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초한 30대 여성이 진료실로 들어왔다. 얼굴이 창백보인다. 외국계 회계회사에서 근무하는데 두 세 달 야근 후 지친 마음을 위로할 겸 성형외과에서 얼굴 오른쪽에 보톡스를 맞았다. 그런데 그 뒤로 귀가 울리고 소리가 잘 안들리게 되었다는 것. 모 대학병원에서 스테로이드를 맞고 잠시 낫는 듯 하였으나 마찬가지. 귀가 울리니 잠을 못자서 정신과에 갔더니 졸피뎀을 주었다. 그 후 자게 되었으나 귀울림과 두통이 동반되고, 심장이 뛰고, 속이 메슥거렸다. 수경요법으로 치료받았지만 왼손에 작열감을 느끼는 등 악화되었다. 1
여러 요법의 부작용이 겹쳐 있었다. 처음에 시술받은 보톡스는 보튤리늄이라고 하는 독인데, 보튤리늄은 주입부위에만 머물지 않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이 분의 난청과 이명도 그렇게 생겼다. 그 다음 사용한 스테로이드는 망가진 청신경을 치료하지 못했고 그것의 리바운드로 불면증이 왔다. 그래서 졸피뎀이 투여되었는데, 잠은 왔지만 복용이 거듭되면서 의존증이 나타나고 부작용으로 심장의 두근거림과 메슥거림, 이상감각이 따르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경요법으로 오수혈을 잘못 조작하여 증세를 악화시킨 다음 필자를 찾아온 것이다.
대증요법으로 병이 가지를 치는 전형적인 사례다. 체질을 감별하고 자율신경계 안정시키는 침을 시술하였다. 그리고 졸피뎀 복용을 멈추고 체질식을 알려주었더니, 다음날 울렁거림이 사라지고 두근거림도 절반으로 줄었다. 다만 왼손 작열감은 사라졌다가 재발하였다. 또 새벽 3시쯤 잠이 들락말락하다가 밤을 샜다.
이튿날 같은 처방을 시술하자 졸피뎀을 복용하지 않고도 8시간 이상 잤다. 3일만에 대변을 보고 시원함을 느꼈다. 하지만 잠을 깰 때 두근거림은 여전했다. 다시 같은 처방을 시술해주었다. 그 다음날은 일요일이라 염려가 됐다. 침치료를 못 받으니 환자의 컨디션이 난조를 보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지켜보는 수 밖에...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와서 이야기하길 '일요일은 견디지 못하고 졸피뎀을 원래 복용량의 4분의 1을 복용했다. 복용 직후 극심한 불쾌감을 느끼고 왜 못 참았을까 크게 후회하였다'고 한다.
다음 날 환자분이 체질약을 복용하고 싶다고 하여 心悸 치료제를 20일치 지어 주었다. 필자는 이 처방의 일반적인 효과와 증례로 미루어보건데 졸피뎀의 혈중농도를 떨어뜨리는데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이라고 보았다. 예상대로 가슴 두근거림이 멈추었다. 잠도 12시부터 8시간을 내리 잤다. 생리를 시작했다. 2
그 다음날은 "낮에는 컨디션이 좋았지만, 밤에는 못잤다"고 한다. 환자를 보니 다리 떠는 증세가 보인다.
그 다음날 잠은 12시부터 7시까지 7시간을 잤다. 생리량이 평소보다 많았다. 두근거림도 참을 수 있을 정도로 줄었다.
그 다음날도 12시부터 7시까지 7시간을 잤다. 명치에서 위로 치솟는 느낌이 사라졌다. 심장도 편안하다. 두근거림은 처음을 10이라고 할 때 많이 줄어 2가 남았다. 아침에 일어날 때 메스꺼움이 있는데 사라졌다. 그러나 다리를 심하게 떠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 토요일은 5시에서 8시까지 자고 일요일은 1시부터 8시 30분까지 잤다. 일요일은 1시부터 7시 30분까지 잤다. 자기 직전 두근거림이 심했는데 많이 줄었다. 다리떨림은 여전하다.
다음날 3시부터 5시까지 잤다가 깨고 다시 6시부터 8시까지 잤다. 가슴두근거림은 없는데 무릎 아래로 다리떨림이 심해서 몸까지 흔들릴 정도다. 환자가 그 떨림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었다. 환자는 '내가 가장이라서 일을 못하면 큰일난다.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졸피뎀은 사실상 마약이다. 그 떨림은 마약중독자한테 나타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불면증 환자에게 평생 졸피뎀을 투여하는 사람들은 환자가 약물에 중독되어 자살해도 아무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 어처구니 없는 의료행위를 형식적인 권위로 포장한 다음에 그것이 최선인 양 발뺌하면 그만이다. 이런 상황은 이 분야에 대한 일반인들의 무지를 밑천삼아 전문가 행세를 하는 이해관계자들의 수수방관, 그리고 환자들의 시선을 본질적인 것(생활습관)에서 피상적인 것(약물)으로 돌리려는 끝없는 광고선전 때문이다. 기존 요법 대부분은 원인을 살펴서 치료하는 근본요법이 아니라 그저 눈앞의 증세를 잠시 가려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단기간의 효과와 장기간의 부작용을 낳고, 작은 병을 키워서 큰 병을 만든다. 대증요법으로 치료하는 의료인들은 대부분의 질환에 '평생 약 먹으라'는 말을 부끄러움 없이 하는데, 그것은 곧 '나는 당신이 죽을 때까지 이 병을 치료하지 못한다'는 시인是認과 같다. 잠이 안오면 잠이 안오는 원인을 살펴서 치료해야 할 것 아닌가? 그 원인은 생활습관이 본인 체질과 맞지 않는 것이므로 생활습관을 조정해야 하는데, 신경전달물질만 인위적으로 건드리니 문제가 된다. 그런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하거나, 많거나, 그것을 받는 수용체가 민감하거나, 둔해지거나 하는 등의 조절은 몸이 스스로 그 사람의 생활습관에 맞추어 자기의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조절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1차적인 원인은 생활습관이고 몸은 단지 그것에 맞추어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스스로를 조절할 뿐인데, 기존의 유행하는 요법은 생활습관은 바꾸지 않고 해로운 생활습관 아래에 있는 몸의 반응을 강제로 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질병이나 증세는 현재의 생활습관이 제 몸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소중한 신호다. 따라서 그런 신호체계를 왜곡해버리면 환자는 방심하여 차후 증세가 더 악화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교차로에서 교통사고가 났을 때 신호를 안 지킨 사람의 행동을 교정하는게 아니라 신호등을 망가뜨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초기에 일어난 작은 접촉사고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대참사가 일어나서 많은 사상자를 내거나 아예 그 도로를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졸피뎀 의존증 환자에게 나타나는 금단증세도 이와 같다. 심장의 극심한 두근거림이나 다리의 떨림은 바로 몸의 신호체계에 함부로 간섭한 결과다. 그래서 졸피뎀 복용 후 비정상적인 생각과 행동들, 폭력성, 기억상실, 졸음운전, 자살 등이 일어나는 것이다. 불면증 환자들은 이런 잘못된 치료를 받다가 폐기처분 당하는 게 현대의료의 차가운 현실이다.
리스크를 안고 끝까지 치료할 것인가, 버릴 것인가? 잠시 갈등했다. 버리는 것은 간단하다. '더 큰 병원에 가보셔야겠네요' 라고 얘기하면 된다. 하지만 내가 이 환자를 버리면 누가 이 환자를 도울 것인가? 이 사람은 다시 졸피뎀을 복용하게 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어느 병원도 약물중독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는다. 약을 먹이는 병원은 많은데 약을 끊게 도와주는 병원은 전무하다는 사실을 환자들은 기이하게 여겨야 한다. 현대는 약물로 생긴 부작용으로 새로운 병이 만들어지는 시대, 의원병醫原病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병원은 약을 더하는 병원이 아니라 약을 끊게 도와주는 병원이다. 하지만 이런 병원은 흔하지 않은데, 그것은 대증요법 약물을 멈추려면 근본요법을 사용해야 하고, 근본요법이 가능하려면 무엇이 진짜 병의 원인인지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 의료는 그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는데 '사람마다 체질이 다를 수 있고, 체질에 따라 해로운 것과 이로운 것이 다르다'는 자명한 사실을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된 관점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 그 부작용을 바로잡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예를 들어 졸피뎀 같은 '합법적인 마약'을 제조·판매·유통·투약해서 환자가 자살하면 처벌받지 않지만, 그 환자를 그 중독에서 건져내려다가 실패하여 환자가 자살하면 책임을 뒤집어쓸 수도 있기 때문에 의료인들 대부분이 그런 리스크를 지지 않으려고 한다. 그에게도 가족이 있고 지켜내야 할 일상이 있다. 그러니 편한 길을 가야 한다. 대부분은 기존 의료에 숨어있는 제도화된 모순에 눈감아버린다. 어느 생쥐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는가? 그는 먼저 고양이한테 잡아먹힐 가능성을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필자도 이 환자분을 보면서 잠시 그 가능성을 생각해보았다. 내가 손을 놔버리면 이 환자는 평생 중독자로 살면서 폐인이 될 것이다. 졸피뎀이니 그렇게 살다가 자살할 수도 있다. 필자 자신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도박은 하기 싫었다. 확실히 약물중독에서 건져내야 했다. 일단 차트를 다시 확인했다. 먼저 준 체질약을 복용하면서 가슴 두근거림은 거의 사라졌다. 문제는 다리떨림인데 도무지 멈추질 않는다. 오히려 점점 강도가 세지고 있다. 필자는 고민하다가 이런 경우 다리떨림도 일종의 悸라고 봐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즉, 최초의 치료방향은 옳고 다만 치료제의 농도가 부족하여 다리떨림이 멈추지 않았다고 본 것. 그래서 먼젓번 처방을 사용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증량해서 투여하자 다리떨림이 그 날 오후 7시 전에 사라졌다. 잠도 중간에 잠깐 깼지만 11시부터 7시까지 잤다. 다음날도 자다가 중간에 깨서 다시 잤지만, 다리떨림은 없었다. 그 다음날은 다리떨림이 약하게 와서 깼으나 12시부터 7시까지 잤다. 새로 준 체질약을 복용하면서 환자는 자기 직전까지의 컨디션이 아주 좋아졌다. 가슴두근거림도 없고 다리떨림도 거의 없다. 또 식사할 때 구역감도 사라졌다. 다만 온몸에 피가 빠져나간 듯 기운이 없다고 한다. 필자가 준 약은 졸피뎀 성분을 해독하고 두근거림을 멈추는 과정에서 혈당을 떨어뜨린다. 혈당이 너무 떨어지면 기운이 없어진다. 환자에게 연락이 와서 병원에 입원해서 포도당주사를 맞아도 되냐고 하길래 그러라고 했다. 다만 그 병원에서도 졸피뎀을 다시 복용해서는 안되며, 만일 그렇게 하면 지금까지 함께 노력해서 쌓아온 게 모두 무너질 수 있다고 얘기해두었다. 이 분은 입원한 병원에 본인이 졸피뎀 중독임을 얘기하였고, 더이상 복용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이야기하였다. 그 병원에서도 다행히 환자의 의사를 존중해주었다. 그렇게 며칠 포도당주사만 맞고 돌아왔는데 안색이 좋아보였다. 더이상 중독자의 얼굴이 아니었다. 두근거림이나 다리떨림도 재발하지 않았다. 사투 끝에 졸피뎀에서 자유로워진 것이다. "이제 힘들어도 약물에 의지하지 않을 거죠?" 라고 물어보니 방긋 웃으면서 "네" 라고 답한다.
졸피뎀 의존으로 생기는 금단증세는 지금까지 정립된 해독법이 없었다. 그저 긴 반감기의 벤조디아제핀계 약물로 갈아타는 게 전부였는데, 이것은 '약물 갈아타기'일 뿐이며 진정한 의미의 해독은 아니다. 졸피뎀 중독을 치료하려면 환자 체질에 맞는 맞춤치료를 해야 한다. 음식이나 활동 등을 환자 체질에 맞게 조정하고 환자 체질에 맞는 해독제를 써야만 한다. 치료자는 사고가 나지 않도록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체질에 따른 정확한 진단과 치료에 환자의 믿음과 끈기가 더해지면 약물중독에서 자유로워지는 길은 분명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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