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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랑니

필자는 오래전 가끔 사랑니가 아팠다. 누구는 뽑아버리라고 했지만 안뽑았는데 사랑니가 치아교합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교합은 치아가 얼마나 잘 맞물리는가를 뜻한다. 치아교합이 틀어지면 척추에 이상이 올 정도로 교합은 중요하다. 그 교합에 사랑니가 핵심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사랑니는 맨 끝에 있다. 가끔 위로 솟아오르기도 하면서 아플 때도 있지만 몸조리잘하면 보통 그 아픔은 얼마 후 사라진다. 그러면 사랑니는 '움직이는 치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다른 치아들도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조금씩 움직인다. 하지만 사랑니의 움직임은 보다 역동적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사랑니가 움직이는가? 치아교합의 불균형을 보상하기 위해 움직인다. 실제로 사랑니 통증이 가신 뒤에는 분명 이가 더 잘 맞물린다.[각주:1] 이것은 교합이 더 철저해진 증거다.

따라서 사랑니를 무조건 뽑는 건 좋지 않다. 사랑니 뽑는 시술 자체가 위험하기도 하지만 사랑니가 없는 것이 이 교합의 불균형을 보상할 버팀목이 사라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교합이 깨지면 치아가 잘 맞물리지 않고 치아가 맞물리는 부위가 들뜨므로 보통 힘으로는 음식씹기가 제대로 안되어 과도한 압력을 주게 된다. 그러면 이 압력에 의해 치아가 부식되어 충치가 생기기 쉽다.

 

세균이 충치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그보다 더 근본원인은 그 세균이 쉽게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세균이 쉽게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가? 자기 체질에 안맞는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다. 음식은 미생물의 거대한 집합체다. 사람 입안에 사는 미생물 균형은 아주 섬세하게 조율되는데 음식은 그 균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체질에 안맞는 음식을 먹으면 그 균형이 깨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입안점막 혀 치아 잇몸까지 모두 영향을 받는다. 치아가 그런 미생물의 불균형상태에 노출되면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표면을 산화시켜 내부까지 망가지는 것을 막는다. 하지만 체질에 안맞는 음식을 계속 먹으면 그 산화 정도가 점점 확장되어 간다. 이것이 우리가 '충치'라고 부르는 것의 실상이다. 따라서 자기 체질에 맞는 식습관으로 전환해야만 비로소 이와 입안이 건강해지는 것이다.

 

필자가 보건소에서 일할 때 함께 관사에 있던 치과선생님은 치아교합에 상당히 관심이 많았다. 이 분 말에 따르면, 한 쪽 사랑니만 뽑으면 교합이 틀어져 위 아래 양쪽 다 뽑는다고 한다. 이것은 거꾸로 사랑니가 교합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필자도 이 분 얘기를 듣고 치아교합과 전신증상의 관계를 관찰해본 일이 있다. 뇌질환자 정신병자 상당수는 치아교합이 엉망이었다.[각주:2] 확실히 이가 잘 맞물리지 않으면 정신적 긴장에 의해 우울증 불안이 생길 수 있다. 체질에 맞지 않는 식습관을 오래 유지하면 그 결과 내부장기의 균형이 깨지고 그 깨진 균형을 보상하고자 몸 전체에서 여러가지 뒤틀림이 나타나는데 그 중 하나가 교합이 틀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교합이 틀어질 때 사랑니도 함께 움직이고 통증을 유발한다. 따라서 식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치과에서는 치아교합이 엉망일 때, 문제치아를 갈아서 그 위에 보철물을 씌워 교합을 맞춘다. 하지만 치아교합이 무너진 상태는 체질에 맞지 않은 섭식으로 인해 내부장기 밸런스가 깨져서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일 수 있다.[각주:3] 이런 일시적인 상황에서 문제치아를 갈아버리고 그 위에 보철물을 씌워 교합을 보정하면 갈아버린 치아는 다시 살아나지 않으니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각주:4] 교합은 인위적인 조정으로 맞춰졌지만 교합을 틀어지게 한 원인은 그대로다. 내부장기 불균형  때문에 치아교합이 틀어졌다면 이것만 조율해주면 치아교합은 정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것을 바로잡아주기 전에 치아교합을 보정해버리면 치아 자체가 원래상태로 복구될 수 없도록 손상되어 버리니까 손실이 큰 것이며 한번에 할 일을 두 번으로 나눠해야 하니까 비효율적이다.[각주:5]이 점 때문에 근본치료가 필요하다. 근본치료는 큰 범위에서부터, 중심에서부터, 뿌리에서부터 균형을 조율해간다. 내부장기의 밸런스에서 시작하여 좀 더 작은 단위인 치아 밸런스로 가야 한다. 밸런스 조율에 우선순위가 있다는 이야기다.


서양의학의 치료는 문제부위를 배제excluding하는 경향이 있다. 매크로하게 보면 자궁을 드러낸다든지 암세포를 잘라낸다든지 비후성비염일 때 비강내 조직을 잘라낸다든지 추간판탈출일 때 디스크를 잘라낸다든지 하는 식으로 조직을 잘라내고, 마이크로하게 가면 바이러스나 세균을 죽인다. 이렇게 잘라내고 죽이는 방식, 즉 문제를 배제함으로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과 접급방식이 분명히 효과적일 때도 있지만 문제가 생겨난 토양 또는 배경을 그대로 방치함으로써 같은 문제나 변형된 문제에 직면하게 할 때도 많다. 따라서 증상이 급박하지 않고 천천히 진행된다면 문제부위를 잘라내거나 빼거나 죽이기 전에 한의학적 치료를 받는 편이 낫다. 사랑니처럼 몸에 필요없는 것처럼 보여도 너무 중요한 곳이 우리 몸에는 많다. 기관지에 붙어있는 편도선과 소장 끝에 붙어있는 맹장이 그렇다. 편도선은 기관지로 들어온 이물에 대한 방어를 하고 맹장은 소장에서 대장으로 가기 전 음식물 독성에 대한 방어를 한다. 결국 우리 몸에서 필요없는 것은 없으니 일부러 떼어낼 필요없고 가능한 살려써야 한다. 몸은 자연nature이며 자연은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최선이다. 구강환경 역시 하나의 자연으로 간주해야 한다. 자연상태 균형이 깨진 그 결과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 균형을 깨는 원인을 바로잡아야 한다.[각주:6]


  1. 진통제 복용이라는 인위적인 수단으로 통증이 사라진 다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교합불균형을 일으킨 근본원인이 해소되면서 통증이 사라진 자연치유 다음을 말한다. [본문으로]
  2. 물론 모든 신경증이나 정신병 뇌질환이 치아교합에서 비롯했다고 볼 수는 없다. [본문으로]
  3. 치아교합 균형이 무너진게 내부장기의 균형이 깨져서 나타난 결과가 아니라면, 즉, 본本의 문제가 아니라 말末의 문제라면, 다시 말해 그저 치아나 잇몸 자체만의 문제로 국한되는 경우라면 치아교합을 보정하는 것만으로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경우는 매우 적을 것이다. 치과질환을 가진 환자가 여러가지 다른 증상들을 함께 가지고 있을 때가 많다는 것, 그리고 그 증상들이 서로 상당한 연관성을 가지고 진행된다는 것이다. [본문으로]
  4. 필자의 지인 중 한 분은 어릴 적에 앞니배열이 좀 이상하여 치과에서 앞니를 갈아서 거기에 브리지를 씌웠는데, 몇 해 지나서 브리지 시술한 옆으로 새 이가 나면서 다시 이의 배열이 이상하게 되어버렸다고 한다. 이 분의 원래상태는 나야 할 이가 아직 나지 않았기 때문에 앞니 배열이 조금 이상하게 보였을 분 아무런 통증도 없었던 것이다. 그대로 두었다면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새 이가 나고 치아배열이 고르게 되었을텐데 인위적인 시술을 통해 그럴 기회가 박탈된 것이다. 브리지 시술을 위해 갈아버린 앞니는 원래대로 회복되지 않는다. 이것은 큰 손실이다. 아무리 정교한 대체물이 발달해도 자연적인 사람몸보다 나은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최근 임플란트 과잉시술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굳이 빼지 않고 살려써도 되는 것을 모두 임플란트로 대체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우려할만한 상황이다. [본문으로]
  5. 먼저 교합을 조율하고 나중에 내부장기 불균형을 바로잡아줄 때 치아교합이 다시 틀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부장기 밸런스가 본本이 되고 치아밸런스는 말末이기 때문이다. 본은 말에 영향을 미치지만 말은 본에 영향을 주지 않거나 그 영향력이 작을 것이다. [본문으로]
  6. 한의학은 이런 관점에서 '몸의 에콜로지ecology'라고 할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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