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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병은 귀한 것

오래 전, 군대에 간 선배를 면회하려 간 적이 있다. 벌써 십오년도 더 지난 일이다. 무더운 여름이었고 나무숲 사이로 매미소리만 가득 울려 퍼지는 길을 따라 부대에 도착했다. 선배는 당시 군종병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건강해보였다. 함께 계시던 스님이 책을 한 권 선물해 주셨다. 여름밤 새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절에서 잠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책을 보니 "병을 벗으로 삼고 배움의 계기로 삼으라"고 적혀 있다.

인생의 강물은 계속 흘러가도 중요한 기억은 어딘가에 남아서 맴도는 것 같다. 그 여름이 그랬다. 그리고 그 책의 글귀가 그랬다.

아프다는 것은 일상적이다. 삶은 완벽하지 않다. 살다보면 아프다는 것은 늘 따라온다. 몸이 아플 때도 있고 마음이 아플 때도 있다. 아플 때는 자연스럽게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 괴로움이 어디서 왔는가 살펴보게 된다. 그러므로 병은 귀한 것이다.

병에는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리가 평소 먹는 음식과 약물, 우리가 하는 활동과 문화와 관습과 관점과 욕망이 모두 담겨 있다. 그래서 병은 삶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는 병을 보면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삶을 다시 조율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병은 귀한 것이다.

병이 계속 남아있다면 우리가 병으로부터 충분히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남아있다는 뜻이 아닐까? 몸은 충분한 관심과 주의를 요구하지만 우리는 너무 바빠서 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세상은 쉴새 없이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하고 마음을 끌어당기는 터라 우리는 하나의 대상에서 또 다른 대상으로, 여기서 저기로 계속 옮겨다니며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하지만 몸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말을 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알아도 스스로의 몸을 모르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같기 때문에 그 사람은 결국 자기 몸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삶에 익숙해지면 삶이 보이지 않는다. 어떤 삶의 방식이 습관이 되어 익숙해져버리면 그 삶을 올바르게 볼 수가 없다. 병은 그 나태한 마음을 깬다. 삶이 그곳에 고여서 썩지 못하게 한다. 새로운 길로 안내한다. 그러므로 병은 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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