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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불면증

60대 여성이 진료실로 들어온다. 다른 분 소개로 왔는데 "잠이 안온다"고 한다. 수면제를 1년간 거의 매일 복용하고 있다. 안 먹으면 불안하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 밖에 여성호르몬제를 10년째 복용하고 있다. 눈이 뿌옇고, 머리가 아프고, 손발이 유난히 차고, 글쓰는 것도 흔들려서 힘들다. 변비가 심하고, 소변이 시원하지 않고, 입이 마른다. "건강검진을 받은 적이 있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환자분은 아들내외의 불화를 걱정하고 있다.

약물 복용을 모두 중지시키고 체질식, 침치료, 한약치료를 병행했다. 이 환자분은 체질에 맞지 않는 식생활, 아들내외에 대한 근심, 아들내외가 맡긴 손주를 기르는 스트레스가 결합되어 불면증을 유발하고 있었다. 거기에 수면제를 오래 복용하여 자율신경계가 교란되어 불면증을 악화시켰다.

4일간 치료하고 나서 "예전에는 수면제 2알을 먹어도 잠이 안왔는데 이제 1알만 먹어도 잠이 온다. 침치료 후 가슴이 시원해졌다"고 한다. 수면제 복용을 완전히 중지할 것을 권고했다. 1주일간 치료하면서 눈 뿌옇던 게 많이 줄고, 손발이 따듯해지고, 두통과 요통이 완화되었다.환자는 "계속 잠이 안 오지만 이상하게도 몸컨디션이 좋다"고 한다. 뚜렷한 호전반응이었기 때문에 계속 같은 처방으로 밀고 갔다. 2주째에 "변비가 이제 없다. 잠도 좀 왔다"고 한다. 환자가 야식과 라면을 즐긴다고 하여 중지할 것을 권고하였다. 3주째가 될 쯤 환자가 체질식을 안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환자분은 토양체질인데 인삼, 대추, 꿀, 율무, 카레 등 체질에 해로운 것을 계속 먹고 있다고 하였다. 체질식의 중요성을 다시 설명드렸다. 하지만 환자는 그 다음날은 짬뽕을, 그 다음날은 매운 김치를 먹고 야식으로 고구마 피자를 먹었다. 다시 체질식을 강조하였다. 2주째부터 3주째까지 환자는 몇 시간씩 자게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처방을 투여하였다. 환자는 이 때부터 저녁 운동을 시작하였다. 저녁 운동은 일시적으로 심장흥분도를 높이고 운동이 끝나면 심장흥분도가 자연스럽게 떨어지면서 수면을 돕는다. 환자는 이 때 12시나 1시부터 자기 시작하여 7시나 8시쯤 깨는 등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이것은 수면제의 힘을 빌리지 않았기 때문에 괄목할만한 성과였다. 하지만 여전히 환자는 체질식을 잠깐씩 어기고 있었다. 1달째 될 때 현미를 먹었다고 실토하였다. "몸의 기가 막힌 느낌이고 예전과 같이 다시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프다"고 한다. 다시 체질식을 강조하였다. 그 다음 2주가 흘러서 환자분은 아들내외가 심하게 부부싸움을 하는 바람에 신경을 많이 쓰고 다시 잠이 안와서 수면제를 2회 복용했다. 동시에 다시 등허리 통증이 동반되고 어깨와 목이 무거워졌다. 게다가 필자가 지어준 처방까지 아껴 먹느라 하루치를 2~3일에 한 번 복용하는 식으로 나눠서 먹었다. 하루치 분량을 2~3일에 나누어 주었으니 약효가 반감되었고 결국 수면제에 다시 의존하게 되었다. 이 환자분은 수면제를 끊으면서 눈이 뿌연 느낌, 두통, 몸의 무거움, 수족냉증, 대소변의 시원하지 않음 등이 모두 사라졌지만 수면제를 다시 복용하면서 원래대로 돌아갔다.

이 사례를 살펴보면 독자분들이 병의 원인에 대하여 좀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 환자분이 잠이 안 온 것은 기본적으로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을 섭취하였기 때문이다. (다른 원인이 없어도 이것 하나로 잠이 안 올 수 있다.) 거기에 자녀내외가 준 스트레스가 결합되는데, 그 자녀내외의 불화는 결국 돈 때문이었다. 아들이 사업실패로 빚을 졌는데 며느리는 그것을 시댁에서 보상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들은 자기들 선에서 천천히 일해서 갚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환자분은 그동안 여러 번의 경제적 도움을 아들내외에 주었으나 며느리가 끝도 없이 요구하는 바람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하였다. 이미 아들내외가 불화를 겪고 있기 때문에 자기마저 며느리를 내치면 아들은 이혼을 하게 되고 손주는 결손가정의 아이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 돈을 요구하는 며느리에 대한 분노를 억제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불면증을 얻게 된 것이다. 그래서 수면제를 복용하게 되었고 잠은 왔지만 수면제가 자율신경계를 교란하여 몸은 점점 균형이 깨져갔고 그에 따라 여러 가지 부작용들이 몸 전체에 나타났다. 필자가 준 처방은 그 균형을 바로잡는 처방이었고 그 처방 덕에 1달 이상 수면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체질식이 엄수가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자녀내외의 불화가 점점 심해져서 다시 수면제에 의존하게 되었다. (수면제는 반드시 끊어야 한다. 오래 복용하면 치매가 온다.)

요약하면,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의 섭취, 스트레스, 대증요법이 결합하여 현재의 몸 상태를 만들어낸 것. 따라서 이 환자분의 병이 나으려면 체질식을 하여야 하고 아들내외의 문제를 아들내외가 스스로 해결하도록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리고 수면제를 끊어야 한다.

자연스러운 잠(수면제를 통해 인위적으로 얻은 잠이 아니라)은 모든 신경증을 치료하는 가장 뛰어난 처방이다. 사람관계에서 겪는 사소한 갈등은 잠만 잘 자도 모두 해소된다. 꿈은 정신적 면역반응이다. 낮에 만들어낸 갈등이 많을수록 꿈이 많아지고 그 양상도 격렬해진다. 하지만 그 과정을 겪고 나면 마음은 평화(항상성)를 되찾는다. 그러나 낮의 갈등이 빚어낸 정신적 갈등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버리면 꿈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 때 바로 불면증이 오는 것이다. 그 때는 그 문제 자체를 자기한테서 완전히 떼어내는 수밖에 없다. 그 문제를 자기와 동일시하지 말고 하나의 사물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완전한 무관심을 실현하는 것이다. 치료를 위해서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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