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코로나19와 관련된 사망은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라 기저질환으로 인한 노쇠나 잘못된 치료 때문이다.
사망자 대부분이 기저질환이 있는 70~80대 고령층임에 주목해야 한다. 만일 바이러스 자체가 원인이라면 나이에 따라 그렇게 사망률이 달라질 이유가 없다. 오히려 활동 범위가 넓은 젊은이들이 전염 가능성에 더 많이 노출되기 때문에 더 많이 희생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희생자 대부분이 고령층이라는 것은 그들의 노쇠 자체가 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젊은이들 가운데 나온 희생자는 나이는 젊을지 몰라도 흡연, 약물 중독, 불규칙한 식생활 등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그들의 폐가 이미 그 노인들처럼 쇠했을 것이다) 그들은 바이러스에 희생당하는 것이 아니라 기저질환으로 자연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판단이며, 바이러스 증식은 그 기저질환 악화의 결과일 뿐이다.
바이러스가 감염병 사태의 원인이라면 바이러스 유행 시기에 폐렴 사망자가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추세를 훌쩍 뛰어넘어 다음과 같이 급격히 폭증해야 하지만,
코로나19 뿐 아니라 신종플루(2009년), 메르스(2015년) 같은 감염병 유행 시기에도 폐렴으로 인한 사망자 증가의 경향은 관찰되지 않았다.
이것은 바이러스가 사태를 움직이는 원인이 아니라 단지 원인에 수반되는 결과였음을 암시한다. 즉, 바이러스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 거꾸로 (노쇠나 지병악화로) 죽을 예정이었던 사람들의 몸에서 바이러스가 증식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임상에서 쉽게 관찰되는 사실은 바이러스에 접촉했다고 모두 감염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감염이 되려면 숙주의 체력이 고갈되고 피로가 누적되어야 한다. 숙주가 허약해야 바이러스를 안으로 들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이러스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위 그래프는 이런 관점이 사실과 부합함을 보여준다.
여기서 '백신이 사망자의 폭증을 눌렀을 것이다'라는 반론은 성립할 수 없다. 2020년이면 백신 접종한 사람의 숫자가 5만명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부 환자들은 병동에서 투여받은 항바이러스제 후유증으로 고통을 당했다. 소위 '완치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자.
'정말 완치된 거 맞아?' 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엄청난 후유증을 겪고 있다. '47번 환자'였던 박현 교수는 '완치'라는 말에 속지 말라고 한다. 완치됐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자살한 사람도 있다.
항바이러스제가 환자의 자살충동을 증가시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인터페론이나 타미플루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의료는 이토록 불완전하기에 겸허함을 가져야 한다. 부작용 가능성이 있는 치료를 인권을 무시하고 강제해서는 안되며 환자 본인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감염병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착시가 발생하는 것은 기존 관점들이 지나치게 지배력을 행사하여 쉴새 없이 온갖 매체들을 통해 사람들을 압박하면서 균형잡힌 시각을 무너뜨리고 건전한 비판능력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과 주장 사이의 괴리를 발견하지 못하게 눈을 가리고 있다. 일종의 집단세뇌다.
2. 우리 몸에는 림프액이 존재한다. 림프액은 물 같은 액체인데 혈액에서 새어나와서 세포들 사이의 공간을 채우고 있다가 림프관이라는 온 몸에 그물처럼 퍼져있는 순환계 안으로 흘러들어가서 면역을 담당한다. 림프관에는 림프절이라는 마디가 여러 개 박혀있는데 이 안에서 림프구가 쉬고 있다가 바이러스가 들어오는 것을 포착하면 며칠 안에 세포분열을 통해서 1000배 정도로 증가하고 그 각각의 림프구는 접착분자를 발사하여 바이러스를 붙잡는다. 이 과정에서 환자는 감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발열을 느끼게 된다. 당신이 감기열이 있다면 그 순간 몸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사람들이 감기로 얻는 불편한 증세의 배후에는 이런 면역시스템의 부산한 움직임이 있다.
이런 면역시스템은 인종, 민족, 성별, 나이 상관 없이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누구나 가진 것으로, 환자가 체질에 맞는 음식을 섭취하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 위와 같은 과정이 빠르게 종료되어 조금 앓다가 나아버리는 것이다. 지나치게 노쇠한 분들이나 하루에 대증약물을 열 개 이상 목구멍에 털어넣으면서 자연스러운 방어능력이 왜곡된 사람들을 빼면 누구나 이런 과정을 거쳐서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몇 달째 뉴스로 도배질을 해서 온 국민을 겁박하고 항바이러스제나 백신을 안맞으면 모두 죽어나가는 것처럼 얘기를 지어내니 황당한 일이다. 필자는 지금 집단면역이 아니라 개인면역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제 몸 안에 갖추고 있는 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집단면역은 환상에 불과하지만 개인면역은 실재한다. 그래서 방역체계는 집단면역이 아니라 개인면역을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그것은 개개인의 체질에 맞는 음식, 약물, 활동, 삶의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만인을 다 같다고 보고 같은 약물을 주사하는 백신은 파시스트들의 낡은 유산일 뿐이며 방역을 위한 정답이 될 수가 없다. 집단면역을 유도하려는 모든 시도는 언제나 실패했다. 역사상 모든 전염병들은 죽을 사람들을 다 쓸어버리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집단면역 덕분에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본인이 건강관리를 잘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집단면역이 유효했다면 같은 집단에서 왜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는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만일 내가 독감 같은 감염병에 걸리면 그것은 누구 탓일까? 일단 부모 탓일 수 있다. 부모가 호흡기 계통이 약한 체질을 물려주었을 수 있다.(선천적 조건) 그럼 내 탓은 없는가? 당연히 있다. 약한 체질을 물려줘도 내가 체질에 맞게 먹고 과로를 피하면 발병하지 않았을 테니까.(후천적 조건: 숙주) 정부 탓은 없을까? 대기오염이 심하면 사람들의 호흡기를 오염시켜 발병률을 높힐 것이다. 그건 정부 책임이다. (후천적 조건: 환경)
위에서 선천적 조건은 바꿀 수 없으나 후천적 조건은 바꿀 수 있다. 개인은 섭생을 실천하고 정부는 대기오염을 개선하면 된다. 그런데 현재의 방역은 어떠한가? 집단면역을 중심으로 한 방역은 개개인의 책임을 지워버리고 있다. 그리고 모두 정부 탓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정부조차도 문제의 원인을 헛짚고 있다. 백신이 공기를 정화하는가?
바이러스에 접촉한다고 모두 감염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는 감염되고 누구는 감염되지 않는다. 즉 병에 걸릴지 여부를 실제로 결정하는 것은 내부조건, 숙주의 상태다. 바이러스는 병의 원인이 아니라 환자의 허약에 수반되는 결과다. 사람의 활동은 거의 대부분 다른 사람이나 동물과 접촉하는 것으로, 로빈슨 크루소가 아닌 한 균이나 바이러스를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 그것을 차단하는 수단은 기본적인 위생관리를 넘어 살균제, 소독제, 봉쇄처럼 반자연적이고 강박적인 요소들로 구성된다. 그런 종류의 노력은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쉽게 전체주의로 나아간다. 반면 개인이 본인 체질에 맞는 섭생을 하고 다같이 영향 받는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자유주의와 생태주의로 나아간다. 병의 원인에 대한 완전히 다른 관점이 세상을 그렇게 빚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