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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계

"두통이 너무 심해서 큰병원에 갔다. MRI 찍어봤는데 아무것도 안나오더라" 

"건강검진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늘 피곤하고 찌뿌둥하다" 

이런 부분은 현대의료의 맹점일 것이다. 진단기계로 찍어봤을 때 아무 이상도 없는데 환자 본인은 불편함이나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는 흔하다. 이것은 기계가 짚어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기계가 관찰할 수 있는 부분은 그 기계의 관찰범위 안에 들어오는 어떤 구조적인 변화다. 그런데 구조적인 변화가 관찰되지 않아도 기능적인 이상이 있다면 환자는 불편함이나 통증을 호소할 수 있다. 

또, 구조적인 변화라고 해도 기계가 관찰할 수 있는 범위나 관찰대상이 되는 요소는 제한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이런 경우가 있다. 어떤 환자분이 골밀도검사를 해보니 성장판이 닫혔는데 실제로 그 이후에도 키가 자랐다는 것이다. 기계가 얻어낸 정보로는 성장판이 완전히 닫힌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고 아주 미세하게 열려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미세한 차이는 그 기계가 관찰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었을 것이다. 

어떤 분은 건강검진에서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암에 걸린 걸 알게 됐다고 한다. 건강검진에서 아무 이상 없었을 때도 암세포는 자라고 있었거나 암은 되지 않았더라도 몸에 이상은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은 기계의 관찰범위 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미약했을 것이다. 그러면 기계를 더욱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 최선일까? 그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계에 의존하기 전에 환자 스스로 몸의 느낌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것이 이상이 있느냐 없느냐를 살피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기계가 포착하지 못하는 이상도 몸은 감지할 수 있다. 암에 걸리기 전에 정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환자는 없다. 피로감이라든지 식욕부진이라든지 사소한 변화라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는 기계로 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태를 방치한다면 결국 진단기계에서 관찰될 수 있는 암처럼 큰 병이 되는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治未病을 최고로 본다. "아직 병이 되지 않은 상태" , 즉 큰 병이 되지 않았을 때 치료하는게 최선이라는 것이다. 병이 작을 때 치료하는 것이 더 쉽다. 치료기간도 더 짧고 치료가능성도 더 높다.     

테크놀로지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걸 의미할 수는 없다. 현대의료의 맹점은 테크놀로지에 모든 걸 맡겨버리고 의료인이나 환자가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볼 여유를 잃었다는 것이다. 마땅히 환자 본인이 느껴야 하는 감각까지 테크놀로지로 대체해버리고 '자기 몸에 대한 아웃사이더'가 되어 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테크놀로지가 아무리 발달해도 그것으로 알 수 없는 게 있다. 몸과 환경 사이의 되먹임관계, 몸에서 나타나는 여러 증상들의 유기적인 맥락은 기계로는 알 수 없다. 생명 그 자체의 본질은 영원히 생명을 가진 존재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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