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치료받는 분이 며느님을 데리고 오셨다. 얼굴이 창백하고 몸이 말랐다. "10개월 전 출산 후 늘 피곤하다"는 것. "피곤하면 입술이 부르트고 갈라지고 입안도 바빡바짝 마른다"고 한다. (특히, 인중 바로 아랫부분 입술이 심하게 갈라졌다.) 손발이 여름에는 뜨겁고 겨울에는 차갑다. 어깨는 짓누르는 듯 아프고 가끔 두통에 시달린다. 아기보느라 잘 못잔다(하루5시간 잔다.) 임신 전 몸무게가 53킬로그램, 출산 후 44킬로그램으로 빠졌다.
"출산 후 튀김이나 육류 먹으면 설사한다" 하여 "어떤 고기 드실 때 그러냐?"고 하니까 "돼지고기삼겹살을 먹으면 그런다"고 한다. "과일를 차게 먹으면 포만감과 함께 설사한다, 배가 차면 설사한다"고 한다. 과식하거나 찬 음식 먹으면 가스도 많이 찬다. 변비가 있다.(3~4일에 1회) 출산 후 종아리도 잘 붓는다. 얼굴은 거의 안붓는다. 커피는 마셔도 별 불편함이 없다. 여름에는 냉수욕을 한다. 땀나면 지치는데 그래서 여름이 많이 힘들다, 과거에 베체트씨병을 앓은 적이 있다. 철분제 먹고 구토 어지러움이 생긴 적이 있다.
발병 후 꽤 오래 지난 편이라 체질침과 한약을 병행했다. 목양체질로 진찰이 됐으나 그 나타나는 증상이 수양체질에서 본 것과 유사하여 수양체질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서 첫날은 수양체질침을 시술해보았다. 다음날 예상대로 어깨근육통이 뚜렷하게 악화됐다. 다시 진찰 후 목양체질침을 시술하고 임시섭생표를 바꿔주었더니, 1주 후 다시 와서 "치료다음날 통증이 10에서 4로 떨어졌다. 피곤한 정도도 10에서 6으로 떨어지고 입마름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알려준다. 입술 갈라졌던 부분이 깨끗하게 붙어있다. 다시 5일쯤 지나서 왔는데 "해물 먹은 뒤 입마름이 약간 도졌다"고 한다. 체질식의 중요함을 다시 강조했다. 4일 후 다시 내원. 손발뜨거움이 10에서 2나 3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피로감도 뚜렷하게 호전되고 무엇보다 안색이 밝아졌다. 10일 후 다시 내원. 육식을 많이 하면서 한번에 보는 소변량이 늘었다고 하여 심장이 강해진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이 환자 증상을 한의학에서는 주하증注夏症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여름을 타는 것이다. 목양체질은 대부분 겨울이 지내기 편하고 여름은 힘들다고 한다. 부교감신경이 늘 흥분되어 있는 목양체질로서는 그 불균형을 더 증폭시키는 계절인 여름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심장이 쉽게 흥분되는 목양체질은 그 심장흥분도가 적절하게 제어될 수 있는 겨울이 편하다. 추운 날씨가 만들어내는 생체조건은 적절한 수준까지 교감신경을 흥분시킨다. 그리하여 과열된 심장이 식으면서 적절한 균형을 되찾는 것이다. 반대로 여름에는 심장이 지나치게 많이 흥분되어 그 심열心熱로 피로하고 입안이 마르거나 헐거나 입술이 부르트고 갈라진다. 모든 목양체질이 여름에 주하증에 시달리는 건 아니다. 이 환자는 체질에 맞지 않는 섭생과 출산이라는 몸의 격변, 계절변화가 모두 겹쳐서 이런 증상이 나온 것이다.
필자가 처방한 한약은 약한 심장을 강하게 해주어서 심장이 쉽게 흥분되지 않도록 돕고 심열로 말라버린 조직을 회복시켜준다. 이 치료의 원리는 심장이 흥분하지 않도록 인위적으로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체질에 맞는 치료섭생을 통해서 심장 자체가 강해져서 심장이 쉽게 과열되는 원인을 바로잡는 것이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독 addiction (0) | 2013.09.09 |
---|---|
적조 (0) | 2013.08.22 |
임상적 직관 (0) | 2013.07.09 |
여성호르몬제 부작용 (0) | 2013.07.03 |
건선 (0) | 2013.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