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일할 때다. 얼굴이 검붉은 남성이 진료실로 들어왔다. 콧등 혈관이 팽창해서 한눈에 애주가임을 알 수 있었다. 근육통을 치료받으러 왔는데 간경화도 있다고 한다. 술을 매일 마셔 처음에 간염, 결국에 간경화가 됐다는 것. 치료를 몇 회 들어가자 어느 정도 통증이 잡혀 "간도 치료받겠냐?" 하니, "치료된다면 해보겠다"고 한다. 진찰해보니 목양체질이라서 하루 세끼 모두 육식으로 할 것을 권고했다. 이 환자는 매일 술을 마시고 어패류를 즐겨먹었다고 한다. 간에 문제가 생긴 것은 두 가지 원인이 함께 작용한 것 같다.
치료하면서 많이 나아졌는데 어느날 오지 않았다. 다 나아서 안 오나 싶었는데 2개월 지나 다시 왔다.
그의 말로는, 치료받고 많이 좋아져서 병원 가서 간수치를 확인해봤는데 간수치가 올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깜짝놀라 그곳에서 간수치 내리는 약을 다시 먹었다고 한다. 그 후 간수치는 내려갔는데 몸은 다시 안 좋아지고 손떨림까지 덤으로 얻었다. 그래서 예전에 좋아졌던 기억을 살려 날 또 찾아왔다는 것이다.
필자처럼 8체질의학으로 진료하는 다른 한의사 분 글에서 간염이 낫는 도중에 일시적으로 간수치가 올라가는 이유를 읽은 적이 있다. 간염으로 간세포가 파괴되면 그 단백질이 혈관으로 흘러나온다. 그 단백질 수치를 재서 간 상태를 살피는 게 간수치 GOT GPT다. 보통, GOT GPT가 올라가면 간세포가 많이 파괴된 것이니 간염이 악화되었다 보고 떨어지면 호전되었다 본다. 그래서 수치가 오르면 무조건 떨어뜨리고 본다. 그런데 수치를 떨어뜨리는 동안 환자 몸상태가 악화할 때가 있다. 간수치 내리는 약은 간에게 매질을 가하는 것과 같은데 매를 너무 많이 맞으면 더이상 흘러나올 건더기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수치가 떨어졌다고 무조건 좋은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간이 치유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간수치는 상승하며 올바른 치료를 계속 진행하면 다시 정상수치를 회복하게 된다.
필자가 생각해볼 때, 이와 비슷한 것이 감기열이다. 사실, 열이 심하게 날 때는 아직 면역력이 활발하게 움직일 때다. 해열제와 항생제로 열을 떨어뜨리면 면역력도 함께 떨어지면서 입맛을 잃는다. 그리고 감기가 다시 재발한다. 약먹으면 좀 괜찮다가 계속 재발을 거듭하는 것이다. 그래서 열이 떨어졌다고 무조건 좋은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감기로 열이 나는 것은 몸이 찬 공기에 적응하려고 스스로 열내는 것이다. 그래서 몸을 따뜻하게 하면 열은 스스로 떨어진다. 이 때는 열이 오른 근본적인 불균형을 바로잡은 결과이므로 긍정적이나 해열제로 열을 떨어뜨리면 몸은 여전히 불균형상태이므로 부정적이다. 이 두가지는 똑같이 체온이 떨어졌지만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마찬가지로 간수치가 같아도 그 수치가 형성된 배경에 따라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 서양의학에서 간염은 불치병이라고 한다. 약을 주지만 치료제가 아니고 간수치를 떨어뜨리는 약인데 간수치가 정상이 되어 퇴원하면 재발하여 간경화가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은 지나치게 수치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 수치의 의미를 잘못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환자는 다시 치료와 섭생을 하여 증상 전체가 호전되고 간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치료할 때, 숫자가 아니라 환자몸의 느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수치의 의미가 환자몸의 느낌과 괴리가 있을 때는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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