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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간질발작

한의원을 시작하고 얼마 안됐을 때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사촌여동생을 치료해달라고 한다. 그 사촌여동생은 본 일이 있고 그 때 만일을 위해 체질을 감별해두어서 치료요청에 순순히 응할 수 있었다. 

그 학생과 전화연결이 되었다. "학교 마치고 친구들과 집에 가는데 갑자기 길에 쓰러져 몸을 떨었다"고 한다. 친구들은 놀라서 어찌할바 모르는데 한참 뒤에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런 증상이 전에도 있었는데 점점 더 자주 그런다고 했다. 여드름도 최근 들어 더 심해진다고 하기에 짚이는바가 있어 혹시 최근들어 생리통이 더 심해지고 있지 않느냐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어혈瘀血이었다. 

어혈은 타박상 생리불순 등으로 작은 모세혈관이 터진 다음에 그 손상부위를 혈액이 응고하면서 막을 때 만들어진다.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만드는 것이지만 체질에 안맞는 섭생을 하면 그것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 여러가지 병을 부르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어혈을 풀어주는 처방을 투여하는데 그 체질 증상에 따라서 각기 다른 처방을 투여한다. 

한약 투여하고 1달 지나서 연락해보니 발작은 그동안 없었다. 그런데 이 여학생이 내가 보내준 체질섭생표를 보고 나에게 묻기를 "고등어 초코렛 먹으면 안되나요?"한다. 여태까지 매일 고등어를 먹었고 초코렛도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왜 병이 생겼는지 알게 되었다. 이 여학생은 목양체질인데 고등어 초코렛은 목양체질에게 해롭다. 초코렛은 목양체질에게 이로운 우유를 섞기 때문에 해로움이 덜하지만 해롭기는 마찬가지이고, 고등어처럼 등푸른 바다생선은 목양체질에게 아주 해롭다.  

이 학생이 서양의학으로 진찰하는 병원에 갔다면 간질 진단을 받았을 것이다. 서양의학에서는 간질로 한 번 진단하면 거의 평생 간질약을 먹으라고 한다. 이걸 먹으면 발작은 하지 않지만 바보처럼 멍해지고 성장 지능발달도 둔화된다. 간질은 뇌파의 이상교란으로 생긴다고 하는데 간질약은 그 뇌파교란을 억제해준다. 그런데 한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뇌파교란은 병의 뿌리가 아니고 말단이다. 그래서 그 말단을 계속 눌러도 완치가 안되고 결국 환자는 약을 끊지 못하고 평생 그 약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 때, 병의 뿌리는 내부장기의 불균형이며 그것으로 혈액이나 체액의 순환이 특정 부위에서 막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막힘을 해소하면 근본치유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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