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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목양체질의 본태성 고혈압

머리가 희끗한 60대 남성이 지인의 소개로 필자의 진료실을 찾아왔다. 공직 은퇴 후 사업을 하고 있는데 늘 뒷머리와 뒷목이 묵직하고 불편하다는 것이다. 체질을 감별하니 목양체질이다. 체질식을 알려드리면서 복용중인 혈압강하제를 중단하시라고 권고했다. 목양체질의 경우 본태성 고혈압. 그러니까 몸에 특별한 이상이 없어도 체질적으로 혈압이 일반 평균치를 상회하는 경우가 있는데 약물로 그 혈압을 낮추면 뒷목이나 어깨가 잘 뭉치고 까닭없이 머리가 무거우며 피로가 일상화되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난다. 이 분은 혈압강하제를 3~4년 정도 복용중이었는데, 필자의 말을 듣고 한 번 끊어보겠다고 하였다. 환자분의 태도가 시원시원해서 치료 진도가 빨리 나갔다. 3일 정도 치료하자 두통은 처음의 20% 정도로 줄어들었다. 거의 한 달 하고도 1주 정도를 더 치료했는데 그 동안 머리의 묵직함도 거의 사라지고 만성적인 팔꿈치 통증도 처음 통증을 10이라 할 때 3~4 수준으로 줄었다. 치료기간의 혈압수치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막판에 체질식이 흔들리면서 약간 올라갔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혈압은 소위 '정상 범위' 안에서 움직였다. (미국 국립보건원 고혈압 합동위원회는 60세 이상인 경우 150/90이 넘어야 고혈압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목양체질의 혈압은 건강할 때도 평균치를 상회할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특별한 증세가 없으면 수축기 혈압이 190~200을 넘지 않는 한 안전하다고 본다.

필자는 고혈압 치료 케이스가 상당히 많다. 고혈압 치료는 비교적 쉬운 편이다. 신장이나 갑상선이 망가진 환자, 직업적으로 냉기를 계속 접촉하거나 먼지를 계속 들여마셔야 하는 환자 빼고는 대부분 쉽게 정상 혈압으로 돌아온다. 정상혈압으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고 1~2주 이내였다. 이런 환자들은 아직 장기까지 망가지지 않았고 다만 부적합한 생활습관이 혈압을 올리는 경우다. 이런 경우 생활습관만 체질에 맞게 바로잡으면 혈압은 금방 정상범위를 되찾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정상 혈압수치가 얼마냐?'는 것을 지금의 의료는 역학적 데이터를 통해서 결정하는데, 여기서 역학적 데이터라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평균치를 말한다. 그런데 이것은 개개인의 체질적인 특징을 무시한 값이다. 체질에 따라 건강할 때도 혈압이 평균치를 상회하는 그룹도 있고 평균치를 하회하는 그룹도 있는데 이런 다름을 무시하고 오직 평균치를 정상으로, 거기서 벗어나면 비정상으로 몰아가면서 평생 약을 먹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일로 그 폐해를 말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중장년층 인구 상당수와 고령층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복용한 약물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요즘은 기업들이 건설현장에 출입하는 근로자들의 혈압을 체크하기도 한다. 필자한테 치료받는 환자 중에는 그런 점 때문에 약물을 끊고 싶은데 완전히 못끊는다고 토로한 분도 있었다. 산재를 예방하려는 기업들의 선의는 이해하나 그 검사는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사고를 낳게 된다. 왜 그런가? 심장에서 어느 정도의 압력으로 혈액을 전신에 공급할 것인가는 그 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건설현장이라면 당연히 근육의 힘을 많이 쓸 것이고 집에서 편히 휴식을 취할 때보다는 혈압이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혈압체크에 통과하기 위해서 약물로 그 혈압을 강제로 내려버리면 근육에 충분한 혈액공급이 안되니 쉽게 쥐가 날 수 있고 뇌로 가는 혈액의 공급도 부족해지면서 어지럼증으로 몸의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할 수도 있다. 실제로 혈압강하제의 가장 흔한 부작용이 어지럼증이며 다리에 쥐가 나는 것이다. 그런 상태로 고층건물의 건설현장이나 용광로 옆에서 일한다면 그야말로 산재 터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혈압강하제 중 전립선비대증에도 사용되는 알파차단제를 복용하는 환자는 가끔 기절하기도 한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40대~50대 중 그런 약물을 복용하는 분이 있다면 그 분들도 모두 산재 위험군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산재 예방이 목적이면 오히려 혈압강하제 복용을 금지하는 편이 훨씬 나을 수 있다. 이것은 충분히 연구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다. 만일 평소 혈압강하제를 복용하는 근로자가 업무중 사고가 났을 때 과로가 아니라 그 약물이 진정한 원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 기업측이 배상해야 되는 금액이 크게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의료의 잘못으로 생긴 부담을 기업들이 무겁게 짊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혈압강하제를 복용한 근로자는 나름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서 할 일을 다하였다는 식으로 잘못 인식되고 나머지는 기업의 책임처럼 남아서 배상해야할 확률과 금액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혈압강하제 복용하는 근로자와 그렇지 않은 근로자의 산재 발생률을 비교하여 올바른 답을 현장에 적용한다면 산재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기업은 배상 책임이 줄어드니 좋고 근로자는 그런 약물의 의무적 복용으로 인한 해악과 산재에서 벗어나니 둘 다 좋은 것이다. 지금은 이런 약물 투여가 늘어서 산재가 발생할 수 있는 요인은 강화되는 반면 기업들의 책임은 무한대로 증가하여 결과적으로 노사갈등이 첨예해진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일방적으로 한 쪽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산재 발생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면 노사가 윈윈하게 된다. 산재가 나면 기업측이 전부 부담하더라도 사고를 당한 근로자의 삶이 온전하게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산재가 터진 다음 뒷수습 할 게 아니라 애초에 산재를 발생시킬 수 있는 요인들을 가려내서 차단해야 한다. 그런 요인들 중 혈압강하제가 있다는 것이다.  

혈압이 병의 원인이 아니라 생활습관이나 육체활동의 결과일 뿐이고 체질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기계적으로 수치를 낮추는 것이 하나의 도그마처럼 굳어져서는 안된다. 의료가 병들 때 사회는 더 깊이 병드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