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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한 폐렴 또는 COVID-19

2016년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哭聲>은 작은 시골마을에 낯선 외지인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오컬트 물이다. 희생자들은 발진이 생기고 열이 나고 미쳐버리는 등 마치 전염병에 걸린 듯한 모습이다. 외지인의 정체는 악마로 드러나고 이 악마와 맞서면서 마을사람들을 보호하려는 이름 없는 여인은 그 땅을 지키는 지신地神처럼 묘사된다. 이 여인은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인 종구에게 '절대 현혹되지 말라'며 자신이 악귀를 잡을 함정을 파두었으니 닭이 세 번 울 때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종구는 여인을 믿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그 바람에 여인이 쳐둔 결계는 힘을 잃고 시들어서 가족들은 악귀에 의해 무참히 희생되고 만다. 이 영화는 감독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징적인 요소들이 많아서 보는 사람들마다 다양한 해석을 낳았는데...필자는 이 영화가 전염병에 대한 메타포처럼 느껴졌다. 낯선 외지인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바이러스를 상징하고, 마을을 지키는 지신地神은 몸이 가진 면역력을 상징한다. 면역력을 지지하는 의학은 바이러스에 현혹되지 말라고 충고하지만 주인공은 끝까지 믿지 못하고, 결국 또 다른 희생제물이 되고 만다. 영화에 나오는 일광(황정민 분)의 대사처럼 '그놈은 그냥 미끼를 던져분 것이고' 희생자들은 '고것을 확 물어분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지금 전 세계인들이 COVID-19이라는 미끼를 물어버렸다. 그 영향은 의학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고 경제 사회적인 대파국으로 향해가고 있다. <곡성>에서 악마는 사람들의 공포를 먹고 힘을 키워가는 것으로 묘사된다. 지금 COVID-19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를 먹고 누가 힘을 키워가고 있을까?

COVID-19에 대한 두려움의 배후에는 병의 원인에 대한 잘못된 관점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전염병'이라고 부르는 질환이 병원체의 전파로 발병한다는 믿음이다. 언론이 이 질환을 '우한 폐렴'이라고 부르다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고쳐 부르는 것도 그런 관점을 따른다. 바이러스가 퍼져서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것. 우한이라는 지역과 상관 없이 그 바이러스가 퍼지는 곳은 모두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이러스를 원인으로 보면 설명되지 않는 문제가 남는다. 국내 확진자가 접촉한 사람이 1000명을 넘고 중국과 한국은 지리적으로 어느 나라보다 가깝고 빈번하게 교류하는데 사망자 숫자는 크게 다르다. 오명돈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의 발표에 따르면, 국내 확진자의 80%는 특별한 치료를 하지 않아도 가볍게 낫고 있다. 일반 폐렴보다 더 쉽게 낫는다는 것. 일본도 중국과 다르다. 우한에서는 죽음을 부르는 공포의 바이러스가 일본에서는 대부분 감기 수준이다. 중국 우한보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바이러스의 힘이 약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왜 이렇게 다른 걸까?

필자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대기오염이 집단 폐렴 사태의 진짜 원인이라고 본다. 이렇게 보면 모든 것이 설명된다. 사망자 대부분이 대기오염이 심한 나라에 집중되는 것과 대기오염이 심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비교적 가벼운 증상과 낮은 치사율을 보이는 까닭도 설명된다. (대기오염이 심하지 않은데 사망률이 높은 곳은 흡연률이 높다. 흡연은 개인적 습관이지만 그 습관을 여럿이 공유하면 대기오염 같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염병의 본질은 바이러스 전파가 아니라 '질병이 발병할 정도로 오염된 환경의 공유'다. 최근 폐렴 사태로 사망자가 많이 나온 나라들은 모두 대기오염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들이다.

중국은 오래 전부터 환경파괴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초고속 성장의 이면에는 심각한 수준의 환경파괴가 있다. 이번 집단 폐렴 사태가 발생한 후베이성 우한시의 대기오염 수준은 2013년 이미 베이징과 맞먹을 정도였고(베이징은 오래 전부터 대기오염으로 악명이 높다) 2018년 후베이성 일부 지역은 대기오염 수준이 측정 불가 상태에 이르기도 했다. 폐렴은 대기오염과 깊은 관련이 있다.

우한은 안개가 심하다. 여기에 산업화로 발생하는 오염물질이 더해져서 최악의 대기오염을 낳았고, 이것이 우한 폐렴의 원인이다. 베이징에 있는 싱크탱크 anbound는 세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첫째, 우한생태환경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한에서 폐렴 환자가 많이 나온 것은 2020년 1월 19일부터 2020년 1월 23일까지이며, 이 기간에 우한의 대기오염 지수는 다른 때보다 상당히 높았다.

둘째, 우한시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폐렴 발병률이 더 높은 지역은 대기가 더 심하게 오염된 지역이다. (우한화난수산물시장)

셋째, 장기간 대기오염 지수를 관찰해봐도 바이러스성 질환의 창궐 시기와 일치한다. 우한은 2018년 봄과 2019년 봄 인플루엔자 환자가 아주 많았는데 그때 우한의 대기오염도 정점에 있었다.

엄밀하게 보면, 이 보고서는 환경 병인설과 바이러스 병인설이 뒤섞여 있다. 즉 오염된 공기(미세먼지)가 바이러스를 싣고 온 매개체가 되었을 것으로 본다는 식으로 바이러스 병인설과 타협하고 있다. 그래도 이 보도는 어느 정도 진실에 근접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도 비슷한 논조다. 눈 감고 귀 막지 않는 이상 대기오염과 현 사태가 관계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처럼 우한시 대기오염과 그 도시 폐렴 환자의 증가는 떼어놓고 볼 수 없다. 그동안 우한시의 환경파괴에 대하여 지혜로운 사람들의 경고증거가 있었지만 중국의 정치가들은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앞에서는 '생태문명' 운운했지만 공염불에 불과했고, 뒤로는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들과 결탁하여 축재를 거듭했다. 중국 관료의 부패는 천문학적인 규모로 다른 나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중국은 환경 모니터링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데이터 조작 사례가 많다. (이번 사태의 사망자 숫자도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법에도 문제가 있어서 2014년 초까지 오염을 유발한 기업을 상대로 소송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환경운동은 탄압 받기 일쑤였다. 우한시의 아마겟돈은 이 모든 악업惡業의 결과가 아닐까?

유럽환경기구가 발표한 `유럽 공기의 질 2015' 보고서를 보면 이탈리아는 2012년 대기오염과 관련 8만 4천400명이 조기에 숨지는 등 유럽연합 회원국 중 가장 사망자가 많았다. 이탈리아 북부는 유럽 최악의 대기오염 지역이며, 이번 폐렴 사태로 사망자가 많이 나오는 곳도 이 곳이다. 특별히 이 지역 대기오염을 다룬 논문도 있으며, 대기오염이 정치쟁점으로 부각되기도 한다. 이탈리아 북부는 스모그에 대응하기 위해 일부 도시에 '유로5'(유럽연합 배출가스 기준으로 질소산화물 0.18g/㎞ 이하)가 적용된 경유차마저 통행을 금지하였다. 하지만 지금 사태를 보면 대기오염을 막기엔 역부족인 것 같다. 폐암 환자가 담배 스무 갑 피던 걸 열 갑으로 줄이는 격이다.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이란은 어떤가? 대기오염으로 휴교령을 내리는 곳이 이란이다. 이란에서는 2019년 12월 대기오염 관련 호흡기 증후군으로 단 1주 동안 14000명이 응급실 치료를 받아야 했다.

스페인은 대기오염으로 연간 3만명이 사망하는 나라다. Ecologistas en Acción에 따르면, 스페인 인구의 97%가 해로운 공기에 노출되어 있다. 오염은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고 스페인 차량의 60%인 경유차가 원인으로 추정된다. 마드리드는 2016년부터 차량2부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대기오염은 악화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사망자가 가장 많이 나온 대구는 오래전부터 대기오염으로 유명했다. 오염물질이 잘 빠져나가지 못하는 분지 지형에 지역 산업이 배출하는 오염물질도 늘고 있다. 대구의 미세먼지 농도는 전국 최고 수준이다.

되돌아보면, 사스와 메르스도 대기오염과 관계가 있었다.

사스가 시작된 곳이 광둥성이고, 사망자 대부분은 광둥성과 홍콩에서 나왔다. 광둥성 주강 삼각주 지역(Pearl river delta)은 안개가 심한데, 이 지역이 빠르게 개발되면서 이런 자연조건과 오염물질 배출이 더해져 대기오염이 심각해졌다. 이것은 인접한 홍콩에도 영향을 주었다. 광둥성의 대기오염 수준은 2003년부터 2004년까지 가장 높았는데 사스 사태도 이 무렵 발생했다.

메르스 사망자가 가장 많이 나온 곳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다.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연간 초미세먼지 중간값은 108㎍/㎥로 전 세계에서 최악의 공기질을 보여주었다. 리야드는 2014년에도 세계에서 대기오염이 가장 심한 지역 중 하나로 선정되었고, 2016년에도 세계에서 대기오염이 가장 심한 지역 중 4위였다. 이 때 5위도 사우디아라비아의 도시 주바일이었다. 주변 나라 대도시들도 석유산업이 만들어내는 오염물질과 모래폭풍의 결합으로 비슷한 상태다.

이처럼 전염병이 있는 곳에 환경파괴가 있다. 환경파괴가 전염병의 진짜 원인이다. 바이러스 감염은 환경파괴의 부산물에 불과하다. 더러운 공기를 마셔서 폐에 염증이 생겼고, 그곳이 바이러스가 증식하기 쉬운 환경이 되었을 뿐이다. 큰빗이끼벌레가 4대강을 더럽힌 것이 아니라 더러워진 4대강 때문에 그 벌레가 번식했다. 파리가 쓰레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에 파리가 꼬였을 뿐이다. 이처럼, 바이러스도 알맞은 서식처를 찾았을 뿐이다. 우리는 여기서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면 안된다.

바이러스는 마이크로 생태계의 스캐빈저일 뿐이다.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다리를 저는 영양을 사냥하는 하이에나처럼 바이러스도 비슷한 일을 한다. 어느 개체가 병약해지면 바이러스가 전체 생태계를 위해서 뒷정리를 해주는 식이다. 그런 일을 해주지 않는다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개체의 유전자가 후대에 전달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 종은 조만간 절멸할 것이다. 한 종이 절멸하면 그것과 먹이사슬로 연결되어 있거나 공생관계인 다른 종도 위협받는다. 따라서 자연은 바이러스를 통해 환경에 최적으로 적응한 개체의 유전자 만으로 생명체를 업데이트한다.

대기오염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새로운 변이가 나타났고 동시에 그런 대기오염에 취약하여 폐렴을 앓는 사람들의 폐세포에서 그 바이러스의 활발한 증식이 발견되었다면 그것은 곧 그 사람들이 대자연의 섭리가 정해준 그 바이러스의 먹잇감이라는 뜻이 된다. 바이러스가 그 사람들의 폐를 보금자리 삼아 증식할 수 있는 것은 먼저 사람들의 활동이 공기를 더럽혔고 그 더러운 공기로 그들의 폐가 이미 충분히(?) 망가졌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폐에서는 바이러스가 쉽게 증식하지 못한다. 바이러스는 여기서 폐렴의 결과이며 원인이 아니다.

환경파괴를 전염병의 원인으로 보는 입장에서도 여전히 바이러스를 중심에 두려는 관점이 존재한다. 사람들이 짐승들의 서식지를 파괴하여 그 짐승들이 사람과 접촉이 늘었고, 짐승들 몸에 있던 바이러스가 퍼져서 전염병을 유발했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우리가 처음에 제기한 질문, 즉 왜 대기오염이 심한 나라와 덜 심한 나라 사이에 집단 폐렴의 치명률 차이가 뚜렷하게 존재하는지 해명하지 못한다. 바이러스가 단일 원인으로 작용하여 이 사태가 촉발되었다면 다른 변수에 의해서 다른 결과를 낳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은 또한 사람과 짐승과의 접촉이 그동안 이런 사태를 유발하지 않은 이유도 설명하지 못한다. 인류는 수만 년 전 수렵활동을 하면서 짐승들 옆에서 함께 살았다. 야생동물 접촉 횟수는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사냥한 짐승은 지금처럼 냉동보관할 수 없으니 바로 해체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 짐승의 피를 뒤집어쓰는 일이 비일비재 했을 것이다.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경작지를 넓히는 과정에서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점점 잠식해들어갔고 그들을 반려동물이나 가축으로 삼았다. 개, 고양이, 소, 닭, 돼지, 말, 염소 모두 원래는 야생동물이었다. 그 짐승들 본래의 서식지는 오래 전에 파괴되었다. 사람들은 지금 그들에게 먹이를 주고 분뇨를 치우고, 애완동물의 경우 입까지 맞추는 등 매일 접촉하고 있다. 동물원은 어떤가? 그곳에서도 사람과 야생동물과의 접촉이 일상화되어 있다. 사육사는 매일 접촉한다. 관람객도 철망 사이로 먹이를 준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를 보유했다고 하는 박쥐는 그것을 식용했다는 기록이 중국 서진 시대(西晉, 265년 ~ 317년)부터 존재한다. 따라서 짐승 몸에 있는 바이러스가 퍼져서 지금의 폐렴 사태가 발생했다면 인류는 이미 수만년 전에 절멸했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주장은 넌센스이며 진짜 원인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짐승과의 접촉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지만 대기오염은 과거에는 없었고 지금은 있다. 이것이 과거와 현재의 차이다. 그리고 대기오염이 심한 곳일수록 폐렴 같은 호흡기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사실이다. 따라서 대기오염이 집단 폐렴 사태의 진짜 원인이다. (만일 같은 바이러스가 대기가 오염된 환경에서 특별히 흉포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역시 대기오염이 근본원인이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바이러스를 중심에 두고 문제를 풀어가야 할 까닭이 없다.)

대기오염이 현 사태의 주범이라면 오염된 지역을 벗어나서 맑은 공기를 마셔야만 나을 희망이 보이겠지만 여러 나라들은 오히려 도시나 국경을 봉쇄하여 사태를 악화시켰다. 중국, 이탈리아, 이란 모두 봉쇄 후 사태가 더 악화되었다. 봉쇄하였음에도 사태가 악화된 것이 아니라 봉쇄하였기 때문에 사태가 악화된 것이다. 살 길을 막아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하고 탈출을 시도했다. (필자가 국경 봉쇄 뉴스를 보고 떠오른 것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1986년 작품 에이리언2에서 회사 사람 버크가 자기만 살겠다고 문을 걸어 잠그고 에이리언으로부터 공격받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못 들어오게 하는 장면이었다. 100년 후 미래의 사람들은 이 국경 봉쇄를 인류의 무지가 낳은 최악의 홀로코스트였다고 기록할 것이다)     

봉쇄라는 조치는 변이된 바이러스가 바로 그곳에만 존재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 지구에 분포하며(사람에게도 있고 짐승에게도 있다. 심지어 해양동물에서도 발견된다. 이 바이러스는 포유류의 호흡기 계통을 보금자리로 삼는다. 포유류가 사는 곳이면 어디든 존재한다는 얘기다) 대기오염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변이가 나올 수 있다. 즉 이것은 환경파괴로 인한 전 지구적 현상이다.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그곳에 있었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대기오염이라는 트리거에 의해 변이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바이러스 확산 억제는 불가능한 목표다. 하지만 면역력*은 실현 가능한 목표다. 그러므로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는 분명하다. 불가능한 목표를 설정하면 이 사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끝난 것처럼 보이더라도 형태를 바꿔서 다시 찾아올 것이다.

*'면역력'이란 단어는 통속적으로 쓰이는 단어로 실제 의학에서 쓰는 '면역반응immune response'과는 다른 의미를 가져서 심지어 어떤 사람은 '면역력'이란 것은 없으며 면역은 과잉이어도 문제가 되고 적당한 것이 낫다고도 말한다. 대중과 의료인은 다른 의미로 그 단어를 사용하므로 둘 다 옳다. 여기에서는 8체질의학적인 관점에서 둘 사이에 다리를 놓아보자.

*8체질의학에 따르면, 체질에 따른 내부장기의 적불균형 상태와 과불균형 상태가 있다. 적불균형은 체질에 따라 선천적으로 정해진 약한 장기와 강한 장기 기능의 강약 차이가 너무 크게 벌어지지 않은 상태, 즉 적당한 불균형의 상태이며 과불균형은 이와 달리 과도하게 벌어진 상태다. (내부장기들 사이의 완전균형은 불가능하다) 과불균형에서는 각 장기의 염증, 그에 따른 유해한 미생물의 증가나 바이러스의 증식이 관찰된다. 적불균형에서는 그런 것들이 관찰되지 않는다. 병의 치유는 과불균형에서 적불균형으로 넘어가는 것을 말하며 이 과정에서 염증과 유해한 미생물과 바이러스는 사라진다.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그 사람이 체질에 맞게 생활습관을 바꿔야 한다. 바꾸지 않으면 과불균형에서 헤어나올 수 없으며 그 결과 각 장기의 염증, 유해한 미생물과 바이러스의 증식이 끝없이 반복된다. 따라서 그것을 처리하기 위한 면역반응도 그에 상응하여 끝없이 반복되는데 이것이 면역과잉 상태다. 우리가 불편하게 느끼는 증세들은 이 면역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빚어진다. 일반적으로 대증요법은 내부장기의 과불균형을 적불균형으로 돌리는 대신 그 결과인 염증과 유해 미생물과 바이러스만 억제하고, 이것은 약효가 듣는 단기간에는 면역을 저하시켜 증세를 가라앉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억제된 면역반응이 더해져 더 심각한 면역과잉, 더 심각한 불편함을 초래한다. 자가면역질환이 바로 이런 상태다. 

*내부장기가 과불균형에서 적불균형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도 염증과 유해한 미생물과 바이러스를 처리하기 위하여 면역이 발휘되지만 여기서는 끝이 있다. 그런 현상의 근원이 되는 내부장기의 불균형이 점점 감소하고 균형점으로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적불균형에 도달하면 염증과 유해한 미생물과 바이러스는 몸에 영향을 줄 수 없을 정도로 감소한다. 사람들이 '면역력이 강해졌다(병에 잘 안 걸릴 정도로 건강해졌다)'고 표현하는 것은 바로 이 적불균형 상태다. '면역력'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면역반응을 증가시키는 힘이 아니라 '면역반응을 수고롭게 발휘할 필요가 없는 상태다. 따라서 우리는 면역력을 이 적불균형에 가까운 정도 또는 발병을 유도할 수 있는 내부장기의 과불균형으로부터 먼 정도'로 정의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이 칼럼에서 앞으로 '면역력'이라는 단어를 쓸 때는 위의 정의에 따른다.

현재의 조치들은 모두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바이러스가 있다고 반드시 발병하는 것은 아니다. 면역력이 강하면 자연치유도 가능하고, 완치 판정을 받은 사람도 면역력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재발한다.

면역력을 결정하는 요인은 환경과 음식이다. 그러므로 대기오염을 해결하고 체질에 맞는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면역을 억제할 것이 아니라 면역이 발휘될 필요를 최소화할 수 있는 생체환경을 조성하려는 사회와 개인의 노력이 요구된다.

(마스크는 도움이 될 수 있다. 미세먼지가 기관지로 흡입되어 폐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미세먼지는 폐렴의 원인이고, 폐렴은 바이러스 증식의 원인이다. 마스크의 또 한 가지 효용은 같은 체질의 타액에 접촉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체질의 타액에 접촉되는 것도 발병을 촉진하는 원인이다. 마스크는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다기보다는 '바이러스가 증식할 수 있는 생체환경'의 형성을 막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수 있다

한국은 공포에 질린 군중 때문에 코로나 3법이 통과되어 확진자가 격리, 검사, 치료를 거부할 경우 처벌받게 되었다. 음울한 그림이 그려진다. 강제로 투여된 약물이 누구의 체질에 맞지 않아서 사망하는 그림 말이다. 공공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 아래에 누군가는 희생되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 WHO는 이부프로펜이 COVID-19 관련 증세에 해롭다면서 사용 금지시켰다가 이틀 만에 그 의견을 뒤집었다.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것은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이부프로펜은 토양체질pancreotonia에게 해롭다. COVID-19에 걸렸든 말든 상관 없이 해롭다. 이부프로펜이 토양체질에 대하여 신독성nephrotoxicity이 있기 때문이다. WHO는 우연히 확진자 중 토양체질인 사람한테 이부프로펜 투여 후 증세가 급격히 악화되는 케이스를 보았기 때문에 그것이 모두에게 위험할 것으로 보고 그런 의견을 발표했을 것이다. 하지만 부작용이 나오지 않는 사람들(다른 체질들)도 나중에 발견되면서 그 의견은 곧바로 철회되었을 것이다. 체질을 모르면 이렇게 제자리걸음이다. 사람 체질이 달라서 약물 반응도 체질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모르니 결국 정확한 앎 logos에 도달하지 못하고 끝없는 혼돈 chaos 속에 머무르는 것이다. 앞으로도 토양체질 환자에게 이부프로펜이 투여될 수 있을 것이며 그때 그들은 희생될 것이다. WHO도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판인데 치료를 강제해서는 안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단 한 명에게라도 해를 줄 수 있다면 그 치료는 환자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심지어 이 질환은 아직까지 특별한 치료제가 없으며 환자의 면역력에 기대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더욱 강제할 명분은 없는 것 아닌가?

코로나 3법은 '의료 파시즘의 시대'를 열 것이다. 의료가 새로운 독재권력으로 떠오를 것이다. 이 법은 국가보안법과 비슷하다. 병의 원인을 잘못 보니 나라가 전체주의 시대로 가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개인의 자유가 무시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우려 섞인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치료를 받을지 말지, 어떤 치료를 받을지는 환자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개인의 자유를 박탈해서는 안된다. 현 사태는 바이러스가 원인이 아니라 환경파괴가 원인이고, 치료의 관건은 바이러스 차단이 아니라 개인의 섭생과 대기정화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이 그 구성원들에게 급박한 위기로 인식되면 차분하게 사태의 본질을 따져볼 여유를 잃는다. 지도부는 패닉에 빠진 사람들을 달래려고 아주 단순한, 그래서 군중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프레임으로 사태를 분석하고 허겁지겁 결론을 내리고 폭주하게 된다. (바이러스 병인설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원인을 지목하고 있기 때문에 환경과 숙주와 미생물의 상호작용 설명보다 군중한테 먹히기 쉽다. 과학이 군중의 무지에 영합할 때보다 더한 비극을 낳는 경우는 없다) 다른 가능성은 철저히 배제된다. 소위 '이런 위험한 시국에 나라를 분열시키는 다른 생각'은 흔히 나쁜 짓으로 매도당한다. 마녀사냥이 판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정신적 이방인들은 가차 없이 공격당한다. 그 희생을 목격하면 지각 있는 사람들은 더 침묵하게 된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관점들은 스스로 숨어버리고 심지어는 그런 생각들을 떠올리지 말아야 한다고 자기감시가 시작되며, 세상이 믿는 허술한 생각들을 내재화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군중이 믿는 것이 틀렸다는 걸 알 때 그 사람들은 그 군중의 어리석음을 강화시켜 판을 키우고 자기는 그 반대편에 베팅한 채 여유롭게 기다린다. 그들은 군중의 어리석음이 해소될 때 대박을 얻으려는 야심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군중의 어리석음을 바로잡지 않고 그 어리석음을 오히려 즐긴다. 그들은 내심 사람들을 돕는 것은 무익하다고 믿는다. 도와주려 하다가 십자가에 매달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차라리 뒤에서 패를 돌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역사와 경험은 그게 옳다고 말한다. 성난 군중의 광기를 식혀줄 능력이 없다면 섣불리 나섰다가 오히려 분노의 표적이 되리라' 이렇게 하여 위기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공유하는 군중 그리고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깨닫게 되었으나 그 군중을 돕지 않고 자기만을 도우며 짜릿한 스릴을 즐기는 선각자들 사이에 결코 좁혀질 수 없는 거대한 틈이 벌어지게 된다. 이처럼 광기와 파시즘의 분위기는 다양한 모색 속에서 해답을 찾는 과정을 억제하고 선각자들을 기회주의자로 변모시킨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위기는 연장된다.

한국은 드라이브 스루 등 확진자를 파악하려고 온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그런 노력을 국제사회에서도 인정받기를 원한다. 나라가 혼란스러운 만큼 감염병에 대한 표준 방역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자부심에 취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사망자가 적은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대기오염이 그 나라보다 덜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런 이유에서 한국의 방역지침을 다른 나라에 적용하더라도 큰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본다.

(현재의 폐렴이, 계절적 요인이 함께 작용하여 발생하고 있다면 계절이 바뀌면서 잠잠해질 것이다. 이때 사람들은 방역 효과가 나왔다고 착각하겠지만 다음 해나 다다음 해에 비슷한 사태가 반복되는 것을 볼 것이다. 전염병을 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오고 말 것이다.)

대기오염이 현 사태의 주범이라면 과도한 검사는 무의미하다. 검사를 받는다고 오염된 공기가 맑아지거나 면역력이 개선되진 않으니까. 그런 조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비용만 많이 들고, 확진자가 늘어날수록 시민들의 불안을 더할 뿐이다. 사실 검진을 통해 확진자로 판정되어도 현재 임상적인 측면에서 치료법이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경증이면 지켜보기, 중증이면 항바이러스제나 항생제. 치료제가 없다고 하였으니 결국 독감이나 폐렴에 준해서 치료할 것 아닌가?

'치료제가 없다'고 하는 것도 사실 어폐가 있다. 바이러스의 증식은 그저 폐렴에 수반될 수 있는 결과일 뿐이므로 바이러스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내부장기를 적불균형 상태로 유도하여 치료할 수도 있다. 그런 요법들이 8체질의학에 존재한다. 서구의학에서는 개별적인 미생물이나 바이러스 하나 하나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공격하고 억제하는 방법을 쓰지만 8체질의학은 그것들이 증식할 수 없는 건강한 생체환경을 만들어내는데 초점을 맞춘다. 비유하자면, 습한 방에 핀 곰팡이를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곰팡이 제거제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구들장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 곰팡이 자체를 없애려고 하는 대신 곰팡이가 자라는 방의 상태를 바꾸는 것이다. 곰팡이 종류가 백 가지가 넘더라도 모두 사라질 것이다. 거기에 일일히 곰팡이 제거제 백 가지를 개발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곰팡이 제거제 백 가지를 개발하더라도 내성을 가진 새로운 곰팡이가 나올 것이다. 마찬가지로 항바이러스제를 쓰거나 백신이 나와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새로운 변이가 나올 것이다. 그것은 모든 노력을 헛되게 만들 것이다.

이론과 현실에는 괴리가 존재한다. 그래도 이론 자체에 일일히 태클을 거는 사람은 드물다. 그건 귀찮은 일이다. 그저 그 괴리를 현장에서는 실제 경험과 직관적인 지식으로 메울 뿐이다. 누가 귀찮음을 무릅쓰고 그 이론 자체에 반기를 들고 공식적으로 의문을 제기할 때까지는 거의 모두가 기존의 잘못된 관점을 뒷받침하는 증거만 모으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잘못된 관점을 강화하는데 기여한다. 그래서 토머스 쿤은 과학이 점진적으로 발전하지 않고 혁명으로 발전한다고 하였다. 우리가 여태 믿어 의심치 않았던 바이러스 병인설도 그런 혁명으로 뒤집어질 명제일 수 있다. 그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는 입 밖에 내놓지는 않으나 실제 생활에서는 그런 생각을 더 이상 따르지 않는 조용한 과도기, 패러다임의 레임덕이 한동안 지속된다. 격리자의 이탈,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반발... 사람들은 뉴스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뒤돌아서면 그 지침들을 적당히 무시하면서 살아간다. 그걸 다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엘리베이터 스위치에 붙인 위생 테이프를 한 명 한 명이 누를 때마다 교체할 수 있나? 공중 화장실 변기의 물 내리는 버튼은? 그 화장실이 여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면? 식당에서 마스크를 쓰고 점심을 먹을 수 있나? 뷔페식당이라면 음식이 아예 여러 사람에게 노출되어 있다. 손님 중 한 사람이라도 음식 앞에서 기침을 한다면? 전국 유흥업소에서 발생하는 접촉들은 어떤가? 마스크가 답답하다고 코 밑이나 턱 밑에 걸치고 다니는 사람들은 어떤가? 현실에서 그것을 실천할 때 너무 많은 구멍이 존재하기 때문에 다 통제할 수 없다. 그 조치가 근거를 두고 있는 생각에 의하면, 그 조치가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그런 구멍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그런 감염병 이론에 따르면, 확진자를 한 명이라도 놓치면 그 사람과 스쳐 지나가는 수천 명의 사람이 감염되어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통제가 과연 가능한가?

견고해 보였던 전염병 이론이 현실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거의 쓸모없다는 걸 깨닫게 되고 그것에 대한 믿음에 균열이 생긴다. 이번 팬데믹은 그런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여겼던 미국과 유럽 역시 이번 사태에 철저히 무력했다. WHO와 UN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감염병 이론의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항체를 얻어도 항원(바이러스)이 남아있을 수 있다방역당국은 죽은 바이러스가 남아있을 거라고 둘러대지만 만일 그렇다면 최초에 양성이라고 판정되었을 때 그 바이러스가 죽었던 게 아니라 살아있었는지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무증상 확진자들도 많았는데 말이다. 항체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항원(바이러스)이 남아있는 것은 바이러스가 증식하기 쉬운 환경(더러운 공기로 쇠약해진 폐)에 아무 근본적인 개선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체를 얻은 절반이 재양성 판정이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곧 백신의 효과를 보증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증상 확진자와 접촉으로 발병하는 경우는 희박하다. 발병은 확진자와의 접촉이 아니라 대기환경과 각자의 면역력에 딜린 문제다. 프랑스에서 확진된 9세 어린이가 접촉한 사람이 172명인데 모두 음성으로 나왔다. 산골 오지 사람이 확진되는 것처럼 감염 경로가 오리무중인 경우도 많다. 기존 감염병 이론이 틀렸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다만 상아탑에서 권위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이 고집을 피우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몇 가지 드문 예외로 취급하고 싶어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예외는 점점 늘어난다. 그것들에 대해 다시 그럴듯한 변명이 덧붙여져서 이론이 쓸데없이 복잡해지겠지만, 너무 많은 예외가 존재한다는 것은 애초에 그 이론 자체가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기존 이론이 맞다면 항체가 생긴 다음 나아야지 왜 절반이 다시 양성이 되나? 기존 이론이 맞다면 확진자와 접촉할 때 발병해야지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발병하지 않는가? 발병하지 않는 경우를 주목해야 한다. 귀납적인 추론에 의하면, 기존 이론에 위배되는 경우가 한 케이스만 나와도 그 이론이 틀렸음을 의미한다. 접촉해도 발병하지 않는 사람은 왜 발병하지 않는 걸까? 이 질문을 파고들면 이 사태의 본질에 닿을 것이다.

우리는 현실과 동떨어진 전염병 이론에 강박적으로 매달림으로써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이러스 병인설이라는 도그마를 맹신한 나머지 경제가 마비되고, 학교와 어린이집과 도서관과 체육관이 폐쇄되었다. 이게 정말 최선인지 되짚어 봐야 할 시점이 왔다. 증상이 있는 사람, 본인이 원하는 사람만 검진 및 치료를 해도 될 일이다. 사실 한국에서 대기오염으로 인한 폐렴 사망자 증가는 산업화 이후 계속되어 왔다. (2017년도 19378명 사망, 2018년도 23280명 사망. 대기오염 때문에 점점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노인 사망 원인 중 3위가 폐렴이다. 지금 공포에 질린 군중들은 해마다 호흡기 질환으로 몇 명이 사망하는지 깜박 잊어버린 것 같다.

그러므로 지금 패닉에 빠질 이유는 없다. 그보다 대기오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언론은 자극적인 보도를 자제해야 하며, 현 사태를 과거의 폐렴 사망자 수와 비교해서 보도해야 할 것이다. 바이러스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대기오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시청자를 겁박하지 말고 수십 년 전부터 계속된 대기오염 문제의 연장선 위에서 이 사태를 좀 더 여유 있게 바라보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종식을 바로 선언해야 한다. 잘못된 감염병 이론에 의지하다가 나라 경제 거덜 나게 생겼다. 지금 거의 모든 업종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경제는 분업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 분업은 마비될 수밖에 없다. 지금 바로 종식 선언해야 한다. 그렇게 하더라도 사망자수는 크게 증가하지 않을 것이다. 계절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번 경험으로 자국의 대기오염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한국의 미세먼지를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대기오염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두 나라가 공유하고 중국의 환경정책이 개선되면 한국의 대기오염도 개선될 것이다. 백신은? 효과가 없을 것이다. 백신을 투여한다고 더러운 공기가 맑아지나? 공기가 오염됐는데 사람들의 폐가 건강할 수 있나? 복잡한 의학지식이 아니라 기본 상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전자가 후자를 지워버린다면 학교는 '똑똑한 바보'를 만들어내는 공장에 불과할 것이다. 



맺는말:

의학이 생태학의 세례를 받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팬데믹 공포의 기저에 있는 병인론은 실제와 맞지 않다. 완치 판정을 받은 사람들 중 많은 숫자가 재확진 판정을 받는 것은 그들이 여전히 오염된 대기환경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집단 폐렴 사태가 끝났다고 믿지만 끝나지 않았다. 사태가 진정된 것은 그동안 공장이 멈춰서 공기가 맑아졌고 날씨가 따뜻해졌기 때문이다. 언젠가 집단폐렴 사태는 되풀이될 것이다.


동양의 고전 장자莊子는 다음과 같은 우화로 시작한다.

'곤鯤'이라고 하는 거대한 물고기가 북쪽 바다에서 나와 '붕鵬'이라는 새가 되어 남쪽 하늘로 날아간다. 그러자 매미와 작은 비둘기가 붕을 비웃으며 말한다. '우리는 기껏 날아보아야 느릅나무 가지에 닿을 뿐인데 저 녀석은 왜 9만 리나 날아가는가?'

매미와 작은 비둘기 같은 관점으로는 바이러스만 보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는 필자의 이런 생각이 너무 멀리 날아간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붕鵬의 눈으로 이 사태를 바라보면 전 세계의 환경파괴, 대기오염과 집단 폐렴 사태의 연관성이 보일 것이다. 그것을 보아야만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어머니 지구는 지금 근본치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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