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년 아서코넌 도일은 '주홍색연구A Study in Scarlet'라는 작품으로 셜록홈즈라는 불세출의 영웅을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냈다.
'주홍색연구'에서 홈즈는 이렇게 말한다.
"논리적인 사람은 바다를 보거나 폭포소리를 듣지 않아도 물 한방울에서 대서양이나 나이아가라폭포의 가능성을 추리해낼 수 있다. 그래서 인생전체는 거대한 하나의 사슬이 되고 우리는 그 사슬 일부를 보고 전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추리법은 현대범죄학 프로파일링 기법의 토대가 되었다. 한의학의 진단법은 이런 홈즈 추리법과 비슷하다. 체질진찰은 일종의 메디컬 프로파일링이다. 의학은 이런 인식이 극도로 섬세하게 발휘되는 분야다. 셜록 홈즈를 탄생시킨 작가 아서 코난도일이 의사라는 건 우연이 아니다.
체질을 알아내는 과정은 상당 부분 임상적 직관에 의존한다. 임상에서는 직관이 필요하다. 환자의 몸상태와 그것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간의 관계를 순식간에 알아내야 한다. 여기에 있어서 '체질'이라는 개념은 엄청나게 시간을 절약해준다. 체질은 환자와 그를 둘러싼 환경의 상호작용의 패턴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이것은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지식이 아니라 살아있는 임상현장에서 자라난 지적 도구(intellectual tool)다. 그 도구는 지금도 한의사들의 임상네트워크에 의해 계속 생성되고 있다.
직관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숙하게 우리 삶을 지배한다. 오히려 직관을 사용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고 극히 적은 부분만 논리적인 기능이 발휘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직관과 논리가 별개가 아니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 그리고 그것들이 변해가는 모습들을 관찰하면서 무의식중에 어떤 질서 logos를 인식한다. 타오르는 불을 보면서 불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를 머리 속에서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불에 대한 여러가지 살아있는 경험들로 불에 대한 맥락이 구성되기 때문에 우리가 불을 볼 때는 그 전체 맥락으로서의 불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불을 보면서 손을 대지 않는 것이다. 불의 색깔과 뜨겁다는 것이 별개의 개념으로 머리 속에 저장되는 게 아니라 모두 한 덩어리로 저장되기 때문에, 그래서 지식은 단순히 개별적인 정보의 집합이 아니라 결국 다른 정보와 유기적 맥락 안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직관은 단순히 그저直 그 대상을 바라보는 것觀이 아니라 그 대상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 맥락들을 모두 순간적으로 캐치하는 것이다. 필자는 어떤 사람이 지어내는 표정, 목소리, 행동들, 체취, 손에 묻는 땀의 끈적함, 피부의 두께, 감성과 사고의 패턴, 내 차트에 이름을 적는 그들의 필체 모든 것에서 그들을 본다. 동시에 그 환자가 내가 알고 있던 다른 환자들과 어떤 유사점이 있는지, 그 다른 환자의 또 다른 특징은 무엇이었는지, 그래서 지금 보는 환자한테서도 그런 임상적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는지를 본다. 그러므로 단 한 명의 환자를 볼 때, 그 한 명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 과거의 경험속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과의 접촉의 기억을 통해서, 그 패턴을 통해서 그 사람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다. 체질이라는 개념도 이런 식으로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런 인식과정이 장대한 한의학 역사의 흐름 속에서 꾸준히 쌓여가면서 열매를 맺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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