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가 진료실로 들어온다. 어머니는 갑상선종양 쇼그렌증후군 레이노증후군 역류식도염이 있고, 딸은 생리통이 심하고 여드름이 있다. (이 생리통은 7년 전부터 생리 때마다 지속되고 있다)
이 모녀는 건강을 되찾으려고 여러가지 해보던 중에 '밥따로 물따로'라는 건강법을 하게 됐다. 이 건강법은 식사할 때 물을 마시지 않고, 물 마실 때는 냉수를 피하고 온수만 마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하면서 증상은 더 악화되었다. 식사할 때 물을 마시지 않는 것은 소화액이 희석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냉수를 마시지 못하게 하는 것 역시 위가 냉각되어 소화효소 분비가 억제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이 건강법은 체질적으로 소화액분비가 약한 사람들, 수양체질 수음체질한테 맞다. 하지만 이 분들은 토양체질, 소화액분비가 항진되기 쉬워서 이 건강법이 오히려 해로웠던 것이다.
위 내부 온도는 소화효소를 분비하는데 중요한 조건이다. 열을 가해야 음식이 삭고 소화하기 쉬운 형태로 바뀐다. 그런데 이 열은 너무 과해도 문제, 너무 부족해도 문제다. 너무 과열되면 위벽이 헐거나 소화액이 식도로 역류하고 너무 부족하면 소화가 덜 되어 더부룩답답하거나 잘 체한다. 적당한 균형상태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것은 섭취하는 음식에 달려있다. 위열이 과열되기 쉬운 사람은 그 열을 시원하게 식혀주는 음식 위주로 섭취해야 한다. 물마실 때도 시원하게 마셔야 한다. 얼음을 넣어 마시는 편이 좋다. 또 위열을 항진시키는 열성향신료(고추 파 양파 생강 후추 겨자 카레)는 피해야 한다. 한국 불교에서는 수행을 위해 이런 열성향신료, 특히 오신채五辛菜를 피했는데 아마도 그것이 해로운 체질의 사람들이 그 종교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경향을 보이는 것 같다. 그 종교 참여자들은 그 종교의 가르침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았겠지만 그 수행법이 자기 체질과 맞기 때문에 그것을 더 긍정했을 것이다. 1
반대로 위열이 부족한 수양체질 수음체질들은 열성향신료를 음식에 충분히 넣어서 소화효소 분비를 도와야 한다. 동남아시아 요리에 이런 열성향신료들이 발달했는데 이것 역시 열성향신료가 필요한 체질들이 그 지역에 많이 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열성향신료들은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까지 전달되어 요리문화를 바꿨다. 체질적인 관점에서 보면 필연적이다. 그것이 필요한 체질들이 경제적 수요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문화를 바꾼 것이다.
이 분들은 몸이 차서 찬물을 마시면 해롭겠거니 하여 온수를 마시라는 밥물('밥따로 물따로 건강법'의 줄임말)을 열심히 실천했으나 발은 점점 차가워질 뿐이었다. 필자는 완전히 반대로 할 것을 권고했다. 침치료하면서 체질적으로 맞는 음식법을 알려주고 물은 냉수만 마시라고 권고했다. 환자분들은 정반대건강법을 듣고 처음에는 놀랐지만 무엇보다도 기존 방법으로는 문제가 악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딸은 다른 한의원에서 처방해준 한약을 복용중이었는데 그 한의원에 문의해보니 향부자香附子 2를 군약君藥 3으로 쓴 처방이었다. 향부자는 토양체질한테는 해로울 수 있어서 복용을 중지시켰다. 칡즙도 복용중이었는데 칡은 갈근葛根이라는 한약재로 목양체질 목음체질한테 쓰는 약재이기 때문에 역시 복용을 중지시켰다.
5일이 지나서 딸이 "찬물을 마셨는데 오히려 따뜻해졌다. 수면양말 벗고 자도 괜찮다"고 한다. 또 그로부터 2일 후 생리를 시작했는데 생리통 지속시간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원래는 12시간 정도였고 구토까지 했는데 통증시간이 3~4시간으로 줄었고 구토도 없었다고 알려주었다.
어머니는 치료받으면서 식욕이 항진되었던 것이 가라앉았다. "먹어도 먹어도 계속 먹고 싶었는데 그것이 잠잠해졌다"는 것. 토양체질 병리의 한 형태에서는 몸이 안좋아질수록 위열이 끓어올라 입맛이 당긴다. 이것을 몸이 좋아지는 것으로 착각하여 당기는대로 계속 먹다가는 몸이 망가진다. 사실, 이렇게 당겨지는 식욕은 심리요법으로 컨트롤할 수 없다. '뭔가를 먹고 싶은 마음'은 병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 결과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는 되먹임을 겪을 수 있다. 다이어트한다고 조금만 먹다가 다이어트 기간이 끝나고 폭식을 하는 경우는 너무도 흔하지 않은가? 이것은 결과를 컨트롤하려고 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병을 치료할 때는 반드시 근본원인을 치료해야 한다. 토양체질이 열성향신료를 입에 달고 살 때 그 결과로 식욕이 항진된다. 따라서 음식을 바꾸어야 한다. 그 때 비로소 더 먹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게 물러간다. 요새는 식욕항진과 비만이 겹치는 경우 수술로 위의 일부를 잘라내기도 하는데 이런 거친 방법보다 음식을 바꾸는 것이 더 간단하며 근본적이다.
- 예로부터 선식일여禪食一如라고 하여 정신수행의 기본은 음식을 조절하는 것이라고 했다. 마음은 몸과 별개가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이다. 일부 종교에 남아있는 심신이원론은 이제 폐기되어야 한다. 마음은 몸이라는 토양 위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은 것이며 몸 그자체이다. 따라서 마음이 불안하다면 몸을 먼저 살펴야 한다. 필자가 서울에서 잠시 한의원을 하고 있을 때 우울증에 걸려있고 감정기복이 심한 환자가 찾아온 적이 있다. 그런데 이 환자는 아주 극심한 변비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필자가 볼 때는 누구라도 그 정도로 변비가 있다면 우울해질 것 같았다.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과 약을 달고 사니 변비가 있는 것이고 변이 통하지 않으니 우울해진다. 이 환자가 만일 음식을 조절하지 않고 자기의 우울함을 단순히 심리적인 문제로 치부하거나 그 해결법으로 종교적인 기적에 의존한다면 상황이 바뀔 수 있을까? [본문으로]
- 향부자는 이기약류理氣藥類f로 분류되는데 이기약류 대부분은 그 향이 강하고, 이렇게 향이 강한 식물들은 정신적 긴장을 완화하고 식욕을 촉진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위열이 끓어오르기 때문에 토양체질한테는 해롭게 작용하는 것이다. 아로마제품들도 대부분 이와 비슷한 효과가 있기 때문에 토양체질이라면 그 사용을 피하는 것이 좋다. [본문으로]
- 한약처방은 군신좌사君臣左士라는 구조로 구성된다. 하나의 처방 안에서 여러 약재가 각기 자기 역할을 하게 된다. 여기서 군君은 약효의 가장 큰 방향을 설정하는 약재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