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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냉대하

초등학교 1학년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어머니와 함께 진찰실로 들어왔다. 아이 어머니는 "아이가 입냄새와 냉대하가 심하다"고 한다.


아이는 식사를 할 때 입 안에 음식물을 담고 있는 버릇이 있는데 빨리 배고파지는 반면 입맛은 없다. 직접 물어보니 본인 스스로 "입이 쓰다"고 한다. 복진을 해보니 피부가 거칠고 촉진시에 닭살이 돋으며 복직근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해물 새우 파인애플을 먹으면 입술이 간지러워지고, 브로콜리 육류 딸기 등을 좋아한다. 3일에 1번 정도 대변을 본다. 땀은 많은 편이고 찬 물을 즐겨마신다. 냉의 색깔은 주황색으로 1년 정도 지속된 상태.


냉은 질점막을 보호하려고 나오는 여러 분비물이 합쳐진 점액인데,  질 내부의 상태를 반영하는 거울이 되어준다. 냉의 색이 탁해지거나 주황색으로 바뀐다면 질 내부의 염증이 만성화되었음을 의미할 수 있다.


냉의 역할은 마치 콧물과도 비슷하다. 코로 들어온 공기는 바로 폐에 들어가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공기의 조건은 매우 까다로운데 섭씨 35도에 습도는 95퍼센트여야 하고 먼지가 없어야 한다. 즉 그 공기는 따뜻하고 눅눅하며 깨끗해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폐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 비강의 점막에서 분비되는 콧물은 이런 항상성을 유지한다. 만일 그 몸의 주인이 스스로에게 맞지 않는 환경에 처해 있다면, 예를 들어 아주 차갑고 건조한 공기에 계속 노출되어 있다면 또는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의 섭취로 호흡계가 약해져 있다면, 그의 비강은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부담을 지게 될 것이다. 약한 기계가 많은 작업을 소화해낼 때 과열되듯이 비강 주위로 열이 몰리고 그 열에 의해 콧물은 졸여지고 그 빛깔이 탁해질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냉 역시 질 점막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만 불리한 환경[각주:1]에서는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될 것이고, 그 결과는 질의 만성적인 염증일 것이다. 질의 염증은 다시 질 내부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점액의 성질을 바꾸고, 그 바뀐 점액은 질 안에서 유해한 미생물이 번식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한다. 이런 경우 8체질의학의 치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첫째, 질점막으로 혈액순환을 촉진하여 염증이 스스로 완화되게 하며(항생물질을 통하여 인위적으로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둘째, 유해한 미생물이 번식하게 된 점액의 조건(濕熱)을 개선하여 더이상의 번식을 예방한다. 즉 냉이라고 하는 결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결과를 빚어내는 원인이 되는 조건을 바꿔주는 것이다. 이 아이는 체질식과 20일분의 체질약을 병행한 결과, "냉은 완전히 사라지고 입냄새도 많이 줄었다"고 아이 엄마로부터 전해들었다.


한의학에서는 진찰시 변증辨證이라고 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것은 여러 시점에서 몸의 불균형 상태와 그 원인을 거시적 기능적으로 인식하는 개념적인 도구다. 한의학은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숲을 보는 의학이다. 미시세계를 정밀하게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의 상태를 보고 몸이 외부환경과 조우하는 과정에서 어떤 내부의 불균형이 유도되었는지 큰 그림을 그리고 치료하는 것이다. 여러 변증체계에서 주목할만한 것 중 하나는 '어혈瘀血과 담음痰飮'이다. 어혈은 혈액이 응고되어 정상적인 순환을 방해하는 상태이고, 담음은 진액이 정체되어 정상적인 순환을 방해하는 상태다. 특히 담음은, "10가지 병 중 9가지는 담음으로 인한 것 十病九痰"이라고 이야기할 만큼[각주:2] 상당히 많은 병리를 아우른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한 콧물이나 냉은 한의학에서는 담음의 범주에 속한다. 이 담음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내공장기(소화관이나 안이비인후나 자궁 등 속이 빈 장기)의 염증으로 인해 진액이 졸여지거나 엉긴 결과물이다. 실제로 담痰이라고 하는 한자를 풀어보면 질병을 의미하는 글자 疒와 염증을 의미하는 炎이 결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염증으로 생긴 병리적 산물이라는 것. 담은 염증의 결과물이지만 그 자체로 유해한 미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 치유를 방해하므로 치료를 위해서 마땅히 제거되어야 한다. 담으로 생기는 병은 안이비인후의 질환과 위장병, 자궁질환, 피부병, 안검경련, 일부 정신병 등 상당히 광범위하다. 내공장기에 염증이 생기는 근본적인 원인은 체질에 맞지 않는 섭생이다. 이 가운데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치료와 동시에 체질에 맞는 식이요법을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1. 체질에 맞지 않는 생활습관 뿐 아니라 질 주변을 청결히 관리하지 않는 습관도 냉의 악취를 발생시킨다. 예를 들어 배변 후 화장지를 사용할 때 질이 있는 앞쪽으로 닦는다면 질이 훨씬 오염되기 쉽고 그 결과 냉이 발생하기 쉽다. 유아의 경우 배변 후 항문의 뒷쪽방향으로 닦도록 어려서부터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본문으로]
  2. 醫學入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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