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머리 여학생이 진찰실로 들어온다. 눈매가 차분하고 목소리가 나른하다.
"두 달 전부터 작은 일에도 화가 폭발한다. 숨을 내쉴 때 시원하지 않고 한번에 몰아쉬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한다. 지난5월부터 불면증이 생겨 수면개시시간이 10시에서 1시로 늦어졌다. 생리도 1주 정도 늦어졌다. 집에서 공부할 때 가족이 배려를 안해주고 특히 동생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 주변인 관심에서 벗어난 느낌이라고 한다.
평소 멀티비타민 프로폴리스 비타민C 오메가3 홍삼 브레인아이를 복용중이다. 복용시작 시점은 병이 발발하기 1~2달 전이므로 현재 증상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오래된 증상이 아니라서 침치료 체질식이요법으로만 치료를 진행했다.
침치료를 2회 받고 나서 "숨쉴 때 답답함이 풀렸다. 생리도 시작했는데 평소보다 편하다"고 한다. 1주 더 치료하니 "원래는 늘 가슴이 답답했는데 이제 스트레스가 심할 때만 그렇다"고 한다. 치료효과를 더 높이기 위해 체질적으로 맞는 호흡법을 알려주었다. 1
이 환자는 토양체질이다. 병의 원인에 동생과의 갈등도 있으나 그 밖에 체질에 맞지 않는 비타민제 홍삼 섭취가 내부장기의 불균형을 유도한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심리적인 병의 원인이 반드시 마음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렇다고 뇌에만 있다고도 생각 2하지 않는다. 심리적인 병으로 보이는 것 상당수는 내부장기 불균형, 그리고 그런 불균형을 유도하는 환경 3과 관련있다. 신경증이나 정신병을 뇌에서 벌어지는 현상으로만 환원해서 이해하려고 하거나, 뇌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단순히 뇌의 문제로만 본다면 나무는 보되 숲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새싹이 흙을 뚫고 나오는 것은 그 밑의 뿌리와 그것을 둘러싼 환경 때문이다. 새싹만 본다면 새싹을 틔운 힘의 기원을 알 수 없을 것 아닌가? 이처럼 몸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만 풀리는 문제들이 있다. 이런 관점은 치료에서 병의 단서를 잡는데 도움이 된다. 4
- 8체질 중 폐가 약하게 타고난 체질은 들이마시는 숨을 길게 하여 폐를 산소로 오랫동안 가득채우는 것이 건강에 유익하고, 폐를 강하게 타고난 체질은 내쉬는 숨을 길게 하여 빈폐를 만들어주는 것이 건강에 유익하다. [본문으로]
- 종교나 심리테라피에서 이런 관점을 지지한다. 유심론은 그 한계가 명확하다. 환자를 둘러싼 물질적인 환경(음식, 약물 등)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 서양의학에서 취하는 관점이다. 뇌에서 생기는 특정한 메커니즘을 신경증이나 정신병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예를 들어, 특정한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해지면 그로 인해 발병한다는 것. 따라서 그 물질을 인공적으로 보충해주면 그 증상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일종의 유물론이다. 따라서 심리적인 원인이 배제되거나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는다.또, 이런 관점에는 그 신경전달물질이 왜 부족해졌는지에 대한 고찰은 빠져있다. 따라서 약물에 의존하게 되거나 중독되는 결과를 쉽게 초래한다. 필자는 최근 자살률이 높아진 이유 중 하나는 항우울제 복용이라고 생각한다. http://www.moonline.co.kr/News/news_view.aspx?Cid=H1117&Cno=51598 특정한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해진 근본원인을 파악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그것을 공급할 때, 처음에 그 물질을 부족하게 만든 불균형이 점점 확대되어 그 인위적인 공급을 끊어버리면 예전보다 더 심한 기갈이 온다. 그래서 점점 더 강한 약을 써야 하고 몸은 약물에 중독되어 위태로운 상태로 달려간다. 우울증을 치료하려고 복용하는 약물이 오히려 우울증을 심화시키거나 자살충동을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본문으로]
- 여기서 환경은 물질적일 수도 있고 정신적일 수도 있다. 사람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일 수도 있고 매일 버릇처럼 복용하는 약물이나 기호식품일 수도 있다. 병의 원인을 살필 때 유심론이나 유몰론, 한쪽에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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