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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손목통증과 고혈압

오래전 한 여성의 치료를 한 적이 있다. 다른 환자분 소개로 오신 분인데, 난소와 유방에 종양을 발견한지 1달이 됐고 손목에 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손목을 관찰해보니 혈관이 터져서 멍이 심하게 들어 있다. 왼쪽 어깨도 통증이 있다. 환자는 혈압이 높고 혈압강하제를 복용하고 있다. 그 밖에는 감기가 빈번하게 오고 오래가며 항생제를 달고 산다.       

이 환자의 상태는 체질에 맞지 않는 섭생(특히, 음식)과 그로 나타난 증상에 대하여 대증요법을 가한 결과였다. 따라서 대증요법을 중단하고 체질식을 실천하는 것이 치료의 기본전제가 되는 것은 두 말 할 여지가 없었다. 필자는, 환자가 대증요법을 사용할 때 반드시 중단을 권고하지는 않는다. 환자가 대증요법을 중단하는 것에 지나치게 공포감을 갖고 있는 경우나 중단하지 않아도 환자가 호소한 증세들이 개선될 가능성이 있으면 그냥 복용하라고 한다. 대증요법을 중단하라고 하는 것은 필자의 입장에서도 부담이 된다. 다른 병원에서 준 약을 중단하라고 권고할 때 그 병원과 생길 여러 가지 마찰-물론 이 마찰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지만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을 감당하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환자는 한 쪽에서는 약을 주고 다른 쪽에서는 약을 끊으라고 했을 때 혼동을 느낄 것이고, 근본치료를 포기할 수도 있다. 치료하면 나을 수 있는 환자가 치료를 포기하는 걸 보는 기분은 우물가로 걸어가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느낌과 비슷할 것이다. 그런 기분을 느끼기 보다는 대증요법은 그대로 두고 체질식을 천천히 익히게 해서 대증요법을 스스로 중단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나은 전략일 수도 있다. 어쨌건 환자들 대부분이 바라는 것은 지금 당장 고통을 덜기만 하면 되는 것이고 그렇게 고통을 더는 수단이 몸에서 어떤 작용을 하고 어떤 식으로 병을 변형시켜가는지 알기란 쉽지 않기 떄문에 의료도 의학도 그런 방향으로 발전하고, 의료인들도 대부분 그런 방식의 치료를 합리화하게 된다. 일부 의료인들은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지만, 대다수 의료인들이 늘어놓는 '전문적인 핑계'와 침묵과 공격들은 그런 흐름을 억제한다. 환자들이 직면한 문제는 현재의 일반화된 치료방식이 병을 새로운 형태로 변형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눈앞의 통증이 사라졌다고 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진통소염제, 항생제, 스테로이드의 메커니즘은 병을 더 위험하게 변형시킨다. 체질에 맞지 않는 한약도 여기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이런 점은 이미 소수의 양심적인 의료인들에 의해 드러나고 있지만 동시에 다른 의료인들에 의해 묵살되기도 한다.   

이 환자의 상태도 그런 대증요법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필자가 우선 목표로 삼은 것은 몇 달간 계속되어온 왼쪽 손목의 통증을 사라지게 하는 동시에 혈압강하제를 중단하고 몸 스스로 혈압을 조절할 수 있게 유도하는 것이었다. 이 환자의 왼쪽 손목이 아픈 것은 내부에서 스스로 혈관이 터졌기 때문이다. 혈압강하제를 오래 복용하여 인위적으로 혈압을 떨어뜨리면, 그에 상응하는 혈관의 탄력성이 약해지고 쉽게 터지게 된다. 그러면 멍이 잘 드는데 환자 본인은 어디서 멍이 들었는지 모를 정도다. 따라서 혈압강하제를 중단해야 하는데, 중단하면 혈압이 다시 오르기 때문에 그동안 약해진 혈관이 다시 터질 수 있다. 이것을 막으려면 혈압약을 중단하는 동시에 체질에 맞는 음식을 섭취해야 하고 혈관이 터지는 것을 막는 근본치료가 필요하다. (어떤 경우는 체질식을 충분한 기간 실천하고 난 뒤에 혈압강하제를 중단하기도 한다. 또는 어혈을 개선하는 처방을 투여하기도 한다. 혈액이 질적으로 기능적으로 개선되면 혈압이 상승할 여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이 더 안전할 수도 있다.)

체질침을 처음 2회 시술한 후 환자는 "잠을 아주 깊이 잤다"고 하였다. 이것은 치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간다는 시그널로 해석할 수 있다. 1주간 치료하면서 "통증은 아직 남아있지만 컨디션이 너무 좋다"고 하였고, 2주 후 "난소종양 때문에 허리가 따끔거렸고 유방종양 때문에 가슴이 아팠는데 그것이 사라졌다". 3주째에는 손목통증은 절반 이하로 줄었고 부기가 많이 빠졌다. 5주 정도를 치료하면서 수축기 혈압이 140 이상이었던 것이 130대로 떨어졌다.      

이 여성은 남미여행을 간다고 하여 해당국가의 주식을 검색해서 어떤 음식이 위험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여행중에도 반드시 체질식을 해야 한다고 권고하였다. 필자가 가장 염려스러운 순간은 치료가 다 끝났을 때다. 좋아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온전히 환자의 몫이다. 진짜 치료는 사실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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