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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더 나은 한의학: 독립 한의약법

우리는 삶의 방식에서 비롯한 몸의 문제에 여러가지 수단으로 대응하고 그 반응을 관찰하며, 의학은 이 끝없는 되먹임으로 형성된다. 따라서 어떤 의학은 그 의학이 생겨난 토양(삶의 방식,문화)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어떤 의학이 어떤 토양에서 만들어졌다면 그 토양에서 활용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자연스런 무엇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인도 타물나두에서는 많은 가정에서 님nim이라는 나무를 기르고 그 잎 열매를 약재로 쓴다. 그 곳 기후는 아주 더워서 수두증이나 피부병이 많은데 그 병을 치료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 지역에서 자라는 자연물을 이용하여 몸의 문제에 대응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경험 지식이 쌓이면서 이론이 다듬어지는 과정 또한 자연스럽다. 한의학은 그런 과정으로 형성된, 그리고 형성되어가고 있는 의학이다. 

반면, 스위스 로슈사에서 개발한 타미플루를 일본에서 자국환자를 위한 치료제로 도입했을 때 자살자가 급격히 증가한 사건은 이 자연스러운 과정을 무시하고 비약을 시도했을 때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지 보여준다.[각주:1] 서양의학의 본산인 유럽 북미에서 개발한 약물 및 치료방법이 한국인한테 안맞는 부분도 있고 어떤 경우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다는 것이며 이런 관점에서 이 땅에서 진화해온 한의학은 상대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것은 한의학이 서양의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여러가지 대안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따라서 우리는 한의학이 최고수준으로 발달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현재 한국은 대부분 외국컨텐츠를 들여와서 한국사회의 지식 문화를 이루고 사회시스템에 적용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갭gap이 발견된다. 우리 토양에서 자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외국컨텐츠에만 기대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 컨텐츠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낸 컨텐츠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제강점기 전후로 역사의 단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단절로 지금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컨텐츠 중 하나가 한의학이다. 한의학은 우리 민족사와 함께 시작됐고, 인체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견지한 채 여러가지 주변부 지식 기술과 통합되어 발달해왔다. 그러던 중 일제시대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극심한 탄압을 받는다. 다행히 해방을 맞았지만 식민지시대잔재와 타 의료인의 직능이기주의로 한의학은 지금까지 정부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기형적인 법체계로 정상적인 발전이 가로막힌 상태다.

우리나라는 한방 양방의 의료이원화체계다. 이것은 국민들에게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공급하여 선택권을 넓혀주고 한의학 서양의학의 선의의 경쟁 시너지를 유도하여 의료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현행법은 이런 이원화체계를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한방의료는 의료이원화체계임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인 한의약법 없이 약사법 지배를 받고 있다. 이런 기형적으로 비틀려진 법으로 한의사는 현대적인 진단기기를 사용할 수 없어 더 나은 진료를 하는데 방해를 받고, 올바른 진단을 거쳐 투여되어야 할 약물들이 허술한 법망 틈으로 무작위 투여되는 실정이다. 현행 법체계는 환자권리를 박탈한다. 더 나은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빼앗고 국민건강에 위험한 통제되지 않는 변수들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원리원칙에 맞게 깔끔한 정리 보완이 필요하다.

햇빛이 잘 들고 비가 충분히 오는 곳에 심은 식물은 따로 거름을 주지 않아도 잘 자란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한의학을 지원하는 올바른 방법은 단순히 자본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한의학성장을 위한 제도적 환경을 정비하는 것이다. 그 핵심은 '독립적인 한의약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한의학이 더 나은 미래의학으로 자리매김하여 국민건강에 이바지하려면 독립적인 한의약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독립적인 한의약법에서 다루어야 할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한의사가 현대적인 진단도구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적인 진단기기는 일부 의료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의료인이 더 나은 진료를 위해 당연히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타 의료인의 직능이기주의로 한의사는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으니 이런 법체계의 미비로 환자들 불편만 가중된다. 환자가 골절이 의심될 때 엑스레이촬영을 바로 하여 골절여부를 확인하면 될 것을, 타 병원에 다녀오라고 해야 한다. 또, 당뇨 암 자가면역질환 같은 병들은 현재 서양의학으로 근본치료가 불가능하고 연명치료 대증치료만 가능하며 이런 대증요법의 한계와 부작용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난치병들이 급증하는 추세라서 마땅히 정부주도로 다른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한의학이 가장 그 대안에 가까운 체계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지원은 못해줄망정 현대적인 진단기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막아서 그 정상적인 발전을 방해하고 있으니 이것은 명백히 정부가 국민건강의 길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중증질환진료비를 의료보험으로 더 많이 보장하는 것으로는 현재 직면한 난치병 질환의 급증을 해결할 수가 없다. 기존치료가 대증요법이며 연명치료에 불과한데 거기에 계속 국민혈세를 부어봤자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것이다. 따라서 근본치료관점에 서있는 한의학을 제도적으로 서포트해서 현 의료시스템의 조커로 활용해야 한다. 국민들을 위해 더 나은 의료가 가능하려면 독립적인 한의약법으로 한의학을 새시대에 걸맞게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또 한가지, 현행 법체계는 무면허불법진료를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필자가 신장병 때문에  치료하는 환자 한 분은 무면허업자 권유로 부자附子를 먹고 증상이 심하게 악화된 적이 있다. 심한 타박상으로 치료했던 환자분은 무면허업자가 등에 사혈을 심하게 해서 살이 엉망으로 헤어져 온 적이 있다. 뜸을 한다는 무면허업자가 정치적로비와 미디어의 흥미주의에 영합하여 명의로 소개되기도 했다.[각주:2] 또, 현재 허용된 건강식품은 대부분 한약재를 가공한 것이며 그것은 환자의 체질 증상에 따라 다르게 쓰여야 하는데 허술한 법망 아래서 무작위로 투여되어 더 많은 환자를 양산하고 있다.[각주:3] 이 모든 것이 의료환경에서는 통제되지 않는 변수가 되어 국민건강을 위협한다. 현 정부와 국회의원들은 이 모든 것을 혁신할 의지가 있는가? 그렇다면 독립적인 한의약법을 만들어 달라. 이제 한의학에 날개를 달아달라. 그것이 한국의료제도를 창조적으로 혁신하여 국민건강에 이바지하는 길이고, 더 나아가 세계의료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일이다.[각주:4] 

 

  1. 유럽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체질과 일본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체질은 다를 것이다. 따라서 약의 반응도 다르며 스위스에서 유효하였다고 해도 일본이나 아시아에서는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의학은 메카닉스mechanics가 될 수가 없다. 기계라면 스위스에서 수리하던 일본에서 수리하던 결과는 같을 것이다. 하지만 의학은 단순히 기계와 같은 어떤 '대상'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생체 사이의 '상호작용'을 다룬다. 기계를 보는 관점과 생명을 보는 관점은 영원히 평행선을 그릴 수 밖에 없고, 만일 기계를 보는 관점으로 생명을 보려할 때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수천년간 이 땅에서 유기적으로 형성된 한의학은 비교할 수 없는 잠재적 가치를 지닌다. [본문으로]
  2. 김남수가 치료한 영화배우 장진영은 결국 사망했다. 김남수의 가짜 침사자격증은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고 유명인을 치료했다는 거짓말과 불법교육으로 거액을 착복한 사실은 이미 언론에서 보도된 바 있다. 의학의 발달과정은 체계적인 시스템 안에서 의료인들이 경험과 지식을 다양한 네트웤을 통해 공유하는 것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무면허업자의 원맨쇼로 되는 게 아니다. 필자는 이런 사례에서 서양의학의 한계에 대한 대중들의 절망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한 갈망을 본다. 독립한의약법은 한의학 발달을 위한 최고의 임상환경을 조성하여 그런 대중의 바람을 근본적으로 채워줄 것이다. [본문으로]
  3. 기존의 건기식이나 한방화장품에서 보여지는 한방의 산업화트렌드는 한방의 웰빙이미지를 제품 팔아먹는 수단으로 활용하는데 관심있을 뿐, 실제로 한의학 발달에 기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그것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모래성이나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진정한 국가경쟁력은 내실있게 학문의 바탕부터 다져가야 한다. 그러자면 독립 한의약법으로 체계적인 발전을 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본문으로]
  4. 독립 한의약법은 단순히 대한민국 의료제도 문제가 아니다. 자연의 원리를 바탕으로 한 한의학이 독립한의약법으로 새로운 도약을 한다면 장기적으로는 반자연적인 문명이 빚어낸 세계 보건문제 해결에 새로운 돌파구를 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것은 세계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순간인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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