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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간암환자의 변비 치료기

치료를 하다보면 가끔 기억에 남는 환자들이 있다. 오늘은 그런 환자들 중 한 분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몇년 전 서울 도봉구에서 한의원을 할 때다. 하루는 피부가 유난히 흰 60대 아주머니가 찾아오셨다. 진찰실에 들어와서 대뜸 하시는 이야기가 자기는 똥 잘싸는 사람이 제일 부럽다는 것이다.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참고 그 분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그 분은 간에 암이 생겼는데 그 암이 대장으로 전이되어 이제는 똥이 안나온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확실히 웃을 이야기가 아니었다.) 종양이 대장을 압박하고 있던지 아니면 대장 내부 통로가 종양으로 가득차있던지 아무튼 똥이 안나와 미칠 것 같다고 한다. 변비약은 모두 먹어봤다고 한다. 처음에는효과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더이상의 효과가 없고 현재처럼 똥이 안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똥 좀 싸게 해달라고 한다. 

아주머니를 진찰베드에 누이고 복진을 했다. 명치아래에서부터 아주 단단해서 마치 돌을 만지는 기분이다. 그 아래로 계속 촉지해보니 모두 단단하다. 이런 환자는 그 때 사실 처음 봤다. 늑골 하단부를 촉지해보니 압력이 상당하다.

일단 환자 체질을 목양체질로 가정하고 체질침을 시술했다. 그리고 늑골하단부 압력을 간열로 생긴 흉협고만으로 보고 대시호탕을 3일치 투여했다. 며칠 뒤 오셔서 아무 효과가 없다고 한다. 마구 재촉하는데 그 모습이 예전에 진찰했던 토양체질 환자의 모습과 닮았다. 다시 진찰 후 토양체질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고 체질침을 시술했는데 그 다음날 오시더니 변은 안나왔지만 어느 정도 기분이 편해졌다고 한다. 어떤 처방을 투여해야 할까 이 책 저 책 뒤적여보다가 대함흉탕이 눈에 띄였다.

太陽病, 重發汗而復下之, 不大便五六日, 舌上燥而渴, 日哺所有潮熱, 從心下至小腹, 硬滿而痛, 不可近者, 大陷胸湯主之.

이 텍스트는 정확하게 이 환자의 상태를 반영하고 있었다. 대함흉탕은 감수 대황 망초로 구성되는데, 그냥 감수만 써도 효과가 있다. 대함흉탕증에서 촉지할 수 있는 명치아래 돌처럼 단단하게 굳은 복벽은 수액대사의 극심한 정체를 뜻하며 감수는 이것을 해소하는 것이다. 감수는 사실 독약으로, 잘못 쓰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이 케이스에서는 명백하게 감수가 투여되어야할 상태였기 때문에 투여한 것이지 아무 경우에나 투여할 수 있는 약은 아니다. (혹시 이 글 보고 따라하는 사람이 없길 바란다. 필자는 독자의 무지와 만용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 아무튼 모든 증상과 그 증상의 내재적 의미가 이 처방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감수를 극미량 투여했다. 그 다음날 오시더니 변이 뚫렸다고 한다. 그동안 밀렸던 게 한번에 다 나온다는 것이다. 처방이 적중했구나 하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 아주머니는 습관적으로 수십년동안 생강차를 복용했다고 한다. 이 분은 토양체질인데, 토양체질에게 생강은 해로운 음식 또는 약류로 분류된다. 생강은 위열을 더 촉진하는데, 토양체질은 애초에 위열이 강하게 태어나기 때문에 생강이 이 불균형을 더욱 확대하여 건강을 해치는 것이다. 아마도 이 아주머니는 생강차 말고도 본인 체질에 해로운 여러가지를 해왔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모두 모여서 결국 현재의 병을 만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무지無知야말로 건강의 적이다. 

현대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비약적으로 확대되어 사람들은 이런저런 건강식품을 먹고 한약herb medicie도 건강식품처럼 치부되고 있다. 하지만 한약은 엄밀히 말해서 약medicine이다. 함부로 투여되어서는 안되고 한의사의 정확한 진찰 아래 반드시 체질 증상에 맞게 투여해야 안전하고 유효하다. 시중에 나와있는 홍삼도 토양체질에게는 독이다. 토양체질이 홍삼을 복용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건강을 해치게 된다. 이런 문제가 인터넷 발달로 언젠가 수면 위에 떠오르게 되면 한약을 전문적인 지식없이 유통되게 하는 구조 자체가 언젠가는 개선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편, 이 아주머니의 임상례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했다. 잘먹고 잘싸고 잘자기, 생명체로서는 그게 행복이다. 건강을 잃기 전에는 건강이 소중한 것을 모른다. 방심하게 되고 조심하지 않게 된다. 만용도 부리고 욕심도 부린다. 일 때문에, 인간관계 때문에, 여러가지 이유로 건강을 포기한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깨닫는 진리는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삶은 몸이라고 하는 바탕 위에서만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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