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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만성 두드러기

체격좋은 50대 여성이 진료실로 들어온다. "두드러기 치료받으러 왔다. 27년 됐다"고 하시면서 연신 몸을 벅벅 긁는다. 묘기증도 있는데 10일 전부터 극심해졌다. 큰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거기서도 포기하고 한의원에 한번 가보라고 했다는 것. 

또, "오래전 한쪽 귀가 안 들리게 됐는데 25년전 바닷물 들어간 다음에 가려워서 손으로 쑤시다가 곪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 귀에서 거무스름한 노란색 고름이 흘러나온다"고 한다. 왼쪽 팔 윗부분은 얼마 전 타박상을 입어서 팔을 들 수가 없다. 대변이 불편하고 밀가루음식이 소화가 편하다. 술은 안하고 매운음식 먹으면 속이 따갑다. 

과거력이 화려(?)하다. 27살 임신중독증, 소파수술7회, 20년전부터 위궤양이 생기고 난소낭종절제 후 갑자기 살찌면서 몸무게가 25킬로그램 증가. 4~5년전 폐경이 됐다.

현재복용약은 지르텍1회/2일, 미국산항알러지약, 미국산스테로이드연고(수시로 바름), 잔탁. 

환자는 그 병력에 비해 상당히 낙천적이고 소통의 의지가 충분하다. 왠지 치료가 잘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1달 후 외국 나간다"고 해서 그 때까지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야 했기 때문에 매일 오시라고 했다. 치료 들어가면서 다른 모든 약물을 끊으라고 했으나, 연고는 너무 가려워서 못 참겠으면 바르라고 했다. 처음에는 토양체질로 보고 토양체질침3회 시술하면서 한약 투여했으나 너무 가렵다고 하고 3회치료 후 낮부터 두드러기가 심해서 응급실에 두 번 갔다 왔다. 잠을 못 잘 정도라고 한다. 토양체질이 아님을 깨닫고 투여한 한약 잔여분을 모두 회수했다. 그리고 다시 진찰 후 목양체질로 보고 침치료와 새로운 한약처방을 투여한 다음 경과를 관찰했다. 2회치료에서 "어제 처음으로 4시간 잤다"고 한다. 3회치료에서 "가려워서 살이 아플 정도였는데 그게 사라졌다"고 하여 "처음증상을 10이라 할 때 남은 증상은 얼마 정도 되는가?" 물어보니 "처음 증상의 80퍼센트가 사라졌다"고 한다. 치료방향이 옳게 재설정되었다는 확신이 들어 이 때부터 스테로이드연고 바르기도 하루 5회로 제한하고 유제품섭취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슬라이스치즈 섭취를 권고했다. 4회에 "전에는 대변 보는게 불편했는데 요새 하루 두번씩 대변을 본다"고 한다. 이 때 연고는 3회 발랐다. 5회치료에서는 추어탕을 먹고 악화됐다. 추어(미꾸라지)는 민물고기니까 목양체질에 유익하지만 그 안에 들어간 양념이 문제가 된 것 같다고 판단, 드시지 마시라 권고. 6회에서 환자는 "일광욕을 했다. 피부에 있는 물집이 사라졌다"고 한다. 7회에서 머리가 가렵다고 했으나 9회에서는 그것도 절반으로 줄었다. 10회에서 "변을 보는데 속에 있는 살이 밖으로 나왔다"고 하여 암치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11회에서 머리가려움도 거의 사라졌다가 12회에서는 다시 악화 (원인은 음식으로 추정)하여 연고를 1회 발랐다. 연고는 4회 치료 이후 거의 안바르다가 다시 조금 바른 것이다.13회에서는 "전에는 하루종일 가려웠는데 요즘은 하루10분으로 줄었다."고 하여 많이 호전되었음을 확인. 14회에서 "체질에 좋은 음식 이것저것 다 섞고 볶아 먹었는데 악화됐다"고 하여 음식을 기름에 볶지 말고 따로 굽거나 삶아서 먹으라고 권고했다. 16회에서 "샤워타올로 문질러도 안올라온다"고 하고 19회에서는 "떡국(고기 계란 감자가 들어감) 먹고 조금 올라왔다"고 한다. 여기서는 뭐가 문제인지 파악이 안되어 그냥 드시지 말라고 권고. 24회치료부터는 두드러기가 많이 호전된 상태에서 안정된 흐름을 보여주어 타박상치료를 병행했다. 

이 케이스에서는 환자 귀에 바닷물이 들어간 것부터가 사실 병의 시작이다. 환자 말에 따르면 두드러기가 더 오래된 것처럼 보이나 아마 이것은 워낙 오래된 증상이라 선후를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닐까 추측한다.[각주:1] 귀에 바닷물이 들어가서 곪고 가려워서 습관적으로 귀를 파고 그래서 염증이 악화되어 고름이 더 귀에 꽉 차고 안들리니까 답답해서 다시 파고 그러면서 그것이 염증을 억제하는 항생제를 많이 쓰게 되는 계기가 되어 몸상태가 서서히 변해간 것이다. 그런 약물의 만성적인 복용이 임신에도 영향을 주어 임신중독증으로 갔을 것이고 소파수술 난소낭종절제로 몸에 계속 충격을 가하니 거기에 대한 보상으로 몸이 스스로를 비대하게 구축했을 것이다. 여기서 비만은 일종의 쿠션이다. 몸에 계속 해로운 것을 가할 때 몸이 그에 상응하는 반응으로 충격에 둔감하게끔 자기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두드러기가 생기면서 사용하게 된 항히스타민제나 스테로이드는 이 증상을 만성적으로 굳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두드러기가 27년이나 계속되었다는 것은 그런 대증요법의 자명한 귀결이다. 필자는 환자분들한테 이런 얘기를 가끔 한다. 대증요법은 병을 치료하는게 아니라 병을 안보이게 가려준다고. 그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무엇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가리는가 하면 바로 자기 몸이 처한 현실이다. 몸은 스스로한테 맞지 않는 환경에 노출되어 온몸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그걸 보지 않기 위해 가리는 것이다. 대증요법 후 염증이 가라앉았다는 것만으로 치료가 되었다고 할 수 없다.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그런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자연스런 면역반응을 무장해제시켰는가, 아니면 그런 면역반응을 유발하는 근본원인(음식 생활습관 등)을 개선하였는가? 전자는 결과에 집착하여 몸이 치유를 위해 마땅히 따라가야 하는 자연스런 과정을 무시하고, 후자는 그 과정을 충실히 따라간다.


  1. 이게 아니라면 두드러기가 심한 상태에서 대증요법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귀의 증상도 완전히 낫지 않고 지금까지 흘러온 것으로 본다. 여러가지 가능성은 있다. 어찌됐든 몸에 해로운 변수들이 함께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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