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톡스Detoxification라는 말이 있다. 몸 안의 독소나 노폐물을 제거하는 방법을 뜻하는데, 몸이 안 좋을 때 단식이나 절식을 하는 동양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이어트와 연관되어 많이 이야기되지만, 다이어트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근본치료에 필수적인 개념이다.
고질적인 무릎관절염으로 60대 중반의 여성이 찾아온 적이 있다. 무릎이 항상 무지근하며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부어있고 굽힐 수 없다는 것. 내원 4~5일 전부터 대퇴사두근도 아파왔다. 오래 서 있는 일을 해서 불편하다는 것. 체질침을 시술하자 다음날 부기가 가라앉았으나 환부에는 미약한 열감이 남아있었다. 체질약도 함께 복용하고 싶다고 하여 처방 후 경과를 보았는데 한 달 후 통증이 최초의 10퍼센트로 줄었고, 두 달 후 "통증이 98퍼센트는 줄어들고 가끔 찌릿한 정도만 남았다"고 하였다.
이 무렵 어깨의 회전근개증후군도 치료해달라고 하셔서 치료를 시작하였다. 이 분은 듀오탄과 마디핀정 등을 복용중이었다. 이 약들은 몇 가지 기전으로 혈압을 낮추는데 그 과정에서 근육통이나 관절통을 유발해서 중단시키고 대신 신장의 기능을 강화시켜주는 체질약을 투여했다. 이 분은 토양체질인데, 토양체질의 고혈압은 신성고혈압, 신장이 약해져서 오는 고혈압이기 때문에 신장을 강화시켜주면 혈압강하제를 중단해도 혈압이 많이 올라가지 않는다. 2주 정도 치료하자 팔을 뒤로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듀오탄 등을 줄이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입술떨림과 울렁거림이 나타났지만 며칠새 사라졌고 이후 두 달 정도 혈압은 정상범위에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이 분은 몸살감기에 걸리면 미국에서 가져온 애드빌이라는 해열진통제를 복용하였는데, 이 약의 성분은 이부프로펜으로 환자의 체질에 따라 신장염을 유발하고 혈압을 상승시키는 부작용이 있다. 애드빌 복용 후 수축기 혈압은 160으로 올라갔고 결국 혈압강하제를 다시 복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몸은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관절염과 근육통이 재발한 것.
몸의 불편한 증상은 여러 가지 원인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결과다. 그 원인 중에는 복용중인 약물도 포함된다. 다른 변수를 체질에 맞게 조정하였는데도 증세가 남아있다면 복용중인 약물을 살펴보고 그 가운데 문제가 있는 것은 중단할 필요가 있다. 소위 '약물 디톡스'가 필요한 것.
위의 환자가 처음부터 이부프로펜을 복용하지 않았다면 혈압이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듀오탄 등을 복용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고, 그러면 관절염 등이 올 가능성도 줄었을 것이다. 몸살감기가 찾아오더라도 체질침 체질약으로 대응하면 의존증을 낳지 않기 때문에 약이 약을 낳는 연쇄적인 흐름을 피할 수 있다. 이런 방법은 디톡스 기간을 줄이고 환자의 고통과 불안감을 덜어준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디톡스는 단식을 하거나 한 가지 음식만 먹는데 그것은 원시적인 수준의 디톡스이고, 제대로 된 디톡스는 체질에 맞는 음식만 먹으면서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약물,대증요법을 모두 중단해가는 것이다. 디톡스는 쉽지 않다. 환자 스스로의 결단이 필요하다. 환자분들은 본인들이 기대하는 목표에 대해서는 열정적이 되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키는데 있어서는 소극적이 되기 쉽다. 그러나 대증약물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경우 그것을 중단하지 않는 한 그 문제가 풀릴 가능성은 없다. 물론 그 약을 중단하지 않고 다른 대증약물을 더해서 잠시 고통이 완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혹 하나 떼려다가 두 개를 더 붙이는 격이다. 병리는 더 복잡해지고 병은 난치병으로 변해서 종국에는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디톡스 대상은 내복약 뿐 아니라 파스·루프·흡입제 등도 포함된다. 1루프, 특히 미레나가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유발한다는 것은 이미 유럽에서 보고된 바 있다. 그것은 루프 자체의 물리적인 압력도 작용하겠지만 무엇보다 인위적으로 황체호르몬을 계속 공급하는 것이 주된 원인일 것이다. 여성의 몸은 배란 수정 등 여러 가지 사태에 맞추어 호르몬을 주기적으로 분비하는데, 그것을 인위적으로 조정해버리면 주어진 상황과 거기에 맞추어가는 몸의 상태에 괴리가 생기기 때문에 무리가 온다.
환자들이 약물 디톡스를 두려워하는 것은 공포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그 약을 먹지 않으면 당신은 죽는다'라고 겁박하기 때문에 환자는 약물을 중단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필자가 약물 디톡스를 주장하는 것은 필자가 한의사이기 때문이 아니다. 양의사 분들 중에도 깨어 있는 분들은 약물 디톡스를 이야기한다. 현미채식으로 치료하는 황성수 박사는 대증요법이 병을 난치화시킨다고 주장한다. 8체질의학의 관점에서 볼 때 현미채식으로 효과를 볼 체질은 수음체질과 수양체질에 한정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시 대증약물을 끊도록 유도하는 것을 필자는 높이 평가한다. 넥시아로 말기암치료의 신세계를 열었던 한의사 최원철 교수도 암환자 치료시 대증약물에 대한 디톡스를 선행한다. 한방이든 양방이든 난치병 치료의 전제는 그 난치병을 유발한 대증약물을 끊는 것이다.
서양의학이 가장 발달했다는 미국은 지금 약물중독 문제로 나라 전체가 시름시름 앓고 있다. 이것도 그들의 의학전통에 디톡스가 부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더할 줄만 알고 뺄 줄을 모르니 하나 하나 더할수록 병이 깊어가고, 중독되고,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폐인이 되어간다. 이런 점을 살펴보면 디톡스를 얼마나 철저하게 수행하느냐가 미래의학의 관건이 될 것이다. 디톡스를 할 때 감당해야 하는 리스크를 충분히 고려하고 환자의 체질과 체력에 맞추어 실행한다면 난치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 술과 담배도 디톡스 대상이다. 그 역시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약물로 간주해야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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