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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중독 addiction

70대 초반의 할머니가 진료실로 들어온다. 따님이 부축을 해준다. "얼마전 허리를 삐끗했다"고 한다. 먼 병원 다니다가 필자 한의원이 집근처라 왔다는 것. 주소증은 평범한 요추염좌였는데 환자상태는 평범하지 않다. 항우울제 수면제 변비약 소화제 혈압약 등 약을 여러 개 복용중이고 복용기간도 수십년. 

수면제나 향정신성의약품 일부는 체질침효과를 방해한다. 따님한테 치료기간이 길어질 거라고 말씀드렸다. 가능한 수면제 복용을 피하라고 말씀드렸다. 이 할머니는 젊을 때 고부갈등으로 화병이 생겼는데 풀 곳이 없어 약물에 의존하게 됐고 수십년간 복용하고 있다. 약을 끊으려고 하면 불안 초조 불면 등의 증상이 나타나 도저히 못 끊는다. 2일 정도는 끊을 수 있는데 3일째가 되면 힘들어진다. 이 때 다시 약을 복용하면 하루종일 잔다. 이것은 약에 취해 있던 몸이 깨어나서 약의 반응에 좀 더 민감해지기 때문이다.[각주:1] 

이 할머니가 복용한 약물들은 자율신경계를 취하게 한다. 약 먹으면 잠오고 늘어진다. 그동안 고통을 안 느끼니까 점점 의존한다. 이런 치료접근은 일종의 '위로'다. 어떤 치료방식이든지 면역반응이나 자율신경계를 억제한다면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위로"라고 봐야 한다. 위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길게 봤을 때 위로는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 온몸을 제대로 조율해야할 신경계가 취해버리니 병이 나을 수가 없다. 

위로는 기본적으로 고통을 잊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고통의 근원을 없애는 게 아니라 고통을 잠시 잊게 하는 것, 가려주는 것, 그래서 잠깐 한숨 돌리게 만들어주는 것이다.[각주:2]

하지만 위로는 중독을 낳는다. 위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가려주기 때문에 위로에 탐닉하는 동안 문제를 빚어내는 원인은 점점 커진다. 어느 순간 위로를 멈추면 그 원인은 거대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그 때 그 사람은 처음보다 더 큰 고통을 느낀다. 이제는 위로를 끊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이것이 중독이다.

위로중독은 일종의 '어리광'이기도 하다. 어리광 부리는 마음은 즉각적이고 충동적인 만족을 원할 뿐 문제를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문제가 왜 생겼는지 이해하는 것은 무척 귀찮은 일이고 그런 것은 누가 대신 해주는 것, 난 그냥 편해지면 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질병이라고 하는 현상은 환자와 별개가 아니라 바로 '환자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이력'이다. 따라서 환자 본인이 그 문제에 누구보다 진지해져야 한다. 하지만 병이 깊어질수록 환자 본인의 '어리광'도 깊어진다.[각주:3] 이 때 치료는 더욱 큰 도전이 된다. 딜레마에 봉착하는 것이다.

이 환자분은 여전히 약물중독 상태에 있지만 1달 반 정도 치료 후 허리를 펼 수 있고 혼자 거동할 수 있게 되었다. 필자는 모든 환자분들이 '근본치료'를 목표로 하길 바란다.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은 나이와 관계없이 중요하다. 중독에서 벗어나야만 그 지점에서 진짜 삶이 시작한다. 중독은 삶의 고통을 피하는 가장 해로운 방식이다. 먼저 그 고통의 근원을 이해해야 하고 그 다음 바로 잡아야 한다.


  1. 약물중독은 심각한 문제다. 현대의료시스템 자체가 대증요법에 기반하기 때문에 초기에는 아주 단순한 병리를 가진 증상이 약물투여와 함께 복잡하게 분화되어 가고 그와 동시에 환자들을 약물중독으로 유도한다. 필자가 과거에 근무했던 요양병원은 환자 1명이 하루 10종이 넘는 약물을 복용했다. 그 환자들이 나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렇게 많은 약물에 중독되어 있다면 몸이 스스로를 조절할 힘이 완전 무력화되었다고 봐야 한다. 그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 병원에서 환자들이 병을 치유하고 건강해지는 것에 진심으로 관심이 있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그냥 해오던 대로 계속 움직일 뿐이다. 그건 마치 일종의 거대한 기계시스템을 보는 기분이다. 그런 시스템 안에서 건강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약물중독은 상당히 깊게 다뤄야 할 문제다. 단순히 환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결과를 빚어내는 의료시스템 전반에 관련된 문제로 봐야 한다. [본문으로]
  2. '위로'는 의료 뿐 아니라 현대사회 전체에 만연해있다. 위로가 산업이 되어 나날히 번창한다. 산업에는 실제로 우리 삶에 필요한 재화 서비스를 공급하는 분야가 있고,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실제로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단지 삶의 고통만 잊게 해주는 위로파트가 있다. 술 담배 매춘 도박 영화 게임 종교(일부) 의료(일부) 스포츠(직접체험이 아니라 관중으로 보는 것) 명품산업...이 모든 게 위로산업이다. 본래 부수적인 위치였던 위로산업이 주요산업이었던 제조업을 추월한지 오래, 명품백 사려고 식사는 라면으로 때우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위로산업이 삶에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처럼 팽창하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건강하지 못한 징후다. 위로산업이 팽창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병이 악화되고 있다는 걸 뜻한다. 사회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이 없는 상태, 따라서 계속 안으로 곪아가고 그것을 보상하고자 더 많은 위로가 필요해진다. 위로산업이 더 복잡하게 분화팽창하고 그것을 사람들은 '문화의 발전'이라고 추켜세운다. [본문으로]
  3. 이 어리광은 몸이 종속되어 있는 자연법칙에 대한 어리광이다. 물론 그 어리광은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내가 내 몸에 하는 행위 하나하나가 모두 쌓여서 나에게 돌아온다. 불교의 표현을 빌린다면 일종의 카르마karma라고 할 수 있고 기독교의 표현을 빌린다면 '각자가 짊어진 십자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건강하다면 내 몸에 선한 행위를 쌓아온 것이고 건강하지 못하다면 내 몸에 악업을 쌓아온 것이니 그 업보는 한 푼의 에누리없이 모두 받는다. 진통제 마취제 신경차단술 스테로이드는 내가 받아야 할 업보를 받기 싫어서 차단하고 어리광을 부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일시적이다. 댐을 막아도 물이 계속 차오르면 결국 그 댐을 넘쳐서 흘러들어오게 될 것 아닌가? 종국에는 그 댐을 무너뜨리고 더 큰 물결이 되어 모든 것을 쓸어버릴 것이다. 대증요법에 의존하는 것은 그와 비슷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고통에 직면할 때 고통을 빚어내는 근본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그걸 바꿔서 그 고통이 잦아드는 것과 단지 그 고통이 싫어서 그걸 못 느끼게 가리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天地不仁, 몸(자연)은 사람의 어리광을 봐주지 않는다. 그 질서에 따르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귀결될 뿐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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