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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스테로이드 리바운드: 세포 단위의 화재

전화가 왔다. 미국에 사는 언니를 치료해달라고 부탁했던 분인데 "언니 아픈 데가 모두 사라졌다"고 전해주셨다. 자세히 들어보니 발뒤꿈치 화끈거림이 남아있었지만 어쨌거나 호소증상 대부분이 사라진 것은 분명했다. 이 분의 언니는 천식·관절염을 앓고 있었고 스테로이드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런 분들은 스테로이드를 중단하면 그동안 밀린 면역반응이 한번에 올라오기 때문에 치료가 쉽지 않다. 이것을 스테로이드 리바운드라고 한다. 그동안 스테로이드 리바운드 치료는 여러 차례 실패를 맛보았기 때문에 이 결과는 상당히 값진 것이다.[각주:1] 

스테로이드는 부신피질호르몬을 모방한 약물인데 그 원료는 콜레스테롤이다. 간단히 말해 지방성분, 기름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방은 일반적으로 세포막 구성성분이다. 세포는 대부분 물로 이루어지는데 기름은 물과 섞이지 않기 때문에 막이 되어 세포를 외부 자극에서 보호한다. 

환자가 체질에 맞지 않는 생활습관을 유지하면 내부장기 밸런스가 무너지고, 그 상황을 세포단위에서 관찰해본다면 아마도 세포 내부가 약해져서 외부 압력으로 파열되려는 장면이 포착될 것이다. 이 때 스테로이드라고 불리는 이 특별한 기름이 몸안에 주입되면 지방전구세포를 지방으로 분화시키고 이 지방이 세포막을 보강해서 염증반응에 대한 일종의 쿠션 또는 방화벽을 만든다. 파열되기 직전의 세포를 둘러싼 기름으로 만든 성벽. 그것이 모두가 감탄하는 스테로이드 항염증작용의 실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스테로이드가 처음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이 기름벽이 슬슬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이 낡은 기름벽이 산소와 결합하면서 산화콜레스테롤로 변성되면 면역반응을 증폭시킨다. 쉽게 말해 처음 신선한(?) 상태에서는 위태로운 세포를 보호하는 성벽이 되어주지만 이 기름이 오래 되어 산화되면 불이 붙기 시작한다.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증상들의 본질은 세포단위에서 발생하는 화재라고 할 수 있다. 오래된 기름이 산화되고 불이 붙기 시작한다. 그 화재는 온몸에서 나타난다.[각주:2]

이런 점을 생각해본다면, 스테로이드 리바운드에 스테로이드를 다시 투여해서 멈추려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랄까. 물론 그 기름은 일시적으로는 성벽이 되어주겠지만 말이다. 체내에 축적되는 스테로이드가 많아질수록 그 기름들이 유발하는 세포단위의 화재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간다.[각주:3] 

따라서 그 치료는 불을 끄는 것, 청열약류淸熱藥類에서 찾아야 한다. 그 약재는 스테로이드 리바운드를 상쇄할만큼 산화콜레스테롤의 영향력을 강력하게 눌러야 한다.[각주:4] 필자는 고전古典에서 그 약재로 구성된 처방을 발견했고 다른 약 복용을 모두 중지시키고 이 처방을 위 환자분한테 투여했다. 이 분은 50대 후반으로 감기가 오면 쉽게 폐렴에 걸리고 알러지성 비염을 달고 산다. 천식 때문에 흡입형 스테로이드를 사용중이다. 편두통이 심해서 구토할 때도 있고 지방간도 있어서 Urso를 복용했으나 별 효과가 없다. 6년전부터 프레드니솔론 복용하면서 위가 안좋아졌고 경추 요추에 디스크가 있어 진통소염제에 의존하고 있다. 오른쪽 발뒷꿈치가 화끈거린다. 손가락관절도 부어서 굽혔다 폈다 하기가 불편하다. 오른발 발바닥 안쪽이 피부가 건조하게 말라있다. 야간뇨 빈뇨경향이 있고 잠이 제대로 안온다. 아침에 못일어나는데 패밀리닥터는 우울증이라면서 수면제를 주었다. 신우염 병력이 있고. 신장약 복용중이다. 혈압은 낮은 편이다. 성격은 쾌활하고 아주 적극적이다. 체질감별과정에서 본인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필자에게 아주 확실하게 어필해주셨고 덕분에 체질을 정확하게 감별할 수 있었다. 이 분은 척추관절의 통증 때문에 주사제 형태의 스테로이드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몇 개월에 한번씩 맞는다고 한다. 미국에서 살기 때문에 침치료는 처음 1주 정도만 체질감별을 목표로 했고 그 다음은 한약치료(40일 단위), 체질식으로만 진행했다. 이 분은 체질식을 정확하게 지켰다. 미국에서 부동산을 하시는데 일이 너무 바빠서 식사를 제대로 못하실 정도라고 했다. 그래서 체질에 유익한 과일·곡물을 모두 갈아 두유에 타서 한번에 섭취하는 등 본인한테 주어진 조건에서 상당한 노력을 했다. 처음 40일치에서 호전반응이 나타났고 두 번째 40일치에서는 리바운드를 더 충분히 상쇄할 수 있도록 처방의 군약(君藥)을 원래처방 농도보다 1.5배 높였다. 

이 분은 변비가 심해서 미라맥스를 복용해야 변이 나온다고 했다. 이 변비는 그 동안 먹은 음식들이 체질에 맞지 않아 소화관 열이 항진되어 변이 말라붙은 것이다.[각주:5] 그리고 이 막힘이 폐에도 영향을 주어 숨이 차게 된 것이다. 두 번째 40일치 처방 복용을 마치고 천식도 사라지고 변도 부드럽게 나온다고 한다. 전화로 들리는 목소리도 경쾌해졌다. 이 분이 체질식을 계속 실천하고 과로를 피하면 재발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1. 스테로이드 리바운드 치료에서 여러 차례 실패를 맛본 것이 부끄럽지는 않다. 스테로이드 리바운드를 제대로 치료하는 병원은 전세계적으로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니까. 이런 현실은 유명한 대형병원이라고 다를 게 없다. 스테로이드 리바운드를 치료해달라고 가면 스테로이드를 준다. 그게 현실이다. [본문으로]
  2. 이 비유는 꽤 적절하다. 스테로이드 리바운드로 나타나는 증상들을 떠올려보자. 피부염 발진 가려움 홍조 고혈압 불면 등, 말 그대로 火의 양상을 띤다. [본문으로]
  3. 언젠가 EBS 건강프로그램에서 어떤 의료인이 만성질환에 스테로이드를 장복해도 안전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걸 보고 혀를 찬 적이 있다. 문제는 대증요법이 마치 표준치료법인 것처럼 미디어를 통해 의료소비자들을 세뇌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니 모두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나. [본문으로]
  4. 열을 끄는 약재로 세포 단위의 화재를 진압하고, 동시에 체질식을 통해 그 화재의 원인이 되는 산화콜레스테롤을 배설시키는 것이 이 치료의 전략이었다. 스테로이드 리바운드를 치료할 때는 체질에 맞는 음식이라도 동물성지방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생각은 필자의 임상경험에서 추론된 것이다. 피 속이 더러운 기름으로 가득차 있는데 깨끗한 기름을 넣는다고 괜찮을까? 깨끗한 기름과 더러운 기름이 섞이면 전부 더러운 기름이 된다. 그 기름들은 모두 리바운드의 재료가 된다. 그래서 체질에 맞는 음식이라도 동물성지방이 들어가면 리바운드를 잡을 수가 없다. 이런 부분 때문에 스테로이드 같은 대증요법이 가해지면 기존의 체질식이 그대로 적용될 수가 없고 몇 가지 요소를 더 고려해야 한다. 동물성지방을 다시 섭취할 수 있는 시기는 산화콜레스테롤을 충분히 배설시킨 다음이 되며 그 때도 체질에 유익한 음식의 종류만으로 제한해야 한다. 또 체질에 유익한 음식이라도 기름에 튀겨서 먹지 말아야 한다. [본문으로]
  5. 한의학에서는 위열胃熱이라고 한다. 한의학에서는 위胃는 stomach를 뜻할 때가 있고 G.I.tract를 가리킬 때가 있다. 전통 한의학 텍스트는 다의적으로 쓰이는 용어들이 꽤 많아서 전체 맥락을 파악하지 않고 보면 완전히 잘못 이해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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