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

당뇨합병증

50대 중반의 여성이 진찰실로 들어온다. 무릎타박상 어깨근육통 때문에 왔다. 가볍게 치료해주고 보내면 되겠거니 했지만 문득 눈가의 다크서클과 잔주름을 보니 병이 가볍지 않은 것 같다. 자세히 들어보니 타박상 생긴지 3개월이나 지났는데 안낫고 있다. 혈압이 높고 발가락은 감각이 무뎌지면서 차갑고 눈은 백내장 때문에 수술이 예약된 상태. 왼손 손가락 4지·5지는 아프고, 현재 감기에 걸려 오한이 있고 목이 부었다. 평소 소변을 자주 보고 늘 피로하다. 

이 환자는 당뇨가 있다. 40대부터 당뇨를 앓았다. 인슐린 맞은지 4년. 현미식을 한다. 

엽산 비타민C 바이엘아스피린 혈압강하제 콜레스테롤저하제를 먹고 있다. 가끔 족욕을 한다.

이 환자한테 나타난 증상은 거의 모두 당뇨와 관계가 있다. 타박상 생긴지 3개월이 지났는데 낫지 않는 것은 당뇨로 혈액이 점조해져서 상처치유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혈액이 점조해져서 제대로 흘러가지 못하니 치유속도가 느려진다. 끈적끈적해진 피를 나아가게 하려면 더 많은 압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혈압도 높아진다. 발가락에 감각이 무뎌진 것은 말초신경합병증이다. 혈액이 끈적끈적해져서 신경이 혈액을 통해 영양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눈도 혈액순환이 제대로 안되긴 마찬가지라 백내장이 왔다. 이대로 흘러가면 망막증이 와서 눈이 멀게 될 것이다.[각주:1] 왼손 손가락 통증도 특별히 무리한 일이 없으므로 당뇨로 생긴 관절염이다. 소변을 자주 보고 피로한 것도 당뇨합병증이다. 신장은 혈액을 정화하는데 고혈당으로 오염된 혈액이 늘면서 신장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이다. 이 상태로 방치하면 결국 신부전까지 가게 될 것이다. 즉 신장이 완전히 망가지게 될 것이다.   

"당뇨병"이란 병명이 붙은 것은 그 병이 소변에서 당이 검출되기 때문이다. 소변은 혈액과 거의 같은 성분이기 때문에 소변에서 당이 나온다는 것은 피 속에도 당이 넘치고 있음을 반영한다. 즉, 당뇨병은 고혈당 상태다. 

고혈당이 쉽게 오는 체질은 토양체질이다.[각주:2] 토양체질은 다른 체질에 비해 식탐이 많다. 실제로 침 속 아밀라제 농도도 더 높다. 토양체질이 식탐을 이기지 못해서 오는 병이 당뇨다. 토양체질이 고추 파프리카 미역 현미 등 체질에 안맞는 음식이나 인삼 홍삼 같은 약을 자주 먹으면 점점 식욕이 항진되는데, 이 때 소화액을 분비하는 췌장은 과열되고 췌장과 길항관계인 신장은 약해진다. 

췌장기능이 과열되면 인슐린을 더 많이 분비한다. 췌장에서 인슐린을 분비하면 세포는 그 인슐린을 통해서 피 속에 있는 당을 흡수한다. 인슐린은 세포가 당을 퍼먹는 밥숟가락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더이상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거나 분비된다고 해도 세포가 인슐린을 제대로 받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숟가락이 준비되지 않거나 숟가락은 준비됐지만 밥술을 뜨지 않는 것과 같다. 이것은 세포가 이미 당을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이 먹어서 그만 먹겠다고 시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당뇨병은 몸의 자기보호메커니즘으로 생겨난다. 이건 그 사람의 탐식이 몸에 주는 영향을 억제하기 위한 자구책이다.

기존당뇨치료는 경구용 혈당강하제를 투여하거나 인슐린을 주사한다. 그러면 일단 혈당은 떨어지고 환자는 안심한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혈당을 떨어뜨리지만 혈당을 올리는 근본원인을 방치하기 때문에 환자의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된다. 혈당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지만 여러가지 합병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한발 물러서서 기존치료가 합병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해도 그 효과는 대혈관합병증에 한정된다. 미세한 혈관들이 막혀서 생기는 합병증은 막을 수 없다. 피가 똑같은 정도로 끈적거린다고 할 때 큰 혈관과 미세한 혈관이 받는 손상은 다를 것이다. 당연히 미세한 혈관이 더 많은 막힘과 그에 따른 손상이 있을 것이다. 기존치료법을 계속 받는다면 환자는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필자는 여기서 당질제한식을 소개하려고 한다. 일본 다카오병원 이사장 에베 코지가 쓴 책 "당뇨병에 밥먹지 마라"에서는 당뇨치료법으로 당질제한식을 주장한다. 이 방법은 같은 양을 먹어도 탄수화물이 단백질 지방보다 훨씬 혈당을 많이 올린다는 것에 착안하여 탄수화물 섭취를 최소로 줄여서 혈당을 떨어뜨린다. 저자에 따르면, 이 방법을 쓰면 혈당강하제·인슐린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당질제한식은 단기간에 혈당을 많이 떨어뜨린다. 그래서 인슐린을 함께 쓰면 저혈당쇼크가 올 정도다. 그만큼 혈당 떨어뜨리는 효과가 좋다는 얘기다. 

필자는 실제로 1형당뇨환자에게 이 방법을 적용해봤다. 단, 에베코지 당질제한식은 체질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을 섭취하는 것으로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고 판단하여, 당질제한식을 실천하는 범주를 체질식 안으로 한정하였다. 다시 말해 체질에 해로운 것은 모두 금하고 체질에 이로운 음식이라도 당질에 해당하는 곡류[각주:3] 과일 설탕 등은 제한하였다.   

필자는 이 시도에서 의미있는 결과를 얻었다. 당질제한식 하면서 인슐린단위수를 천천히 줄여갔는데 환자는 특별한 불편함 없이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했고 혈당도 빠르게 떨어졌다. 필자가 이 방법에 주목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약물을 투입하지 않아도 혈당수치가 안정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혁명이다. 한쪽은 10의 노력을 퍼붓고 다른 한쪽은 1의 노력만 투자했는데 후자가 더 나은 결과를 만든다면 이것이 더 낫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귀찮게 인슐린 주사를 매일 배에 찔러넣지 않아도 되고 혈당강하제를 매일 입안에 털어넣지 않아도 된다. 애초에 그런 방법들은 세포의 입을 억지로 벌려서 피 속에 있는 당을 쑤셔넣어주는 격이니 몸에 무리가 오지 않을 수가 없다. 매일 배터지게 먹는 사람의 입을 벌려서 억지로 더 먹이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와 비슷한 일이 당뇨환자들이 매일 투여하는 인슐린과 혈당강하제가 세포단위에서 하는 일이다.   

앞서 말했지만 에베코지 당질제한식은 개인의 체질을 무시했다는 한계가 있다. 당질이 아닌 음식이라도 체질적 불균형을 더 벌려서 당뇨를 악화시킬 수 있음을 모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토양체질 당뇨환자가 닭고기를 즐겨 먹는다면 당질을 섭취한 것은 아니지만 당뇨는 악화될 것이다. 당질제한식은 체질식 범위 안에서 해야 안정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 

필자는 위 여성에게 무릎 어깨가 나으려면 당뇨를 치료해야 한다고 설명해주고 "체질당질제한식"을 알려주었다. 환자는 좀 멍한 표정이다. 환자는 필자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환자 머리 속에서는 이런 얘기들이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 "어깨랑 다리 치료하려고 왔는데 왜 당뇨를 얘기하지?" 이 환자한테 당뇨병과 무릎타박상 및 어깨통증은 여전히 별개이며, 현재 몸에서 나타나는 증상들의 연관성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짧은 시간에 그걸 이해시키기는 너무 어렵고 소모적이다. 간단히 치료해주고 보냈다. 

필자는 매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 사람들 각각은 하나의 질환이 진행되는 과정 중에서 여러 스테이지를 필자에게 보여준다. 그것은 소위 미래를 예측하게 해준다. 그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미래는 생생하게 필자의 머리 속에서 이미지화된다. 그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할 때 그 선택에 따라 그 미래가 여러 갈래로 나뉘는 것이 보인다. 그것에 따라서 필자는 그 사람들한테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조언한다. 약간 종교적인 표현을 빌린다면 우리들은 매일 잘못된 선택을 회개해야 하며 그릇된 라이프스타일로 자기 몸에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안그러면 결국 그 몸이 만들어내는 지옥을 체험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천국이나 지옥을 죽은 다음에 가는 게 아니라 이미 살아있을 때 체험한다. 내 몸이 편하고 건강하면 그곳이 천국이고 불편하고 병들었다면 그곳이 지옥이라. 그래서 노인들은 완전히 건강했던 유년기를 그리워하며 애도한다. 하지만 필자가 주고 싶은 것은 애도가 아니라 천국이다. 천국을 애도하는 것보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게 낫다. 8체질의학은 그 길에 대한 의미있는 단서가 될 것이다.

  1. 망막증은 대표적인 당뇨합병증 중 하나다. 망막 혈관이 부어오르거나 증식해서 안구가 망가지기 때문에 생긴다. 이것은 정상적인 혈관상태로는 혈액공급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곤란함을 보상하기 위해서 몸이 스스로 혈관을 변형 증식시키는 것이다. 일종의 자기보호메커니즘이다. [본문으로]
  2. 다른 체질도 당뇨가 올 수 있다. [본문으로]
  3. 단, 보리는 한 끼를 3분의 1공기 정도로 하고 콩 팥을 섞어서 하루 두 끼를 먹게 했다. [본문으로]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테로이드 리바운드: 세포 단위의 화재  (0) 2014.06.21
인공관절수술 후유증  (0) 2014.04.28
우울증  (0) 2014.01.11
어지러증을 동반한 고혈압  (0) 2013.12.19
갑상선기능저하증  (0) 2013.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