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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주말에 농사를 지으러 시골집에 가신다. 그곳이 고향이라 마음이 편하신 것 같다. 아내와 함께 갓난아기인 둘째를 데리고 뒤늦게 도착해보니 아내의 이모님 두 분도 와 계신다. 허리가 안 좋다고 하셔서 간단하게 치료해드렸다. 함께 점심을 먹고 작은방에서 쉬고 있는데 아내가 다가오더니 둘째를 내 배 위에 엎어 놓는다. 아이는 좀 버둥대는 것 같더니 이내 잠들어버렸다. 필자도 스르르 눈이 감겨왔는데... 갑자기 왼쪽 새끼발가락 바깥쪽에서 묵직하고 극렬한 통증이 밀려왔다. 일어나보니 15센티미터 정도 되는 빨간 지네 한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다. 아기를 거실에 눕히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지네는 유유히 침대 밑으로 사라져버렸다. 며칠 전 첫째 아이가 엉덩이를 무엇에 물렸다고 하였는데 요놈인가 싶다. 살충제! 살충제가 어디 있지? 살충제를 찾아서 사용하려다가 성분을 보니 비펜트린이라는 성분이 들어있다. 비펜트린은 곤충의 신경계를 파괴하여 마비를 일으키는데 포유류에게도 독성이 있다. C급 발암물질이기도 하다. 결국 살충제는 쓰지 않기로 했다.

물린 자리를 비누로 씻고 지켜보니 통증이 점점 가라앉았다. 지네독은 맹독이 아니라서 일반적으로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다. 물린 자리가 빨갛게 붓는 것은 히스타민 반응인데 독을 푸는 과정이다. 심장이 환부의 혈관을 확장하고 좀 더 많은 혈액을 공급한다. 그 혈액 속에는 독을 중화하는 면역 단백질들이 가득하다. 2시간 정도 지나자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다. 

사람 몸이 이토록 효율적으로 위기에 대응하는 것을 보면 질병이나 증후군에 대한 기존 관점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기존 의료의 관점은 보통 몸의 어느 부위가 '고장'나서 불편해진다고 얘기하지만 사실 몸은 그 순간조차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다만 몸(체질)에 안맞는 환경에 적응하느라 고통이 따라올 뿐이다.

위의 사례에서 불편함은 독에 대한 방어반응,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에서 비롯한다. 지네가 자기 더듬이를 필자의 피부 안으로 찔러 넣는 물리적인 자극 외에는 그렇게 주입된 독에 대한 해독과정이 통증을 유발한다.

그렇다고 독에 대한 방어반응을 억누르는 것은 넌센스일 것이다. 그런데 이 넌센스가 바로 지금의 의료인 대증요법이 원리로 삼는 것이다. 이 넌센스가 통용되는 것은 잘못된 관점으로 질병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즉 어딘가 고장났으니 '강제로' 교정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질병이나 증세를 '고장'이 아니라 '적응'의 산물로 보는 관점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몸이 해로운 환경변화에 스스로를 적응시키는 과정이라는 것. 이것은 단순히 관점의 차이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만일 이것이 맞다면 지금의 요법들 대부분을 폐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난치병이나 자가면역질환, 암은 지금의 대증요법들이 그 적응을 방해하여 몸이 그에 대응하여 어쩔 수 없이 그 적응의 방식을 더욱 고도화시킨 결과물이다. 심지어 항암치료도 암세포를 더 진화시켜 그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우회경로를 발견하도록 부추긴다는 것이 진실이다.

질병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급히 요구된다. 질병을 다르게 보면 치료자의 역할이 달라진다. 적응을 방해할 것이 아니라 적응하는데 힘이 덜 드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즉 환자의 생활습관을 체질에 맞게 전환해야 한다.

몸이 환경에 적응하는 메커니즘은 '항상성을 유지하는 되먹임'으로 유지된다. 기존 대증요법은 이 되먹임을 억제하려고 하는데 이러한 시도는 결국 실패하게 되어 있다. 억제된 적응기제가 다시 되풀이되기 때문이다.(리바운딩) 이 기제는 사실 그 사람의 생명이 다 할 때까지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생명의 질서다.

그러므로 이 적응기제를 방해해서 잠시 증세를 억제하는데 성공하더라도 그것은 미봉책일 뿐이며 그런 접근으로는 같은 증세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여기서 근본요법은 적응기제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굳이 적응의 수고로움을 느낄 필요가 없도록 체질에 맞는 생활습관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몸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증세를 가라앉힐 수 있다.  

한편, 요즘은 몸에 해로운 것(항원)을 집어넣고 면역반응을 증폭시키는 요법도 감염병 유행을 계기로 점점 늘어나는 중인데 이런 흐름 역시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근본치료는 몸이 바뀐 환경에 더 잘 적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적응할 필요가 없도록, 적응의 수고로움을 감당할 필요가 없도록, 말하자면 자기의 몸에 가장 잘 맞는 식으로 환경(음식, 주거, 접촉 등)을 재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적응기제는 공짜가 아니다. 적응기제가 많이 작동할수록 몸은 늙고 병든다. 그러므로 체질에 해로운 것을 먹어도 당장 죽는 거 아니니 걱정할 거 없다고 태평하게 말하면서 동시에 요새 피부가 자꾸 처져서 걱정이라고 말하는 어떤 분들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면역 자체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면역이 필요해진 이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것은 체질에 맞지 않는 생활습관이다. 체질에 안맞는 음식과 약물을 입 안으로 계속 털어넣으니 그것들을 뒷처리 하느라고 면역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내 체질에 맞게 먹고 살면 면역이 과도하게 필요치 않다. 체질적인 불균형을 조율해서 면역이 과도하게 필요하지 않도록 이끄는 것이 근본치료다. 그 외에는 어떤 근사한 이름을 붙이든지 모두 대증요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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