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퇴근하는 길에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이 분은 중풍후유증이 있는데, 할아버지도 전립선이 안좋으셔서 함께 치료받았다. 어느 정도 치료하니 두 분 다 어느 정도까지 호전되셨는데 그 이상 좋아지지 않아서 체질식을 잘 지키는지 물어보니 안 지키고 있다고 한다. 할머니는 목양체질이어서 육식 위주로 권고했으나 "육식을 하면 피가 탁해질까봐 두렵다"며 정반대인 채식 위주로 하셨던 것...이 경우, 치료해서 호전되더라도 완전히 낫지 않고 치료를 중단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병의 원인이 음식습관에 있는데 그 음식습관이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체질에 따라 음식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과 음식법이 치료의 기본임을 다시 강조했으나 환자분이 이해하지 못해서 치료를 중단했다. 그리고 1년 지나 다시 뵌 것이다.
"그동안 건강하셨어요?" 물어보니 "혈소판 수치가 떨어져서 병원에 입원했었다"고 한다. 육식 위주 음식법을 지키셨는지 물어보니 정반대인 채식 위주로 하셨다고 한다. 육식을 해야만 병이 나을 거라고 알려드리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가끔 환자분들이 보이지 않은 감옥에 갇혀있음을 본다. 그 감옥은 '자기 몸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다. 미디어가 배포하는 지식들을 모든 사람한테 적용가능한 일반론으로 받아들일 때 문제가 생긴다. 티비에서 뭐가 좋다고 하면 "그게 나와는 안맞을 수도 있다"고 한번쯤 생각해보는 게 건전한 의식일 것이다. 또한 기존 치료방법으로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다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만 병이 나을 것이다. '생각의 감옥'에서 빠져나와야 병이 치유되는 것이다.
근대산업시대를 거치면서 산업에서 획일화된 동일품종 대량생산이 표준이 되었다. 의학도 그런 추세를 따르긴 마찬가지여서 모든 사람에게 같은 이론, 같은 약, 같은 식이요법을 적용한 것이 지금에 이른다.
과거에는 그것이 필요했다. 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쟁으로 다친 수많은 사람들을 빨리 치료해야 하는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그런 다급한 시기에 '몸의 개인차'까지 고려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염증 통증을 빨리 억제하는 약물을 개발하고 그것으로 공공의료서비스를 신속하게 제공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몸의 개인차'를 고려하지 못해 빚어지는 여러가지 부작용과 대증요법의 땜질식치료로 인한 난치병 증가는 피할 수 없었다.
현대는 개인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하는 맞춤형제품 서비스가 발달하는데 이것은 산업 뿐 아니라 문화 전반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의학도 몸의 개인차를 고려한 맞춤의학으로 진보하였으니 이것이 8체질의학이다.
아스피린은 어떤 사람이 먹으면 고혈압도 개선되고 진통도 되지만 어떤 사람은 위장관출혈로 죽기도 한다. 인삼 홍삼도 어떤 사람이 먹으면 소화력이 강해지고 감기도 덜 걸리지만 어떤 사람은 발열, 두통, 복통이 나타나고 당뇨 고혈압이 생기기도 한다. 체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은 타미플루라는 독감치료제 때문에 난리가 났던 적이 있다. 타미플루 먹은 10대환자들 상당수가 자살했던 것...갑자기 옥상에서 뛰어내리거나 창문밖으로 몸을 던지는 일이 빈번해지자 일본열도 전체가 어수선해졌다. 일본 후생성은 그들의 자살이 타미플루와 관계없다고 부인하다가 계속 그런 일이 생기자 결국 10대환자 타미플루 복용을 금지시켰다. 타미플루는 스위스 제약사 로슈가 생산한 독감 치료제로, A형 B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고 증상 발생 뒤 48시간 안에 복용하면 고열을 내리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약은 스위스에서 만든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위스 인구 다수를 차지하는 체질과 일본 인구 다수를 차지하는 체질은 다르기 때문에 타미플루를 일본인 대상으로 무작위 대조군 할당 실험하면 스위스와는 결과가 무척 다르게 나올 것이다. 일본 후생성은 10대환자만 복용을 금지시켰지만 나이가 아니라 체질이 문제다. 자살자 중에는 10대가 아닌 사람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타미플루가 어떤 체질에게 적합한 약인지도 모른채 무작위로 투여되었을 때 위와 같은 사고가 생긴 것처럼 다른 모든 약이 사실 그런 가능성을 안고 있다. 과거에는 정보유통이 닫힌 계 안에서 진행되어 이런 사고들이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 모든 사고들이 밝은 세계에서 드러난다. 이 사고가 그냥 일시적 실수나 우연이 아니라 기존의학 자체의 결함, 또는 한계라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의학은 마땅히 사람의 개인차(체질)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모든 사람을 같은 조건으로 보고 몸의 개인차를 배려하지 않는 의학은 파시즘이다. 몸의 개인차(체질)를 배려할 때 의학은 지금의 한계를 뛰어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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