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성이 진찰실로 들어왔다. '빵을 만드는데 목이 불편하고 안 돌아간다'고 한다. 직업병인가 싶어서 통증 위주로 치료해드렸더니 다음에 왔을 때 "침맞고 목이 잘 돌아갔는데 다시 불편해졌다"고 한다.
재발하면 원인을 살피게 된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치료자는 가장 압도적인 원인, 상황을 지배하는 제1원인을 찾게 된다. 이 분은 불면증이 있어 졸피뎀을 수년간 복용중이었는데 이것이 제1원인이었다. 졸피뎀은 중추신경계를 억제하여 억지로 재우기 때문에 뒷목이 당기고 아픈 부작용이 따라올 때가 많다. 또한 향정신성의약품은 대부분 체질침 효과를 지워버려서 치료를 방해한다. 그래서 이럴 때는 불면증을 먼저 치료해야 한다. 불면증을 치료하면 환자는 졸피뎀을 끊을 수 있다. 졸피뎀을 끊으면 체질침 효과가 바로 지워지지 않고 오래 유지될 수 있다. 그러면 쉽게 재발하지 않는다. 침을 놓고 나서 환자분한테 '졸피뎀 때문에 통증이 재발했다. 불면증을 치료해줄테니 졸피뎀을 끊으라'고 권고했다.
며칠 지나서 함께 일하는 분이 필자에게 인터넷 지도에 올라온 댓글을 보여주었다. 그 환자분이 적은 것이었다. '목을 치료받고 좋아져서 다시 치료받으러 왔는데 불면증을 치료해줬다'며 불평하는 내용이었다. 목의 통증 재발을 막기 위해서 불면증을 먼저 치료해주었는데 필자의 설명을 알아듣지 못했다.
약이 병의 원인이면 약을 끊어야 낫는다. 드문 일이지만 약 끊기를 두려워하는 환자가 있어서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어서 못 끊겠다'고 하면 필자도 더 얘기 안하고 원하는대로 치료해준다. 하지만 이 때는 환자 스스로 치료효과 기대수준을 많이 낮춰야 할 것이다. 일시적으로 침의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모르나 그 약물의 작용으로 다시 원래의 불편한 상태로 돌아가버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대증약물을 복용하면 약 가짓수가 점점 늘어서 침의 효과 역시 점점 반감되고 사라진다. 약 하나를 끊으면 간단하게 풀릴 일인데 그걸 놓지 못하고 꽉 붙잡혀 있으니 호미로 막을 일이 나중에는 가래로도 막을 수 없게 커져버리는 것이다. 필자가 안타깝게 생각한 이유는 이 분이 나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환자였기 때문이다. 초진에서 침의 효과가 나온 환자는 대부분 완치가 가능하다. 졸피뎀을 끊고 생활습관(음식)을 바꿔가면서 치료에 임했다면 완치됐을 것이다.
졸피뎀을 끊지 않으면 경추의 통증은 남아있거나 새로운 증세로 변형되어 점점 더 독한 진통제로 갈아타게 된다. 최종적으로는 마약성 진통제가 처방될 것인데 그 덫에 걸리면 폐인이 되고 만다. 돌이켜보면 이 분은 어딘가 조금 달랐다. 보통 환자들은 필자가 치료와 관련하여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 고개를 끄덕이든지 질문을 하든지 어떤 반응을 보여주는데 이 분은 듣는지 마는지 감이 안 잡힐 정도로 시종일관 굳어서 아무 반응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졸피뎀 때문이었다. 졸피뎀을 복용하면 건망증, 인지장애, 집중장애, 언어장애, 초조, 우울, 혼동, 과민, 안절부절, 공격성, 분노, 망상 같은 부작용이 나와서 소통을 어렵게 만든다. 요약하면 졸피뎀은 병의 원인을 제공하고, 침의 효과를 방해하고, 치료자와의 소통마저 방해한다. 약물의존을 반드시 벗어나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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