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불안이나 우울증을 호소하는 분들을 만난다. 필자가 볼 때는 그 중 독신자 비율이 높다. 기혼자들은 불안보다는 화병 쪽이다. 그렇다고 독신과 결혼이 '불안을 택할 것인가, 화병을 택할 것인가?'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른 체질끼리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알면 결혼은 축복이 된다.
독신생활이 불안으로 유도하는 걸까? 체질에 따라 그럴 수 있다. 토양체질은 비뇨생식기계통이 약하게 타고나는데, 이 때문에 비교적 독신생활이 잘 맞아서 신부 수녀 비구니의 삶에도 잘 적응한다. 평생을 독신으로 해외봉사활동을 다니는 분들 가운데에도 토양체질이 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비뇨생식기계통이 강하게 타고난 체질들, 다시 말해 수양체질 금음체질 목양체질은 독신생활을 견디기도 어렵고, 그렇게 하였을 때 마음의 건강에도 문제가 오기 쉽다.
수년 전 30대 남성이 잠이 안 온다며 필자의 진료실에 찾아왔다. 원인을 모르겠다며 몸이 약한 듯 하니 보약을 지어달라고 한다. 약을 지어주고 보내는데, 이 분이 내 눈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선생님은 결혼하셨습니까? 저는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필자는 그 순간 이 분이 왜 잠이 안오는지 정확하게 깨달았다.
한의학에서는 '성에너지의 울체'를 심열心熱로 보고 이 열을 식히는 것, 소위 청심淸心을 치료법으로 삼는다. 이것은 성에너지가 심장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심장이 두근거린다"고 하는데, 이것은 단지 문학적인 표현이 아니라 성에너지의 본질을 묘사한 것이다. 사랑은 심장으로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정기적으로 몸을 나눔으로써 심장의 흥분은 완전히 발산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심장의 흥분이 진정되고 잠도 잘 오고 마음도 편안해진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심장의 흥분은 진정되지 않아 잠도 안오고 불안해지며, 이런 경향이 오래 되면 우울해지고, 세상사가 다 불만스러워지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끌어안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도 끌어안지 못한다. 삶 자체를 '자신의 살아있는 감각'으로 살지 못한다. 그는 '살아있는 느낌', '지금 여기'의 느낌을 찾으려고 방황하고 헤메이리라. 종교에도 빠지고, 정치에도 몸을 던지고, 일이나 스포츠에 중독되기도 하고, 식탐이나 과소비 심지어는 약물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끌어안기 전까지 그 사람은 편히 잘 수 없을 것이다. 그 사람은 자기 삶에 넌더리칠 것이다.
요새는 만혼, 비혼이 유행이다. 혼자 사는 게 낫다는 둥 이성을 혐오하면서 자기합리화를 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여러 가지 이유로 평생의 반려자를 찾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과부나 비구니만 앓는 병에 대해 이야기한다. 성에너지가 발산되지 못하고 울체될 때 오는 병이다. 이런 병은 가슴이 답답하거나, 감정기복이 심하거나, 얼굴로 상열감이 오르거나, 식은땀이 나거나, 잠을 못이루거나, 입맛이 없거나, 의욕을 상실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것은 자율신경계의 정상적인 조절이 안되는 상태다. 8체질의학에서는 자율신경실조증을 체질에 맞는 침과 음식으로 조절한다. 이 방법들은 모두 체질적으로 강한 장기를 억제하고 약한 장기를 촉진하여 과도한 불균형을 줄여서 자율신경실조로 오는 증상을 효과적으로 치료한다.
자연의 질서를 따라야 한다. 몸의 관점에서는 자기 체질에 맞는 배우자를 만나 화합하고, 그것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맞다. 자기 체질에 맞는 배우자를 만나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만족하여 다른 것들에 초연해질 수도 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행복은 단순한 것이다. 자기 체질에 맞는 음식을 먹고, 자기 체질에 맞는 배우자를 안고, 자기 체질에 맞는 곳에서 살면 그 사람은 행복하다고 느끼고 다른 것을 찾지 않게 된다. 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그 본질적인 것을 획득하지 못했을 때 그 결핍을 보상받기 위한 병적충동일 수도 있다. 더 많은 부, 더 많은 명예, 더 많은 탐욕, 더 많은 쾌락, 더 많은 인간관계...이런 것들은 자기에게 딱 맞는 것을 얻지 못하였기에 생긴 불안을 달래는 강박적인 위로일 수 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핵심에 바로 체질이 있다.
흔히 부부관계를 개선하는 상담클리닉은 서로의 성장과정 중에 입은 트라우마를 위로하는 것으로 부부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요법에 회의적인 편인데, 그 까닭은 부부갈등의 본질은 '지금 여기'에 있지 먼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의 상처나 고통을 나누는 것으로 유대관계가 일시적으로 강화될 수는 있지만 상대방의 체질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그 관계는 파괴될 것이다. 예를 들어 결혼 전에는 건강했던 토양체질 여성이 목양체질 남성과 결혼을 하였는데, 결혼 후 남편 입맛에 맞추면서 자기 체질에 해로운 고추, 파 같은 열성향신료를 부지불식간에 계속 섭취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 결과 그녀가 병들고 까닭없이 짜증만 늘어 남편과의 사이가 점점 틀어졌다고 할 때, 또는 결혼 전에 건강했던 목양체질 남성이 결혼 후 금양체질 아내의 입맛에 맞추느라고 자기 체질에 해로운 해산물 위주로 섭취하여 피부가 점점 거무튀튀해지고 까닭없이 피로하고 우울증만 늘어 아내의 애교마저도 귀찮아졌다고 할 때, 아무리 과거의 상처를 들추어내어 서로를 위로한다고 한들 그것은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며 갈등은 보이지 않게 점점 증폭되어 그 관계는 종착지로 향해갈 것이다. 또한 생활의 필요나 자녀 때문에 참고 산다고 하여도 그 실제 관계는 매우 공허한 것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따라서 부부가 서로 체질이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행복한 결혼'으로 가는 래디컬한 해법이다. 체질식을 하되, 배우자가 나와 다른 음식을 먹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 나와 다른 활동을 하여야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배우자를 자신에게 완전히 맞추려고 하면 배우자의 자연스러운 본성과 건강을 파괴하게 된다. 배우자를 관찰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사랑스러운 사람과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