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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저체온증

50대 초반의 여성이 밝은 표정으로 진찰실로 들어왔다. "10년 전 유방암 때문에 항암치료와 방사선요법을 받으면서 체력이 크게 떨어졌다. 특히 가끔 혈압이 많이 떨어지는데 그러면 몸이 아주 힘들어진다. 혈압 90-40에서는 저체온증이 와서 입술이 파래지면서 관절통이 동반되고, 혈압 70-40에서는 방광염이 와서 잔뇨감이 뚜렷하고 배뇨통이 극심해진다. 평소 찬 물을 마시면 얼음을 집어넣은 듯한 느낌이 들면서 방광염이 바로 와버린다. 배가 차갑다고 느끼고 변비도 심하다. 컨디션 좋을 때 혈압을 재보면 110-70 정도는 된다. 미국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날씨가 따뜻해서 통증이 없었다."고 한다.


식사는 잘하는지 물어보니 "입맛이 없고, 안먹어도 배고픈 줄 모르겠다. 과식하면 힘들다. 등푸른생선을 먹으면 목에 걸리는 느낌이 있고, 생목이 오르며, 배에 가스가 찬다"고 한다. 1년 전에 폐경이 되었고, 여러 가지 건강식품으로 버티고 있다. 메주콩이 배변에 도움을 주었다. 다른 한의원에서 체질을 '목양체질'로 이미 확진받은 바 있는데, 체질식은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


필자 역시 목양체질로 보고 치료했다. 치료중 목양체질에게 유익한 음식들, 특히 뿌리채소와 육류 섭취를 강조했으며, 심혈관계의 혈액순환을 돕고 장의 온도를 높여주는 처방을 사용했다. 환자분은 치료받는 동안 체질식을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지켰고, 1달 반 정도 치료하면서 저체온증, 방광염, 소화불량 등의 증상들이 모두 개선되었다. 치료받은 후부터 두 달 가까이 저체온증이 온 적은 없다. 치료 전에 저체온증이 왔던 빈도수와 비교해볼 때 뚜렷하게 호전된 것이다. 또 오랫동안 멈추었던 생리가 돌아왔고, 손톱이 새로 자라기 시작했다.


이 환자는 체질에 맞지 않는 섭생과 대증요법으로 암이 발생하였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심혈관계가 쇠약해지고 혈압이 떨어진 것이 저체온증이 생긴 근본적인 원인이다. 전통 한의학 체계에서도 이런 타입의 저체온증을 다룬 적이 있다. 장중경張仲景이 후한말(206년경)에 저술한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을 보면 질병을 열과 관련된 증후군을 중심으로 크게 6가지로 분류하는데, 그 중 열의 부족으로 발생하는 것은 태음병, 소음병, 궐음병이다. 열의 부족이 소화계의 약화로 드러나는 것이 태음병太陰病, 심혈관계의 쇠약으로 신진대사가 떨어져서 잠만 자려는 것을 소음병少陰病, 이러한 상태가 극도로 악화되어 손발이 얼음처럼 차가워지면 궐음병厥陰病으로 분류하였다. 실제로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에서는 이 세 가지 패턴이 칼로 무우 자르듯이 딱딱 잘리지 않고 뒤섞여 있을 수 있으며, 태음병-소음병-궐음병은 각각 어떤 체질에서 병이 악화되어가는 과정의 한 국면을 묘사한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위 환자분의 경우가 그랬다. 소화가 안되어 배에 가스가 차고 저체온증도 나타나고, 피로감을 심하게 느끼는 등 증상은 뒤섞여 있다. 하지만 이 증상들은 모두 결국 체열의 부족으로 인한 것이다. 방광염 가스팽만감 피로감 등은 비유하자면, '체열의 부족'이라는 큰 뿌리에서 나온 작은 가지들이기 때문에 이 메커니즘을 복구할 수 있다면 그 증상들 역시 마땅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체열의 부족은 혈압이 낮아진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혈압이 낮아졌기 때문에 몸이 차가워졌고 병약해진 것이므로, 건강을 찾으면 혈압은 올라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실제로 이 분은 치료 후 컨디션이 빠르게 좋아지는 시점에 혈압이 124-76까지 올랐다고 알려주었다. 목양체질은 평균혈압에서 조금 높은 편이 가장 좋은 컨디션을 유지한다. 물론 이 혈압은 혈관이 기름때로 막혀서 힘들게 순환시켜야 할 필요성에서 나오는 고혈압이 아니라 심혈관계가 건강하고 활력이 넘쳐서 나오는 고혈압이다. 이 두 가지는 질적으로 다르다. 수치는 같더라도 이 둘은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증상을 명확하게 갈라보려면 혈압수치 뿐 아니라 환자 몸에서 나타나는 다른 증상들도 면밀하게 체크해야 한다. 호흡, 소화, 배변, 수면, 심리상태, 안색 등을 살펴보아 별다른 이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혈압수치 하나만 높다면 이것은 정상인 것이며, 그 혈압이 그 사람의 정상혈압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 때 만일 이 혈압을 억지로 낮추면 몸 전체가 혈액의 자양을 충분히 받지 못하여 쇠약해진다. 이 환자분이 체질섭생을 꾸준히 하여 몸이 점점 더 건강해진다면 그 결과 혈압은 적절한 수준까지 올라갈 것이다.


여러 사례에서 이미 드러났듯이, 항암과 방사선요법이 몸에 가하는 충격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몸 전체의 활력은 줄어들고 여러 가지 부작용이 찾아온다. 8체질의학은 이런 경우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8체질의학의 장점은 암을 실제로 발병시키는 근본원인이 되는 생활습관을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병원에서도 암환자에게 생활습관을 바꾸라고 권유하지만, 그것은 환자 개개인의 체질을 고려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기계적으로 같은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다. 하지만 병은 환자 개개인의 특수한 조건과 생활습관의 부조화 때문에 생기는 것이므로 그런 방법은 실제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치료할 때 그 사람의 체질을 살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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