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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쿠싱증후군

손가락에 습진이 생겨 고생하신 분이 있었다. 스테로이드 연고를 자주 사용하길래 리바운드가 올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반신반의하시며 "대부분 스테로이드 연고를 사용하는데 괜찮지 않나요?"라고 하여 다시 이야기했다. "누구나 그런 식으로 시작하죠. 지금 하루에 약을 10개씩 드시는 분들도 처음에는 그렇게 쉽게 시작합니다. 그런 대증요법을 쓰면서 없던 증상이 생기고 그에 따라 약도 점점 늘어나고 그러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죠." 그래도 경각심이 없어보여서 놔두었는데 결국 스테로이드 용량을 늘려도 점점 효과가 약해져서 다른 병원에서 다시 약을 받아오셨다. 그 역시 스테로이드였다. 그걸 사용 후 '다시 말짱해졌다'고 좋아하시다가 며칠 지나 이제는 얼굴까지 화끈거리게 되어 다시 그 병원에 가 봤지만 "이상하군요, 큰 병원에 가보세요"라는 얘기만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더 큰 병원에 가보았지만 역시 스테로이드를 주었다. 이 분은 더이상 스테로이드에 의존하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필자에게 치료를 요청하였다. 상태는 심각했다. 얼굴 눈두덩이 주변이 모두 벌겋게 부었고 피부도 따끔거리고 귓바퀴 뒤도 헐었다. 눈이 아파서 눈을 뜨지 못할 정도이고 잠도 안오고 미칠 것 같다는 것. 결국 스테로이드를 중단시키고 체질침 체질약 체질식을 병행하였다. 몇 달 치료하니 모든 증상이 가라앉았다. 잠도 잘자고 벌건 얼굴도 정상 피부색을 찾았다.



2017년 9월 14일 손가락 습진으로 시작했다. 환자는 스테로이드에 의존하였다.


확대


스테로이드 효과가 떨어지자 리바운딩 현상이 나타났다. 리바운딩은 대증요법 약물의 효과가 떨어지면서 그 약물로 억제되었던 증세가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리바운딩, 환자는 스테로이드 용량을 늘렸다


2018년 8월 6일 다시 스테로이드 효과가 떨어지면서 리바운딩. 팔까지 번졌다. 환자는 이 때 매우 당황하였다.


리바운딩으로 얼굴까지 피부염이 확대되었다. 극심한 가려움과 달덩이처럼 얼굴이 부어오르는 문페이스 증후군이 동반됐다.


2019년 1월 12일 리바운딩으로 목까지 피부염 확대. 극심한 안구통증 호소.

 

2019년 9월 22일 목은 호전.


완치


완치



(이 사진들은 환자분이 직접 촬영 후 필자의 블로그에 올릴 것을 권해주셨습니다. 환자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환자분으로서는 스테로이드의 무서움을 온몸으로 체험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 분 얘기에 따르면 시중에 나오는 스테로이드 연고는 '크림'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화장품과 비슷한 수준으로 착각하여 더 경각심을 잃어버리고 남용하게 된다는 것.            


이 분의 증상은 '쿠싱증후군'이었다. 쿠싱증후군은 혈중 코르티졸 농도가 높아질 때 나오는 증후군인데, 일반적으로 스테로이드를 많이 쓸 때 생긴다. 체중 증가, 보름달 모양의 얼굴(moon face), 고혈압, 복부의 붉은색 줄무늬 형성, 다모증, 당내성, 사지의 가늘어짐, 안면 홍조, 골다공증 등의 증상을 특징으로 한다.


우리 몸을 보면 신장 위에 부신이라는 기관이 붙어 있다. 부신은 겉을 피질, 안을 수질이라고 하는데 그 각각에서 호르몬이 나온다. 피질에서 나오는 호르몬 가운데 당질 코르티졸은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그에 대응하여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분비된다. 코르티졸이 분비되면 심박수가 증가하고 혈압과 혈당을 올려서 스트레스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코르티졸은 염증을 억제하기도  한다. 우리 몸은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시시각각 염증으로 망가지고 복원되기를 거듭하는데, 이 복원의 단계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코르티졸이다. 이 작용을 써먹으려고 만든 게 합성 코르티졸, 즉 스테로이드다. 그리고 스테로이드를 습관적으로 사용할 때 쿠싱증후군이 발생한다. 


피부염에 스테로이드를 사용할 때 상처는 일시적으로 아물지만 우리 뇌는 이 상황을 매우 다르게 받아들인다. 혈중 코르티졸 농도가 올라간 것으로 인식하고 부신에서 더이상 코르티졸이 나오지 않도록 조치해버리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어느 사업가가 사업이 잘 안되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는데 그 대출조건이 '영업을 더이상 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코르티졸이 분비되려면 뇌하수체 전엽에서 부신피질자극호르몬이 먼저 나와서 부신을 자극해줘야 하는데, 스테로이드를 사용했기 때문에 뇌는 혈중 코르티졸 농도가 올라간 것으로 착각하고 부신피질자극호르몬을 더이상 내보내지 않고 따라서 부신도 코르티졸을 분비하지 않게 된다.


피부염이 생기려면 그런 결과를 낳는 원인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 원인은 환자의 섭생과 관련이 있는데, 환자가 스테로이드에 의존할 때 섭생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따라서 몸은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된 뒤에 다시 염증을 유발하게 되어 있고, 이 때 부신이 제대로 코르티졸을 분비해주지 않는다면 그건 '방패 없이 칼을 맞는 격'이 되어버린다. 다시 말해 염증은 훨씬 극렬해진다. 더 많이 가렵고, 더 많이 붓고, 더 많이 아프다.


그리고 스테로이드는 과산화지질로 혈액에 쌓임으로써 더 극심한 염증의 재료가 된다. 처음에는 염증을 억제해주던 것이 이번에는 염증을 악화시키는 주범이 된다.  


이와 같이,  스테로이드의 사용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빚어낸다

1. 염증 상황에서 마땅히 작동해야 할 부신의 기능이 무력화되는 것

2. 염증을 악화시키는 과산화지질을 공급하는 것


그리고 이 두 가지 효과가 결합하여 환자의 체질, 생활습관에 따라 다양한 증후군을 유도한다.


스테로이드의 사용은 인체의 되먹임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인체의 되먹임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치료는 자폭이다. 염증을 빨리 멈출 생각만 할 줄 알았지 그런 요법에 대하여 우리 몸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할지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것이다. 그런 요법 밑에 깔려 있는 관점은 우리 몸을 피동적인 객체로 본다. 그러한 믿음대로 어떤 요법을 인체가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기대한 대로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하지만 몸은 자기를 보호하려는 나름의 질서를 갖고 있으며 어떤 요법이 그 질서를 고려하지 않고 거스른다면 그 효과도 상쇄되고 만다. 그 질서를 우리는 '호메오스타시스homeostasis'라고 부른다.


호메오스타시스라는 말은 하바드대 생리학자 월터 캐넌의 저서 <몸의 지혜>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이 말은 그리스어로 '같은' 또는 '꾸준한'을 의미한다. 인체는 항상 같은 상태를 꾸준히 유지하려고 피드백 시스템을 사용한다. 이런 피드백 시스템은 체온이나 혈압 뿐 아니라 혈액 속의 어떤 호르몬 농도가 줄어들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더 분비하게 하는 등의 조절도 한다. 이런 메커니즘은 매우 정교하게 정밀하고 비교적 신속하게 처리되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기 몸에 무관심하게 된다. 그 사람은 아무런 불편이 없기 때문에 그런 과정을 의식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체질에 맞지 않는 생활습관과 대증요법 속에 놓이면 얘기는 달라진다. 물론 그런 환경에서도 이 피드백 시스템은 정확히 작동한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다른 결과를 빚어낸다. 환자가 피부염에 스테로이드를 사용할 때 뇌가 '코르티졸 농도가 높아졌으니 부신이 더이상 코르티졸을 분비하지 못하도록 해두자'고 인식하는 그런 피드백은 분명히 호메오스타시스를 목표로 하지만 그 결과는 부신의 작동불능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


오랫동안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면 부신은 점점 무능해지고 혈중 과산화지질은 늘어서 그에 상응하여 사용해야 하는 스테로이드 용량도 늘어간다. 그 효과로 고혈압, 당뇨, 관절염도 따라 온다. 그러면 그것을 관리(치료가 아니라)하느라 다시 혈압강하제, 혈당강하제나 인슐린, 엔세이드와 각종 보조제가 1+1행사 상품처럼 더해진다.(물론 그것들의 부작용도 함께) 여기까지 가면 예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이런 치료 행태는 그 발병 원인을 살펴보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부조리로 여겨진다. 이런 치료가 유행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병의 원인보다는 결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현실적인 해법'으로 착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또는 원인이 아닌 것을 원인으로 보는 점도 이러한 치료가 유행하는데 책임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근시안적인 관점으로부터 수많은 대증요법이 만들어지고 사용된다. 그 결과 단순한 증상은 복잡한 증후군과 난치병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발병 메커니즘에 기준을 두면, 우리가 여기서 납득할 수 있는 근본치료는 다음과 같다.


1. 스테로이드로 생긴 과산화지질을 줄여야 하니 더이상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면 안된다.

2. 무력화된 부신의 기능을 끌어올려야 한다.


부신의 기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부신만 보아서는 안된다. 그 환자 몸 전체의 균형이 무너진 결과 그러한 사태가 초래되는 것이기 때문에 내부장기 전체의 불균형을 조율해야 한다. 만일 부신이 안정된다면, 그것은 부신을 둘러싼 다른 장기들과의 역학관계에서 동적평형을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부신을 치료할 때 부신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장기와의 균형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체질에 따라 이 장기들의 강약배열이 다르기 때문에 본인 체질에 맞는 섭생 및 치료를 하여야 한다. 체질식 체질침 체질약은 모두 이러한 관점에서 부신을 정상화하도록 유도한다. 스테로이드처럼 부신의 기능을 대리하다가 결국 부신을 무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부신을 둘러싼 다른 장기와 균형을 맞추어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쿠싱증후군이 잘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신이 약한 체질들이다. 부신이 약해서 염증이 잘 안낫고, 그것을 스테로이드로 해결해보려다가 부신이 더욱 약해져서 온다. '약함'을 '강함'으로 되돌리지 못하고 오히려 더 약해질 수 밖에 없는 '위로'를 제공한 것이 근본적인 요인이다. 8체질의학은 이에 대해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스테로이드를 중단하는 동시에 부신의 기능을 끌어올린다. 스테로이드를 중단하기만 한다면 염증이 재발할 때 환자는 고통을 참을 수 없어 다시 스테로이드에 의존하게 된다. 하지만 8체질의학은 부신을 강화시킴으로써 재발하는 염증 수준을 환자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줄임으로써 더이상 스테로이드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지고, 염증도 서서히 쇠퇴하여 마침내 완치될 희망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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