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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뱃속의 물소리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분이 며느리의 소개로 치료받으러 오셨다. 며느리는 "아버님이, 장이 아주 약하다"고 한다. 뱃속에서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는 것. 그 소리가 어느 정도로 심하냐면, “소파에 앉아있는 아버님한테서 나는 뱃소리가 멀리 떨어진 부엌에서 들릴 정도”라는 것이다. "부르릉 부르릉 오토바이 시동 거는 소리처럼 크다"고 한다. 그 밖에 전립선비대 때문에 소변이 나오려면 오래 걸리고 시원하지 않으며 사타구니가 당긴다. 밤에 세 번 소변을 보러 깬다. 항생제를 먹으면 전립선 증세가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 돼지고기를 먹으면 등에 피부트러블이 생기고, 대장이 안 좋아서 소주 한 잔만 마셔도 설사를 여러 번 한다. 현재 복용중인 약물이 꽤 많다. 전립선비대·대장증세와 관련한 약물들, 울트라스크정, 원콕스캡슐, 타가메트정, 비타민C, 오메가3, 수면제.


70대라는 걸 감안하면 비교적 정정해보이셨는데, 복진을 해보니 피부는 얇고 하복부가 무력하며 손으로 압진할 때 장명腸鳴이 심하다. 체질한약 치료를 원하셔서 대장 안의 수분을 흡수하고 영양을 공급해주며 심혈관계 순환을 촉진하는 처방을 20일치 투여하였다. 3주 후 며느리분이 전해주시길 "뱃소리가 많이 줄어서 거의 안 들린다"고 했다. 이 노인분은 목양체질인데, 목양체질은 목음체질과 함께 대장이 약하게 타고난다. 체질에 맞지 않는 식생활로 약하게 타고난 대장이 더 약해지고 대장의 연동운동이 부족해지면, 약해진 대장이 평소 수준의 음식물 소화를 담당하기에 무리가 오고 제대로 흡수되지 못한 수분이 대장에 머물면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8체질의학에 따르면, 사람의 체질에 따라 내부장기의 강약배열에 차이가 있는데 이 장기들 간의 차이(불균형)가 커질수록 건강을 잃게 되며 그 결과 여러 가지 질병 및 증후군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체질적으로 약한 장기를 촉진하고 지나치게 강한 장기는 억제하는 방향으로 섭생과 치료를 해야만 그 타고난 불균형이 완화되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음식이다. 우리가 어떤 음식을 섭취할 때 내부장기 모두가 골고루 그 영양을 똑같이 분배받는 것이 아니라 음식에 따라 특정 장기가 집중적으로 영양을 제공받아서 그 장기의 기능이 촉진되며, 따라서 약한 장기를 촉진할 수 있는 음식을 먹고 강한 장기를 촉진하는 음식을 단절하는 것이 올바른 식이요법이라는 것이다. 아무거나 골고루 먹어야 건강하다는 기존 상식은 낡은 편견일 뿐이며, 내 체질에 맞는 것을 찾아먹는 것이 진정 나에게 유익을 주는 식이요법이다. 아무것이나 골고루 먹으면 내 체질에 이로운 음식도 먹지만 해로운 음식도 먹기 때문에 그 해로운 음식의 유해함이 이로운 음식의 유익함을 상쇄함으로 난치병을 치유할만한 강력한 효과는 나오기 어려우며, 반드시 체질적으로 유익한 음식을 선택하여 소위 '지혜로운 편식'을 하는 것이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비법이다.


이 노인분의 증상에는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 섭취 외에 한 가지 원인이 더 작용하고 있었다. 이 분은 일할 때 허리가 아파서 '원콕스'라는 진통제를 복용중이었는데, 이 약물의 부작용 가운데 고창鼓脹[각주:1]이 있었던 것. 체질섭생을 완벽하게 지키더라도 그 약물의 작용 하나만으로 그 분의 대장은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그 분에게 "그 약물을 끊지 않으면 다 나았다고 해도 반드시 재발할 것"이라고 예고했으나, 이 분은 "집에 있으면 답답하여 계속 일하고 싶은데, 일을 하면 허리가 아파오므로 진통제를 먹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며 난감해하셨다. 일을 안할 때는 통증이 없기 때문에 그 통증은 오로지 본인의 체력 범위를 넘어 일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었다. 이 분은 원콕스를 계속 복용하였고, 두 달 후 필자가 예고한대로 뱃소리가 재발했다.


필자가 생각하기로는, 사람들의 욕망이 대증요법을 부르고 있는 것 같다. 자연으로부터 받은 몸의 조건과 인위적으로 생겨나는 욕망 사이의 갭을 대증요법들이 메워주고 있는 것. 동의보감에 虛心合道라는 말이 있다. 마음을 비워서 자연의 규율과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마음이 만들어내는 욕망에 몸을 맞추려고 하면 병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몸의 규칙에 마음을 맞춰야 편안해진다. 그리고 대증요법에서 자유로워져서 진짜 건강을 얻게 된다.

  1. [의학] 창자 안에 많은 가스가 차서 배가 땡땡하게 붓는 병.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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