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좋은 소식을 들었다. 유방암 수술과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생긴 증상에 대하여 체질치료를 받는 분이 있는데 암검진센터로부터 완치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검사상 수치들에 따르면 이전보다 건강이 훨씬 더 개선된 상태였다. 무엇보다 본인 스스로 몸 컨디션이 가벼워짐을 느끼고 있었다. 체질치료를 받으면서 체질섭생을 엄격하게 지킬 때 난치병이 치유되는 것은 8체질의학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다.
체질침은 한의학에서 전통적으로 '오수혈五兪穴'이라고 부르는 혈을 자극하여 치료한다. 오수혈은 팔꿈치관절과 무릎관절 아래에 분포한다. 온몸에 혈穴이 있지만, 그 중에서 오수혈은 특별하다. 그것으로 장부 기능의 강약强弱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장부는 간 심장 췌장 폐 신장의 5장과 담 소장 위장 대장 방광의 5부를 말한다. 그래서 8체질의학에서는 오수혈을 '장부혈visceral points'이라고 부른다. 장부혈은 장부를 다스릴 수 있기 때문에 임상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포인트로 인식되며, 일반적으로 그 치료 효과가 다른 혈보다 강력하다. 장부혈로 본인의 체질 및 증상에 맞는 침을 맞으면 그 효과가 소위 '일도쾌차一到快差'라고 하여 한두 번의 시술로 만성적인 통증이 절반 이상 줄어들기도 한다. 반대로 본인 체질에 맞지 않는 침을 시술받으면 오히려 부작용이 뚜렷하여 소위 '침몸살'이 나타나고 증상이 악화되므로 시술에 상당한 주의가 요구된다. 그 반응이 비교적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임상에서는 그 부작용으로 미루어서 올바른 체질을 찾아가거나 치료의 방향을 잡아가기도 한다.
장부혈의 발견은 수천년 침의 역사에서 혁명과 같은 사건이다. 조선시대 '사암舍岩'이라는 승려가 <난경難經> 六十九難에 근거하여 오수혈을 컨트롤하여 치료하는 체계를 남겼는데, 그 진찰법이 까다로워 보편화되기 어려웠다. 이것을 한의사 동호 권도원 선생이 체질이라고 하는 개념에 입각하여 재정립한 것이 체질침이다. 8체질의학은 무無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상당부분 전통한의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내부장기의 강약을 기준으로 체질을 나눈 것은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에서 유래하였고, 체질침 놓는 방식에서 한의학의 전통적인 보사법인 영수보사가 채택되었다. 아픈 곳의 반대쪽 혈을 취하여 시술하는 거자법巨刺法도 그대로 가져왔다. 한의학이 전통적으로 중시했던 섭생을 상세하고 체계적으로 연구하였고, 사용하는 혈자리도 전통적인 오수혈(장부혈)이다. 8체질의학에서 한의학의 여러 컨텐츠는 '체질'이라는 핵심개념을 기준으로 가장 정교하게 재구성되었다. 이것은 '가장 모던한 한의학'이다.
소위 '난치병'들은 장부혈이 아니면 치료가 안된다. 장부혈 말고 다른 보통의 혈들로는 난치병을 치료해낼 수가 없다. 난치병은 아픈 데 근처에 있는 혈자리를 아무리 찜질하고 주무르고 침을 모 심듯이 여러 개 찌르는 소위 '아시혈阿是穴 요법'(아픈 곳 근처에 있는 혈자리를 자극하는 침치료 요법)으로는 낫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는 잠깐 시원하다 말 뿐이지 병이 낫는 것이 아니다. 난치병들은 장부의 균형이 크고 복잡하게 무너져서 오는데, 일반혈들로는 장부를 조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
장부혈을 사용하는 침법은 사암침·오행침·체질침 등이 있다. 그런데 사암침이나 오행침은 '체질'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위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환자가 금음체질이라면 '대돈大敦'이라는 혈을 컨트롤할 때 수隨만 해야 하고 영迎하여서는 안되는데, (영수迎隨는 혈穴을 조작하는 방법 중 하나를 말한다.) 만일 금음체질에서 대돈을 영迎하면 그 환자는 치료 받은 날 장이 꼬이는 듯한 통증으로 잠을 못이루게 된다. 즉 체질에 따라 사용해야 하는 장부혈과 그 조작법이 정해져 있다는 것. 체질을 고려하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잘못 치료한 것을 바로잡을 기준이 없게 된다. 따라서 체질이라는 관점에 입각해서 사용해야만 장부혈이라는 강력한 포인트를 안전하게 치료에 활용할 수 있고, 난치병을 근본치유하게 되는 것이다.
장부혈은 임상에서 '양날의 검'이기 때문에 장부혈 사용이 익숙치 않은 임상의들은 그 사용을 꺼리기도 한다. 잘 쓰면 환자들한테 '명의'로 칭송을 받지만 부작용이 나면 비난을 면할 수 없다. 그래서 임상의들은 효과도 적지만 부작용도 적은, 그래서 어쨌거나 크게 비난받지 않을 미지근한 아시혈 침법과 두루뭉실한 루틴처방에 집착하기 쉽다. 그런데 그런 방법들은 가벼운 염좌나 타박상이면 모를까 난치병과 만성질환을 치료할 수가 없고, 결국 난치병 환자들을 붙잡고 그런 방법을 쓰면 시간만 낭비된다. 난치병을 치료하려면 반드시 장부혈을 써야 하고, 장부혈을 쓰려면 체질을 알아야 한다.
정확한 체질을 파악하면 병의 치유는 그 다음부터 급물살을 탄다. 치료의 측면에서는 어떤 처방(약처방이든 침처방이든)을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단서들을 얻기 때문이며, 섭생의 측면에서는 환자 스스로 무엇을 먹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료한 지침을 얻기 때문이다. 따라서 체질치료는 체질을 고려하지 않는 요법보다 훨씬 치유속도가 빠르다. 체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체질의 실마리를 얻기 위한 기본적인 문진問診과 체질맥진을 통하여 환자의 체질을 가정하고, 가정한 체질에 맞는 침을 시술해보면서 검증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필자는 문제를 해결할 때 단순한 해법을 지향하는 것이 언제나 최선이라고 믿는다. 해법이 만일 점점 복잡해진다면 그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봐도 틀리지 않다.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방법으로 가장 단순한 해법은 자기 몸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얻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 지식은 티비나 라디오 등 매스미디어가 선전하고 광고하는 것과 상당히 다를 수 있다. 티비에서는 '이게 건강에 좋다, 저게 좋다'고 끝없이 선전하지만 그것은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기보다는 그것을 팔기 위한 사람의 입장을 고려할 때가 많다.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체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누구에게는 좋더라도 누구에게는 해롭게 작용할 수 있는 것인데, 대중매체는 오로지 좋다 좋다는 얘기 뿐이다. 이것은 무책임한 것이지만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사실 그 뒷감당을 하는 사람은 '사람의 체질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관점에서 의료행위를 하는 사람들이다. 대중매체가 남긴 오류들을 청소해주는 스캐빈저, 이것이 8체질의학을 하는 의료인의 역할이다. 일반적으로 대중매체는 광고비로 유지되고 따라서 광고비를 지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움직일 수 밖에 없다. 그 판매자는 팔기 위해서 판매에 유리한 정보를 제공하고 판매에 불리한 정보는 은폐하기 쉬울 것이다. 심한 경우 정보는 조작될 것이다. 이 때 지혜가 필요해진다. 기준은 나의 몸이다. 내 체질에 이로운가 해로운가? 이것이 기준이 되어야 하며, 이 기준은 넘치는 광고의 대홍수 속에서 소비자들에게 안전한 구명보트를 제공해줄 것이다.
내 몸(체질)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다면, 살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증상과 질병에 대하여 대증요법을 써가며 임시로 증상을 억제할 수 밖에 없는데 그것들은 그것들대로 의미가 있겠으나 대부분 그 요법들이 새로운 병을 유도한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즉 병이 가지치기를 하고 그 새로운 증상을 치료하려고 약이 늘어간다. 병을 나으려고 하는 활동이 '시지프스의 끝없는 노동'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내 체질을 알면 그런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다. 체질을 모를 때 들어가는 대증요법 의료비가 절약되는 것이다. 국민 1인당 평생 들어가는 의료비가 남성은 1억원, 여성은 1억2천만원이라고 한다. 자기 체질을 알고 체질섭생을 실천하여 근본적으로 건강을 증진할 때 얻게 되는 이익이 이 금액과 같을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약물처럼 물질적인 형태를 취한 것은 높이 평가하지만 정보는 과소평가할 때가 많다. 하지만 물고기보다 '물고기를 잡는 법'이 훨씬 더 값어치가 있지 않을까? 지혜로운 사람만 그 값어치를 이해할 것이다.
- 필자의 클리닉에서도 일반적인 염좌나 타박상, 요통 등에는 물리요법을 병행한다. 하지만 난치병은 이런 요법만으로는 뚜렷한 한계를 보이고 반드시 장부혈을 활용해야 효과적으로 치유된다. 또한 난치병이 아닌 일반적인 통증질환에서도 장부혈을 활용하는게 훨씬 치료효과가 빠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