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미지황탕八味地黃湯이라는 처방이 있다. 8가지 약재가 들어간다고 그 이름이 팔미지황탕이다. 팔미지황탕은 장기張機의 <금궤요략金匱要略>에 수록된 처방이다. 팔미지황탕은 건지황 산약 산수유 택사 복령 목단피 계지 부자로 구성되는데 일반적으로 노인이 요통과 비뇨계 증상, 당뇨병, 퇴행성관절염을 함께 가지고 있을 때 쓴다. 그리고 전을錢乙이 팔미지황탕에서 계지 부자를 제거하고 건지황을 숙지황으로 바꾼 것이 육미지황탕이다. 이 처방 역시 비뇨생식기계통이 약하여 오는 여러 가지 증후군과 신장염 등을 치료한다.
현재 임상에서는 팔미와 육미 모두 사용되며 흔히 노인들한테 투여할 때는 팔미를 노인이 아닐 때는 육미를 투여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고 육미만 사용해야 한다. 그 이유는 너무도 명백하다. 팔미에 들어가는 계지 부자는 육미지황탕이 맞는 체질한테 해롭기 때문이다. 육미지황탕은 8체질의학적으로 토양체질한테만 효과가 있는데 계지 부자는 토양체질한테 해롭다. 다시 말해 팔미지황탕이라는 한 가지 처방 안에 서로 모순된 성질의 약재가 들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굳이 육미지황탕에 계지와 부자를 더할 필요가 없다. 금궤요략이 처음 나온 시절, 즉 동한시대(서기25~220년)에 장기가 계지 부자가 들어간 팔미를 노인한테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노화가 진행될수록 심혈관계가 약해지기 때문에 심장펌핑을 촉진하려고 부자를, 혈관을 확장하려고 계지를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 때는 아직 "체질"이라는 개념이 발견되지 않아서 계지 부자를 모든 환자들한테 쓸 수 있는 약재로 인식했고, 그런 인식은 팔미지황탕 뿐 아니라 금궤요략의 다른 처방들의 구성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약 1032 ~ 1113년 경에 전을이 과감하게 팔미지황탕에서 계지와 부자를 제거해버렸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연구된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은 체질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당시 한의사들은 환자한테 팔미를 계속 투여하다가 분명히 효과 뿐 아니라 부작용을 목격했을 것이고 전을은 분명히 그 부작용을 제거하려고 그 처방 구성약재를 하나 하나 재검토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계지와 부자를 제거했을 때 그 약으로 효과를 본 사람들한테서 부작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그 처방구성, 즉 육미지황탕을 그대로 하나의 독립된 처방으로 확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처방의 진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고, 조선 후기 이제마가 <동의수세보원>에서 전을이 확정한 육미지황탕을 다시 손보게 된다. 전을의 처방에서 산약을 빼고 대신 구기자를 넣은 것이다. 이제마는 사상의학四象醫學이라는 독특한 의학체계를 세웠는데 이것은 체질의학의 발전에서 과도기에 해당한다. 사상의학의 체계에서 육미지황탕은 소양인한테만 유효한데 이제마는 이 중 산약이 소양인이 아니라 태음인한테 맞는 약재임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산약을 빼고 대신 구기자를 더하였다. 간단히 말해 처방을 그 체질에 더욱 적합하도록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팔미지황탕은 투여할 필요도 없고 투여해서도 안된다. 그건 처방이 진화되어온 역사의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 따라서 초기에 개발된 한약처방들을 재검토하면 더 정교한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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