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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방어진료

방어진료, 임상의들은 이 말이 익숙할 것이다. 환자증상에 대해 치료 가능성을 고려해보고 어려울 것 같은 증상은 낫는다는 확답을 피하고 책임질 수 있는 안전한 범위에서 치료를 진행하거나 다른 의료기관에 넘기는 것, 이것이 방어진료다. 방어진료는 임상에서 꼭 필요하다. 환자를 위해서 뿐 아니라 의료인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도 그렇다.

얼마 전, 할머니 한 분이 내원하셨는데 당뇨를 오래 앓은 상태에서 발뒷꿈치에 심한 물집이 잡혔다. 치료가능성은 있지만 환자가 체질식 실천할 환경이 되지 않아서 다른 병원으로 보내드렸다.

당뇨는 8체질의학으로 치료 가능하다. 단, 이 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체질식이다. 음식으로 생긴 병이기 때문에 음식을 바꿔야 낫는다.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닐 때 붙잡고 치료하면 물집은 쉽게 족부궤양으로 발전하고 그러면 다리를 잘라야 하는 상황이 오기 때문에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것이다. 계속 붙잡고 있다가 그런 상황을 맞아버리면 임상의로서 치명타가 된다. 본질적으로 그 책임은 음식에 대한 권고를 무시한 환자 자신에 있고 사실, 체질과 음식이라는 중요한 변수를 알려준 것은 오히려 그 임상의인데도 불구하고, 사회 일반의 인식에 따라, 족부궤양이라는 같은 결과에 대하여 큰병원과 한의원이 다른 종류의 책임을 져야 하므로 우리들에게는 방어진료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환자는 큰병원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해볼 것을 다 해보았다고 납득하는 경향이 있다.[각주:1]
정말 부러운 면죄부가 아닐 수 없다.) 

사실, 큰병원에서도 해주는 것은 소독과 혈당강하제 교체 정도일 것이고, 음식 바꾸지 않는 한 빨리 되든 늦게 되든 궤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각주:2]하지만 그렇게 궤양으로 발전되어 다리를 잘라야 할 때 병원측이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단지 궤양이 더 번지지 않게 다리를 잘라 줄 것이다. 그리고 환자 역시 병원에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근본치유를 돕는 필자같은 임상의들은 방어진료를 해야 한다. 당뇨환자가 음식을 바꾸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는 한, 꿈쩍도 하지 않고 현재 라이프스타일을 고집하는 한, 잠재적으로 문제를 키워가는 혈당강하제 인슐린이라는 대증요법에 취해서 만족하는 한, 족부궤양으로 발전할 수 있는 위험한 상태까지 가 있을 때 대증요법 중단하고 치료를 진행하면 증상은 악화될 것이다. 그러면 그 환자는 음식을 바꾸지 않은 본인의 책임은 보지 않고 왜 기존의 대증요법을 포기하게 했느냐고 그 임상의에게 책임을 물을지도 모른다. (상황이 안 좋아지면 일반적으로 희생양을 찾게 된다.) 따라서, 그 임상의는 통제불가능한 리스크를 안고 치료를 들어갈 수는 없다. 치료에 앞서 환자가 치료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치료를 위해 삶의 방식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증상이 심각할수록 이런 부분이 더 중요해진다.

만성질환의 경우, 환자 본인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그 환자를 도울 수 있다. 이것은 언제나 진실일 것이다.


  1. 응급을 요하는 병은 이런 관점이 옳다. 하지만 만성질환은 그렇지 않다. 만성질환은 반드시 환자 개개인의 체질을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 [본문으로]
  2. 혈당조절만으로 당뇨합병증을 예방할 수는 없다. 몸이 스스로 혈당을 콘트롤할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 그 방법 안에 환자 체질을 고려한 식이요법이 포함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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