고, 조직들끼리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그것이 모여 만든 장기의 건강이 위협당할 수 밖에 없고, 장기들끼리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그것이 모여 만든 유기체 전체의 건강이 위협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매우 자명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유기체 안에서 어느 장기가 홀로 강해져서 신체의 에너지를 독과점하면 나머지 장기들은 약해질 수 밖에 없으며, 그 불균형의 도度가 적당한 수준이라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으나 지나치면 건강을 잃게 된다'고 하는 8체질의학의 관점은 합리적이라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왜 장기들끼리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가? 그것이 처한 환경이 그렇게 유도하기 때문이다.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 활동 주거 등이, 한 몸을 구성하는 장기 중 어느 것은 강하게 다른 것은 약하게 유도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맞지 않는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선천적으로 강하게 타고난 장기는 강해지고 약하게 타고난 장기는 더 약해져서 그 차이가 더 벌어지는 것. 그러면 그 불균형의 종류와 정도에 따라 그것을 보상하기 위한 반작용으로서의 질병은 수천수만의 다양한 양상을 띠고 드러나는데, 그 양상 하나 하나에 끌려가다 보면 치료는 미로를 헤메는 것처럼 끝이 없게 된다. 하나는 치료했으나 새로운 증상 둘이 더 나오고, 그 두 가지 증상을 치료해보면 다시 네 가지 여덟가지로 병이 가지치기를 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병이 나으려는 치료가 아니라 병을 더해가는 치료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치료는 병의 뿌리本를 바로잡는 근본치료, 내부장기의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

 

8체질의학에서는 내부장기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본인 체질에 맞는 섭생을 강조하며, 침과 약을 사용한다. 침이라고 하면 전통한의학에서 사용하는 익숙한 도구이지만, 8체질의학에서는 특별히 고안된 체질침관에 침을 삽입하여 정해진 공식에 따라 정해진 혈을 일정한 횟수만큼 '뚫는 것'(puncture)으로 기존 침법과 다르다. 약 역시 전통한방에 수록된 기존 처방을 사용하지만 체질에 정확히 맞는 처방을 선별하여 사용함으로써 더 안전하고 빠른 효과를 담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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